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조선사> 선종세가(이순신의 나라 관련)

일단 본 포스팅은 슈타인호프님의 소설 <이순신의 나라>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순신의 나라>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원치 않는 분은 살포시 백스페이스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결말에서 이순신이 새 왕조를 열면서 응당, 새 왕조는 전조 즉 조선의 역사를 정리할 겁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있다하나 실록이 지금처럼 자유자재로 열람하는 것도 아니고, 새 왕조의 입장에서 역사를 정리할 필요도 있을테고 말이죠. 결말 직후인 국초는 대내 대외 모두 문제가 산적해 여유가 없겠으나 안정이 되면 정사를 편찬할 것이므로 <고려사>의 존례를 따라 기전체 사서인 <조선사>를 가상한 일종의 팬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쓰기는 책 읽는 재미의 반감+저작권 침해 가능성+무엇보다 귀찮다는 점(...)에 따라 대폭 중략과 축약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조선사

1643년에 편찬하기 시작해 1657년에 완성된 관찬 역사서. 이식이 주관하여 편찬하였으나 1647년 사망하면서 일시 중단되었다가 채유후, 김육이 뒤를 이어 완성하였다. 세가, 열전, 지, 연표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 사서이다.
- 두X백과 사전 중에서

<조선사> 세가 

<선종세가>

선종 32년 기해년
(전략)
7월
기유일 왕이 우리 태조가 역모를 꾸몄다 하여 잡아 오란 명을 내리다. 그리고 어명을 받아가는 금부도사 김수백을 은밀히 불러"(태조의 휘)를 잡아오되 추포에 응하지 않거나 반란의 낌새가 보이면 그 자리에서 참하라."라고 밀지를 내리다
(중략
경신일 우리 태조가 왕이 충신을 겁박하고 백성을 돌보지 않음을 한탄하여 주변의 설득을 수차례 거절하다가 거병의 대의를 밝히시다. 고금도를 근거지로 삼아 전라좌수영으로 거병을 하시고 전라우수영과 경상우수영의 관포에 동참을 권하는 격문을 돌리시다

나 삼도수군통제사 (태조의 휘)이 우수영 장졸에게 고하노라
(중략)
내 간신을 치러 가는 길을 너희들이 막지 않는 것으로도 족하니 그리알고 현명하게 판단하여라. 하늘이 너희를 보고 계시노라

이 격문을 전라우수영 관포로 뿌리니 가리포첨사 이영남, 강진현감 송상호, 회령포만호 위대기가 동참하다. 경상우수영에도 보내되 이 곳엔 거병의 동참을 권하기 보단 왜적의 재침을 경계할 것만을 당부하시다 

계해일 태조의 거병 소식이 도성에 전해지다.(중략) 이런 계책을 아뢰고 다시 이항복이 그러나 그보단 우리 태조를 용서하고 귀순시키라 간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고, 일전에 이항복이 칭병을 하며 사직을 청하였던 적이 있기에 이 자리에서 이를 윤허하다. 그리고 전라우수사 김억추에게 태조를 막게 하고 경상우수아 유형에게도 선전관을 보내 어명을 전하도록 하다. 그리고 수군에서 우리 태조의 휘하에 있었던 경기방어사 권준과 포도대장 이순신을 추포케하다.

기사일 태조께서 고금도에서 출병하시다 

(중략)

8월
을유일 왕이 도성을 버리고 몽진하다. 세자와 비빈과 함께 왕자와 왕손 등의 가까운 종친은 갓난아기라 할지라도 모두 데리고 떠나니 이는 우리 태조가 다른 종친을 옹립할까 두려워한 것이었다. 처음에 평안도로 가려하였으나 임진강을 안위가 지키고 있어 길이 막혀 있었다. 이를 소문으로 들은 왕은 순화군과 황정욱을 보내 길을 탐색하게 하였으나, 순화군이 다른 마음을 먹고 내관을 죽이고 고 우리 태조에게 고해 자신을 왕으로 옹립시켜달라 말하려 하였으나 순화군을 알아보지 못한 안위가 죽이다.

길이 막히고 순화군이 태조에게 간 줄 안 왕은 함흥으로 가기로 하다

(중략)

정원군이 왕의 윤허로 여진을 불러오나 이들이 백성들을 약탈하고 크게 행패를 부리니 이것은 임진년 정유년 왜적들의 약탈보다도 더 극심하였으나 왕은 이른 난행을 모두 묵과하였다. 태조께서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한탄하며 왕을 폐서인하여 남해의 섬으로 유배를 보내겠노라 하셨다

(중략)

우리 태조께서 승기를 크게 잡으니 더는 싸울 수가 없는 야인들은 대신 정원군을 데리고 가 괴뢰로 삼으려 왕과 왕자들을 모두 죽이기로 하엿에. 이에 혜산으로 가던 종실의 행렬을 습격하여 정원군의 아들들만을 데리가 가고 남은 왕비와 후궁 왕자들은 모두 죽이고, 함흥으로도 몰아닥쳐 왕가를 기습하니 왕은 어좌를 지키다가 야인의 화살에 맞아 절명하였으니 왕이 재위한지 32년이었으며 나이는 47세였다.

많은 이들이 여진이 온갖 난행을 한 것에는 분개하였으나 왕이 평소 충신을 박대하고 오랑캐를 불러 들였으니 그 죽음엔 슨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더라. 태조께서 애종과 함께 함흥에서 한양으로 운구하여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고, 묘호를 선종이라 올렸다.

사신은 논한다. 왕이 처음 즉위하였을 때는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하고 옳은 정사를 펼치니 윤원형 등의 훈척들에게 흔들린 종사를 바로 잡아 밝은 성군이 되리란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축년 정여립이 역모를 일으키니 지나치게 옥사를 벌여 많인 이들을 상하게 하고, 임진년에 왜적이 쳐들어오니 왕이 몽진을 하여 종사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으나 우리 태조께서 주사를 이끌어 해로를 굳건히 지키고, 권율 같은 이가 관군을 수습하고, 의병들이 일어나 왜적과 싸우니 종사는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은 민심이 전란에 분연히 나선 무장들에게 쏠리는 것을 심히 시기하여 이몽학의 역모에 연루되었다하여 증좌도 없이 김덕령을 죽이고, 간신 원균을 총애해 우리 태조를 옥에 가두고 원균을 그 자리에 임명하였으나 삼도의 주사가 한산에서 무너지니 다시 종사가 위태로웠다. 그러나 우리 태조가 다시 주사를 이끄시어 진도에서 왜적들을 쳐부수니 적도의 기세가 꺽이고, 노량, 부산에서 끝가지 왜적들을 치시니 강산이 지켜진 것이 모두 우리 태조의 덕이었다. 그러나 왕은 끝까지 시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 태조를 다시 벌하려 하니, 수하와 남도의 백성까지 크게 상할 걸 염려한 태조께서 대의를 위해 거병하시고, 왕은 태조를 용서하고 효유하라는 이항복 이덕형의 충언을 듣지 아니하다가 당해내지 못하고 끝내 야인마저 끌어들였다가 왕과 왕자 비빈이 모두 참살당하는 변이 일이 일어났으니 이는 모두 왕이 자초한 것이었다. 

일찍이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에게 나라가 침탈당하였으나 범려, 문종 같은 재상과 장수를 두고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하여 끝내 성공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총기가 흐려져 범려를 중용치 않고 문종에게 자결을 명하고 정사에 관심을 잃었으니, 월은 급격히 국운이 쇠하였다. 송휘종은 거란을 치기 위하여 금을 끌어들였으니 오히려 금에게 강산을 침탈당하고 두 황제가 오랑캐의 땅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였으니 금이 곧 여진이 세운 나라였으니 어찌 이들을 믿고 끌어들인단 말인가? 선종이 마원과 운대 28장을 아깐 광무제 같은 덕치를 베풀었다면 어찌 우리 태조께서도 충성을 다 바치시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선종은 종사를 지킨 충신들을 오히려 없애려 하니 이는 월왕 구천과 같고, 여진을 끌어들여 더 큰 화를 불렀으니 이는 송휘종과 같으니 어찌 종사가 무사할 수 있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전조의 운이 다하고 강산이 다시 야인에게 빼앗길 위험에 처하였으나 우리 태조께서 새로 나라를 여시어 보위에 오르시고 모두 보존하셨으니 이는 곧 천명인 것이다. 

덧글

  • 위장효과 2015/11/18 23:23 #

    왕이 재위한지 32년이었으며 나이는 27세였다. => 이거는 손 좀 보셔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다른 오타들이야 뭐...)


  • 을파소 2015/11/18 23:26 #

    수정했습니다. 좀 큰 오타군요.
  • 네비아찌 2015/11/19 12:26 #

    명문장입니다!^^
  • 을파소 2015/11/19 21:20 #

    과찬이십니다,^^
  • paro1923 2015/11/19 20:04 # 삭제

    '역신열전'도 지어주셨으면 좋겟네요. 윤두수 같은...
  • 을파소 2015/11/19 21:21 #

    뭐 일단 간신열전에 원 모는 확실히 있습니다.
  • 까마귀옹 2015/11/19 20:54 #

    혹시 조선사 거기에 이런 구절도 있지 않나요?

    태조를 따라 한산도에 이르렀는데, 호령이 엄숙하고 군대가 정제된 것을 보고 호찬이 나아와서 비밀히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이 수군으로 무슨 일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이에 태조가 말하였다.
    "무엇을 이름인가?"
    호찬이 대답하였다.
    "왜적을 동남방에서 치는 것을 이름입니다."

    (제가 왜 이 구절을 언급하는지는 을파소님께서 가장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
  • 을파소 2015/11/19 21:22 #

    그건 신왕조의 실록에서 정X찬의 졸기에 나옵니다.
  • 까마귀옹 2015/11/19 21:24 #

    한가지만 여쭤봅시다. 신왕조 실록에서 X찬의 죽음은 어떻게 됩니까? 설마 '삼봉' 시즌 2가 되는 것은 아니죠?

  • 2015/11/20 08:5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행인1 2015/11/19 23:10 #

    백과사전 항목까지 미리 구상하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 2015/11/20 16:3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paro1923 2015/12/16 18:20 # 삭제

    심하게 뒷북입니다만, 안위가 출세했는데 '기축옥사'를 새 왕조에서 재조사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그랬다면 본문에서 '정여립의 모반'은 반대로 '정여립에게 누명을 씌우고 모살하다'로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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