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에 대한 좋은 얘기면서 변호성 기록 + 잡설 이순신/임진왜란

이게 다 권율 때문이다?

저렇게 포스팅했지만, 저기서도 말했듯이 배설 후손은 조상을 위해 나서는 게 원균과는 달리 어느 정도 인정받을 만 합니다. <명량>의 묘사가 너무 막나간 것도 사실인데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칠천량해전과 명량대첩 전 상황만 강조되어 도망자 이미지만 강한 것도 사실이죠. 다만 조상 변호의 방편으로 권율을 너무 공격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권율이 그렇게 무시당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사실 그러지 않아도 <선조실록<에서 배설에 대해 괜찮은 이야기와 경상우수사로서의 행적에 변명이 될 기사가 있습니다. 뭐 저 기사에 언급 안했지, 저 집안에서 낸 책에는 이 기사가 인용되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응서(金應瑞)의 병이 위중하니 그 군사를 대신 거느리도록 마땅히 전지를 하셔야 합니다. 선거이(宣居怡)가 차차로 부임한 뒤에 내려간다면 그 기간이 너무 멀고, 또 들으니 배설(裴楔)은 수질(水疾)이 있어서 주사(舟師)의 임무에 합당치 못하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배설이 용맹이 있는 장수라고 하나 수질이 있으면 주사에 쓸 수 없을 것이다.”
하자, 김응남이 아뢰기를,
“신들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윤선각이 아뢰기를,
“선전관(宣傳官) 조광익(趙光翼)이 도원수의 처소에서 와서 말하기를 ‘배설이 부임하려고 하는데 진주 백성들이 길을 막고 더 머물러 주기를 원하여 성을 나가지 못하게 하니, 도원수도 난처하게 생각하여 선거이로 하여금 막하에 와서 있게 하려고 한다.’ 하였습니다. 김응서는 병이 위중하여 군사의 일을 보살필 수 없으니, 우선 곽재우(郭再祐)로 대신 그 군사를 거느리도록 이에 대한 전지를 속히 내려 보내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속히 하라.”
하였다. 김응남이 아뢰기를,
“배설은 이미 수사(水使)가 되었으니 즉시 부임해야 할 것인데, 백성들에게 차단당하여 성을 나가지 못한다는 말은 극히 놀라운 일입니다. 이 같은 말이 조정에 들리게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선조실록> 1595년(선조 28년) 2월 6일

일단 배설이 수질, 요즘식으로 배멀미가 있었다는 건 <해소실기> 같은 칠천량해전의 기록에서도 나오므로 분명한 사실로 봐도 됩니다. 원균옹호론자들이 "육군 적성인 사람을 수군에 배치한 게 잘못이지!"라 하지만, 원균은 통제사 되기 전에 지가 먼저 자신있다고 나선 놈이고, 오히려 조정에선 수군 적성으로 봤는데 비해 배설은 그야말로 수군 적성은 아니라고 왕과 대신도 인정한 게 공식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상우수사 임명했으니 "육군 적성을 수군에 보내다니!"란 말은 원균이 아닌 배설에게 더 적합합니다. 

그리고 다른데로 가려니 백성들이 못 가게 막았다는 건 그만큼 민심을 얻었다는 것.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진주. 자 진주성 전투로 함락되었다가 일본군이 철수한 후 되찾은 곳인만큼 피해도 크고 민심도 흉흉해졌을 곳에서 백성들이 "더 머무럴 주세요."라 했다는 건 꽤나 능력발휘를 했다는 얘기죠. 

이런 정도면 경상우수사 말고 육군이나 지방관으로 활용했으면 정말 제대로 했을 사람인데, 왜 수군으로 보냈냐? 라고 말할 근거 정도는 되겠습니다. 그러니 괜한 권율 욕하지 말고 이런 거로 조상 변호하라고요.

명량대첩 전 배설이 탈영한 건 그 즈음 <난중일기>의 묘사나 배설이 겪은 일로 보아 극심한 배멀미로 인한 바다에 부적응+칠천량해전에서 살아 온 후유증+적군과 아군의 압도적 전력차+이 열악한 상황의 원인 제공을 한 왕과 조정에 대한 불만이 작용해서 인 듯합니다. 이걸 제대로 표현하자면 단순한 겁쟁이가 아닌 제대로된 대본과 연기력이 결합해 내면을 묘사해야겠지만....제작자들이 배설에게 그 정도로 관심을 가질 거 같진 않군요.

어쨋든 배설은 칠천량해전에서 배를 살려 명량대첩의 기반을 남기고 괜찮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미화만 할 것도 아니고 적절히 공과를 고루 살펴줘야겠죠.



덧글

  • sdf 2014/11/22 13:20 # 삭제

    배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 아니니 그런 고뇌를 담은 깊이감 있는 캐릭터성을 주긴 힘들었겠지만.. 그냥 탈영한 겁쟁이도 아니고 상관 프래깅 시도에 최고전력병기 사보타주라는 개씨발놈으로 만들어버린건 좀;;;
  • 을파소 2014/11/23 19:00 #

    그건 좀 심하긴 했죠.
  • 암호 2014/11/25 01:00 #

    그러한 상황 보고 안 한 설정덕에 통상대감을 상부보고도 안한 이중인격자로 만들었죠.
    그나저나 그런 억지 설정을 시켰을 배후가 분명할 감독이 상 받는 것 보면서, 영화 안 보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 까마귀옹 2014/11/22 22:21 #

    1. 다만 본문의 논란과는 별개로, 명량 해전 직전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군절도사란 사람이 적전 도주라는 중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니, 어지간히 큰 공을 세우지 않은 한 완전한 변호는 힘들지요. 배설의 공들도 사실 무장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의무들(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안한 원 모 씨.....)아니면 패전 당시 잔존 함대를 수습한 것이라는 참 보잘것 없어 보이는(?) 것이라서. 하다못해 배설이 도망치지 않고 울돌목에서 견야차 공(...)만큼이라도 싸우는 척을 했다면 모를까.

    2. 개인적인 생각에 논란(?)이 있는 당시 수군 무장들을 간략하게 평가하자면


    배설: 공이 있지만 적전 도주라는 과도 크다.
    김억추:공도 과도 없다(...). 뭐 한게 있어야지.

    원균: 설명 필요?
  • 을파소 2014/11/23 19:02 #

    비판할 건 비판해야지만, 배설이 탈영한 건 자기만 튄 거지, 배는 넘기고 간 거니까, 확실히 원균과는 다르죠. 정신적으로 사기에 악영향을 주었겠지만 이순신이란 치트키가 그건 다 극복해버리고....

    과 때문에 공을 묻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과를 묻으로고 공을 부풀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과를 뒤집어 씌워서도 안되죠. 간단한 일이지만, 문중이 끼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 Mavs 2014/11/22 21:14 # 삭제

    도주한 건 법적으로 사형감이지만 인간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조정에서도 수군 전력이 너무 약하니육군에 합류하라는 명을 내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애초에 배설이 아니었다면 명량해전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은 분명 인정받아야 합니다.
  • 을파소 2014/11/23 19:03 #

    탈영은 비판하되, 칠천량해전에서 일부라도 전력을 보존한 점 같은 건 인정해야죠.
  • 이런십장생 2014/11/23 22:59 #

    그냥 탈영했다("배설장군이 도주했습니다!!"정도?)로 해도 무난 했을텐데 암살시도에 배에 불까지 질러 너무 개객기로 묘사했으니 화날만하긴 했죠. 예전에도 댓글로 썼는데 차라리 창작할 꺼면 "거북선을 기간내에 완성하기엔 무리이니 이순신의 명령으로 고의 방화를 저질러 다른 돌파구를 찾는 묘책이었다" 라는 일종에 반전 장치로 활용했으면 어떨까 했지 말입니다.
  • 곡차 2014/12/01 04:38 # 삭제

    탈영도 좀 복잡한데. 배를 넘기고 이순신에게 허락받아서 육지로 나간걸로 나옵니다. 난중일기에도 나옵니다.
    근대 문제는 난중일기에도 자기가 육지로 가는걸 허락했는데 3일뒤에 배설이 도망갔다고 써있습니다.
    육지에 내려서 요양한다는거까지 허락했는데 도망갔다는건지. 좀 복잡한 상황이고 배설 입장에서 자기 직속함대를 13척을 이미 넘겼기 때문에 딱히 할일도 별로 없죠. 돌격장 수준도 아니고 수사인데 통제사가 직접 배를 지휘하는 상황인데요. 배설에 대해서 나쁜게 인식된건 애초에 칠천량 해전을 결과를 조정에 보고할때 배설이 탈출했다던가 하는 표현보다 도주했다라고 선전관이 보고한데서 기인한듯 합니다. 실제는 도주가 아니죠. 본영으로 후퇴후 전라도로 갔으니까요. 퇴각이 맞는데 도주라고 조정에서도 인식하던 상태에 이순신과 만남이 좋지가 않더군요. 왕명을 받은 교지에 대해서 예를 행하지 않은 부분과 이순신이 도착햇을때 배를 보내지 않았다고 불평하는듯한 부분이 난중일기에 나옵니다.
  • 을파소 2014/12/04 22:27 #

    아무래도 이순신인 몸 안 좋으면 육지 수영에서 쉬라는 정도였던 거 같은데 아예 떠나니 도망쳤다 한 거 같습니다. 영내에서 쉬랬는데 영외로 나갔으면 탈영 맞죠.

    말씀하신 난중일기에 나온 부분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조정에 불만이 있는 것도 겹치지 않았나 한 거구요. 처형 시 기록이 칠천량해전 패전의 수범이라 기록한 걸 보면 그 때 책임을 다 뒤집어 쓴 면도 있어 보여 말씀하신 것 같은 영향도 받았을텐데, 그래도 수군에서 끝까지 있었으면 그렇게 책임 다 쓰고 죽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 데프레 2014/12/05 13:46 # 삭제

    배설......탈영만 안했으면....... 칠천량에서 12척의 배를 구원해 퇴각하여 명량해전 승리의 밑거름이 되도록 한 명장이었다!! 식으로 어린이 위인전에 등장했을텐데.....ㅡㅡ;;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2011 이글루스 TOP 100

유사역사학 방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