나무위키발 선덕여왕 암군설 잡상 을파소의 역사이야기

요즘 웹에서의 선덕여왕 평가에 대한 간단 잡상

조금만 더 자세히 얘기해 보죠.

1. 일단 근래 웹에서 선덕여왕 암군설의 출처가 나무위키가 유력한 건, '선덕여왕 암군'으로 구글과 네이버 검색을 하면 거의 2016년 10월 이후란 말이죠.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에 나무위키의 선덕여왕 항목은 암군이라는 주장으로 대거 수정된바, 웹에서의 인식은 이 영향을 받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선덕여왕이 실제 보돠 과장되어 평가 받는다, 정도였다면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닏 무슨 선덕여왕이 한국사 암군 워스트 5에 든다,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비담의 난에 백성도 대거 가담하여 기세가 높았다 등등의 소리가 나올 정도라 문명6에 선덕여왕이 추가된다니 희대의 암군이 나온다고 분노하는, 대체 영문을 모를 분노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항목의 부정 평가는 긍정 평가는 추측에 의거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면 부정 평가는 사료에 입각한 거 같지만, 사실 이것도 추측에 의거하긴 마찬가지죠. 논문 출처를 제시한 것도 입맛에 맞는 거만 고른 게 많고요.

“한편 이 해(641) 3월에 百濟에선 義慈王이 卽位하였다. 이어 11월에는 큰 규모의 政變이 있었고, 이를 통해 의자왕은 王權 强化를 도모하였다. 나아가 이듬해인 642년 여름 신라를 공격하여 大耶城 등 40여 성을 빼앗았다. 10월에는 高句麗에서 大規模 流血政變을 통해 淵蓋蘇文이 執權하였다. 이 해 末, 百濟의 攻擊을 받아 窮地에 처한 新羅에서는 金春秋가 平壤行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淵蓋蘇文과 金春秋의 평양성 談判은 無爲로 끝났다. 신라의 평화 제의를 연개소문이 거부하였던 것이다.”
“당의 東進이 沮止된 상황에서 신라는 高句麗와 百濟의 挾攻에 시달리는 형편이었으며, 百濟와 連結된 倭의 動向도 憂慮의 對象이었다. 아울러 신라 내부에선 645년 전쟁에 직접 참전하였다가 실패로 끝난 정책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조정 내에서 있었던 것 같다.”
“선덕여왕 14년(645) 11월 水品을 교체하여 비담을 상대등으로 삼은 것은 이 해 5월에 행한 고구려 공격의 실패에 대한 귀족층들의 반발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이었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안팎의 난제가 중첩된 상황에서 647년 正初, 首都에서 ‘女主不能善理’를 내세운 毘曇의 亂이 勃發하였다.”
노태돈, 古代 東아시아 國際秩序의 再編과 韓日關係 (2010)

노태돈 교수의 이 논문이 선덕여왕이 암군이라는 주장이라고 수정자가 제시했지만, 이건 당시 상황이 위기였단 주장은 맞지만 그게 선덕여왕이 암군이라는 주장으로 등치되진 않습니다.

의자왕 즉위 후 백제의 공격에 40여 성 상실, 그 후 대야성 상실 등 영토를 잃은 걸 암군의 증거라고 제시하고, 여기에 다른 웹상의 글들은 진흥왕 진평왕이 일군 기반을 선덕여왕이 말아 먹었다, 그러니 암군이라 비판도 하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신라가 위기였던 건 맞는데 그건 백제, 고구려가 모두 적이고 왜도 우호적이지 않으니 생긴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진흥왕 때 고구려가 점유하던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동맹국이었던 백제의 뒤통수를 치고 성왕까지 전사시켰으니 두 나라 다 적이 된 겁니다. 왜는 백제와 우호적이니 신라의 우호국이 될 수 없고요. 진흥왕 때 서쪽 북쪽 다 적이 되면서 진평왕 때도 고구려 백제의 공세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더 강대국인 고구려를 더 경계해야 했을 터. 실제로 선덕여왕 치세 전반기에 고구려가 쳐들어 온 적도 있으니까요. 그 결과 서쪽 국경은 방어가 더 취약해졋으리라 추측한다면, 의자왕 즉위 후 공격으로 영토 잃은 게 신라의 위기를 의미하는 건 맞지만, 선덕여왕이 암군이란 증거로 보자면 글쎄요. 선대에 위기의 원인이 뿌려졌는데, 선대가 잘한 걸 말아먹었다? 당장만 수습하고 나중에 터져도 원인제공자가 아니라 터졌을 때 사람을 탓할 인간들이네요. 

게다가 대야성을 잃은 게 큰 손실이긴 하지만 서라벌이 당장 백제에 공격 받을 수준은 아닙니다. 김유신이 지금의 경산인 압럅주 군주가 되어 방어하고 있었으니 이 쪽으로 서라벌을 공격하는 시도는 방어가 가능합니다.

3. 외부에서 전쟁에서 지고 영토를 잃는데 황룡사 9층목탑이나 만들어 백성들은 피폐해지고 귀족들의 불만도 누적되어 비담의 난이 일어났다. 더불어 나무위키에서는 비담의 난에 백성들도 가담해 기세가 높앗다고 말합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사실로 거의 단정하더군요.

그런데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선덕여왕을 혹평하는데 이유는 여자라는 것 뿐입니다. 만일 백성의 삶이 피폐해졌으면 그것도 적고 그걸 근거로 이래서 여왕은 안 돼 했을 걸,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진평왕 때도 부모가 자식을 팔 지경이더란 기록이 있는데요. 

그렇게 온 백성의 마음이 떠날 정도면 비담이 반란을 일으킬 게 아니라 화백회의에서 폐위시킬 만한데, 거의 죽을 때가 되어서야 반란을 일으킨 건 오히려 영토 상실에도 선덕여왕을 폐위시킬 수 없고 병중에야 반란을 도모할 정도로 명분이 부족하고, 그만큼 왕의 권위는 유지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가 제 추측입니다.

비담이 화백에서 여왕 폐위한 걸 김춘추 김유신이 무력으로 막았다는 주장은 있긴 합니다. 서영교 교수의 주장이죠. 그러나 이것도 기록이 없는 이상 추측이고, 그나마 나무에 기술한 바는 이 주장도 언급 안 하는 걸 보면 그냥 귀족부터 백성 모두 선덕여왕을 싫어했다는 일방적인 추측을 적었을 뿐입니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 왜곡되었다 보기만도 그런 게, 일단 김부식이 여왕에 부정적이고, 직접적인 기록은 없어도 설화나 이변의 형태로 남은 민심의 불안을 적을 법 하거든요. 혹은 백성까지 폭넓게 가담한 반란이면 진덕여왕 즉위 후 엄청난 대숙청이 일어나거나 대대적인 민심 수습책이 나올만 한데 둘 다 없습니다. 30명의 가담자와 구족을 멸하긴 하는데, 상대등이 주도한 반란이면 가담자 30명이야 귀족 중 나올 숫자고, 백성까지 숙청할 범위는 아니죠. 

게다가 고구려 안원왕 사후 추군과 세군의 내전을 기록한 일본서기에라도 비담의 난의 뒷정황이 있다면 기록될만 한데, 그것도 아니고요. 결국 화백회의 여왕 폐위설, 백성 가담설은 다 추측일 뿐입니다. 긍정 평가는 추측 뿐이라면서요? 그런데 암군 평가도 추측이네요?

4.그러니 대략 결론. 되도 안 한 소리 좀 집어 치워라. 하고 싶으면 추측이라는 건 분명히 전제 해라 정도입니다. 

덧글

  • K I T V S 2017/12/11 01:11 # 답글

    나무위키는 거의... 새로운 젊은세대들의 살생부가 된 거 같은 느낌도 들어요. 아무리 꺼라위키 X무위키 등으로 욕먹는 다곤 하지만 한편으론 위키백과나 네이버지식백과, 지식인보다도 더 신뢰(?)를 가지고 있는 느낌(여기서 느낌이란건 항상 누군가가 정보를 말하면 나무위키를 거론하는 점에서)으로 볼 때 거의 정보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 지역같기도 하고요. 솔직히 역사 뿐 아니라 서브컬처나 드라마, 영화, 어떤 인물에 대한 평을 보려면 나무위키를 보라는 이상한 말까지 떠돌고 있을 정도.

    때문에 개인생각이지만 나무위키에서 평가가 나쁘게 작성된 것들은(그것이 인물이나 사건, 단체, 작품 등) 정말 이미지가 급속도로 나빠진다는 기분도 듭니다.
  • 을파소 2017/12/11 23:35 #

    마믈 영화 같은 거나 챙겨 보기 힘든 작품의 설정에 대해 보긴 나무가 좋죠. 그런데 그것도 종종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에 감정이입해 상대 캐릭터를 과도하게 까는 경우도 있어 작품을 보기 전엔 걸러 들을 필요는 있습니다. 그 외 전문적인 영역은....능력자가 편집한 항목은 훌륭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많단 게 문제죠.
  • 사회과학 2017/12/11 01:42 # 답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대야성이 함락됐을 때 경산을 지키지 못하면 서라벌이 바로 위협받지 않나요? 김유신이 경산을 지켜서 망정이지, 거기까지 뚫리면 답 없는 형국일텐데, 대야성 함락은 국가적 위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 을파소 2017/12/11 23:36 #

    그래도 지켰으니까요. 물론 대야성 함락은 큰 손실이고 그때 신라는 위기 맞습니다. 선덕여왕이 여기에 책임 있죠. 그러나 대중에 알려진 만큼 성군이라기엔 과장 됐다의 근거라면 문제 없지만, 아예 나라 말아먹은 암군 취급하는 근거로 드니 문제죠.
  • 역사관심 2017/12/11 05:35 # 답글

    " 황룡사 9층목탑이나 만들어 백성들은 피폐해지고" 조금만 규모있는 건축이 나오면 그저 백성피폐로 등치되는 버릇도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럼 대체 다른 나라들은 폭군만 우글대던 것인가...싶을 때도 있습니다.
  • 을파소 2017/12/11 23:37 #

    피폐해졌다면 어디든 흔적이 남았을텐데 말이죠.
  • ㅁㄴㅇㄹ 2017/12/11 09:01 # 삭제 답글

    선대에 과확장에 외교관계 망쳐놔서 수습이 버거운 상황이었던거 맞고 특별히 암군이라 불릴 정도의 실책이 눈에 띄는건 아니긴한데, 그렇다고 한국이나 신라 문명을 대표할 군주로 뽑히기엔 터무니없는 수준의ㅡ평균 이하에 불과한 왕인건 사실인거 같습니다만. 문명 제작진이 추구하는 여성할당제의 산물일뿐이란 의견에 반론할 근거는 없을거 같군요.
  • 을파소 2017/12/11 23:39 #

    개인적으로는 신라에서는 무열왕이나 문무왕, 한국사 전체로는 이성계를 더 원했지만 선덕여왕도 인지도 등 고려하면 못할 건 없다 봅니다. 과장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신라를 그만큼 이끌었다고 보기도 하고요. 뭐 이정도 까진 개인 생각차이 수준이긴 한데, 너무 일방적인 매도가 퍼져서 말이죠.
  • 스카라드 2017/12/11 09:42 # 삭제 답글

    503이 자폭으로 경질되니까 엄한 역사적 인물까지 피해를 보는군요. 좆무위키는 그냥 여혐에 빠져서 만만한 여왕 하나 골라서 왜곡하는군요. 제가 알기로는 진성여왕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흑색비방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물론 제가 읽어본 문서는 작년 10월 이전까지의 내용이라서 현재는 을파소님이 지적하신대로 여혐망상 왜곡문서로 수정되어 있는지도 모르죠.(--;)


    선덕여왕이 황당한 사극으로 거품이 부글부글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503에 비할바는 아닙니다. 좆무위키에서 그렇게 증오하는 남한산성의 어느 임금님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는 왕으로 알고 있어요. 좆무위키는 대가리 망상 왜곡을 한다고 해도 일관성조차도 없고 갑작스럽게 미친 짓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결론은 꺼라 위키가 아니라 폐쇄해라 위키,입니다!
  • 을파소 2017/12/11 23:42 #

    편집하는 사람이 다 다르긴 하지만 항목 간에 기준이 다른 경우도 많더군요. 선덕여왕 관련으론 더 웃긴 건 선덕여왕 비판하면서 비담의 난을 10일이나 진압 못했으니 반란의 기세가 대단했다 하는데, 다른 항목에서는 반란에 2만에 달하는 대군이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적어서 종합하면 그 규모에 10일이면 금방 진압한 거란 결론이 나오는 모순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동일인물이 적은 거라서 더 모순이죠.
  • 듀란달 2017/12/11 16:27 # 답글

    문명의 이번 작에서 선덕여왕이 미녀로 나왔다면 저런 문제가 없었거나 빠르게 사그라들었을 거라는 데 한 표 던집니다.
  • 을파소 2017/12/11 23:42 #

    이요원 모델링?!
  • 브레이크 2018/02/06 17:07 # 삭제 답글

    꺼라위키 토론장 보면 어떤 한 사람이 그렇게 강하게 주장했는데 암군 이야기 꺼낸게 그 사람이었습니다.

    토론에서 지우지 않기로 되었으니 어찌보면 목소리 강한 사람이 이기는 나무의 현실이 그런 문제의 원인이 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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