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권율 때문이다? 이순신/임진왜란

영화 <명량> 개봉 후 배설 후손들이 항의할 때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영화에 나온 배설 묘사는 분명히 실제 역사보다 더 악당이 된 허구였고, 실제 역사에서도 칠천량해전과 명량대첩 전 도망쳤다는 점만 부각되는 면도 컸으니까.

그런데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이 기사를 보면...

배재영 박사는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경상좌수사 이억기, 충청병사 최호가 전사하고 조선 수군 삼만여 명이 수장된 칠천량 전투를 집중 분석했다. 사실 배설 장군은 칠천량 전투 직전에 열린 군사회의 때 "물이 얕고 협착한 칠천량은 전선을 운용하기 어려우니 함대를 전투에 유리한 한산도 본영으로 옮겨 왜군의 공격을 잠시 피한 다음 전투력을 복원하여 부산포로 재출병하는 것이 조선 수군을 살리고 조선을 살리는 길"이라는 의견을 펼쳤다. 

하지만 도원수 권율의 급전 독촉에 내몰린 원균은 배설 장군의 의견을 무시했고, 마침내 조선 수군은 궤멸 당했다. 그런데도 당파 싸움에 골몰하느라 중요 직책의 장군 자리를 자기 사람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조정 대신들은 12척의 전선을 천신만고 끝에 살려 이순신에게 인계하고 청야작전으로 한산도 주민들을 살려낸 배설 장군을 오히려 처형했다.
(중략)
또 배윤호 비대위 대변인은 "배설 탄핵은 자신들의 실정을 지적해온 배설을 두려워한 조정 대신들이 당시 병조판서 이항복의 장인이자 도원수인 권율을 살리기 위해 모함을 한 때문"이라면서 1599년 49세의 나이로 권율에 의해 억울하게 참수된 배설 장군이 불과 6년 뒤인 1605년 1등공신에 책록된 것이 결과적으로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선조는 1597년 7월 22일 어전회의에서 "패전 책임은 도원수(권율)에게 있다"고 지적하고 배설을 수군통제사에 임명하려 하지만 이항복 등은 패전 책임을 져야할 권율의 장계를 근거로 오히려 배설 등을 탄핵했다.  

이건 또 “이게 다 권율이 독촉해서  때문이다.”인데, 원균옹호론자도 권율이 독촉해서 그렇다고 우기고, 정기룡을 과장하는 사람도 권율은 사위 덕에 1등공신 된 것처럼 말하더니 이젠 배설 후손까지 권율 탓이다.

물론 당대에도 행주대첩 후로는 이렇다 할 승첩이 없다고 권율을 비판하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지. 왜 다른 사람 띄우려는 용도로 권율을 폄하하는 거냐? 무남독녀였으니 후손 없다 이거냐?  

우선 권율의 수군 출전 독촉, 원균옹호론자도 이걸로 패전의 책임을 원균에게 돌리려고 하는데, 수군 수장을 곤장까지 친 건 너무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군의 진격은 원균이 통제사가 되기 전 상소를 올려 주장한 사실이며, 이로써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임명한 선조도 강력하게 원하는 일이었다. 안 그럼 자신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으니까. 그래서 선조는 “전일과 같이 후퇴하여 적을 놓아준다면 나라에는 법이 있고 나 역시 사사로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까지 하였다. 이게 7월 10일에 한 말이라 원균에겐 전달되기 전에 칠천량해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날 갑자기 말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방침을 강력히 확인 한 것이므로 그 전부토 권율로서도 그 압박을 안 받을 수가 없다. 그리고 왕과 조정, 삼도통제사 사이에 있는 도원수로 왕이 원하는 바를 독촉 안 할 수가 없다.  

결국 칠천량해전은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임명한 잘못된 인사와 이를 무마하려는 독촉, 그리고 원균의 무능으로 인한 것인데 권율이 다 뒤집어 쓸 순 없지 않은가?

 자 그럼 배설 탄핵은 과연 ‘조정 대신들이 당시 병조판서 이항복의 장인이자 도원수인 권율을 살리기 위해 모함을 한 때문’인가? 저 기사에선 ‘선조는 1597년 7월 22일 어전회의에서 "패전 책임은 도원수(권율)에게 있다"고 지적하고 배설을 수군통제사에 임명하려 하지만 이항복 등은 패전 책임을 져야할 권율의 장계를 근거로 오히려 배설 등을 탄핵했다.’라고 한다.

<선조실록> 에 따르면 1597년 7월 22일 어전회의에서 선조는 “원균은 처음부터 가려고 하지 않았으나 남이공의 말을 들으면 배설도 ‘비록 군법에 의하여 나 홀로 죽음을 당할지언정 군졸들을 어떻게 사지에 들여 보내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대체로 모든 일은 사세를 살펴보고 시행하되 요해처는 고수해야 옳은 것이다. 이번 일은 도원수가 원균을 독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패배가 있게 된 것이다.”라 하긴 했는데, 권율이 독촉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자신에게 있는 건 무시하는 발언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배설에 대한 언급은 이게 끝. 저 기사와는 달리 배설을 통제사로 임명하려 했단 말은 없다. 물론 저기에 너무 생략하여 다른 사료에 나온 걸 말 안 했을 순 있다. 그것이 공신력 있는 사료라면 믿을 수 있지만, 적어도 어전회의를 기록한 그 날의 실록 기사엔 안 나온다. 선조는 “이미 지난 일을 논의하면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일변으로 통제사를 차출하여 남은 배를 수습하면서 일변으로는 도독부에 알리고, 또 일변으로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해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을 뿐이며, 김명원이 장수를 보내면 누가 적임자일까 하는 말에 이항복이 “오늘날의 할 일은 단지 적절한 인재 선발에 있습니다.”라고 하자 선조는 여기에 대해선 말 안하고 위에 나온 “원균은 처음부터 가려고 하지 않았으나...” 라고 말을 해서 슬쩍 화제를 돌렸다. 

이 때 이항복이 말한 ‘적절한 인재’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선조는 ‘적절한 인재’를 말하는데 “이게 다 도원수 때문이다.”라 한 것일까? 연성재거사님의 이 포스팅(http://xuecheng.egloos.com/4151131)에서 볼 수 있는 <징비록> 초본의 이 날 광경에서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과 병조판서兵曹判書 이항복李恒福이 조용히 대답하였다. "이는 원균元均의 죄입니다. 마땅히 이순신을 기용하여 통제사에 임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임금께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다가 나가셨다.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이순신을) 통제사에 (임명한다는) 명령(旨)을 얻었다.’라 한 것을 본다면, <선조실록>에서 김명원이 누굴 보내는 게 좋을지 말하자 이항복이 말한 ‘적절한 인재’가 누구인지는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사실 그게 아니라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지만 그리고 <징비록> 초본에서 선조가 이를 노골적으로 피했다는 걸 보면, <선조실록>에서 이항복이 ‘적절한 인재’를 말하자 선조는 ‘이항복의 장인의 책임’을 거론한 저의가 의심된다.

이런 사정을 보면 권율 책임론은 선조의 책임방기의 수단이다. 도원수로서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장 큰 책임자는 아니다. 그리고 저 날 회의에서 이항복도 장인을 적극 변호하지도 않았고 배설을 딱히 탄핵하지도 않았다.

분명 배설은 지나치게 까이는 면이 있고, 영화 <명량>은 그 정도를 넘어 억울한말한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권율 걸고 넘어질 건 없지 않은가? 

덧글

  • 연성재거사 2014/11/16 21:01 #

    그놈의 문중 빠심...........-_-;;;;
  • 을파소 2014/11/17 23:26 #

    우리 문중무오설
  • rumic71 2014/11/16 21:12 #

    결국 이게 다 선조 때문...
  • 을파소 2014/11/17 23:26 #

    만악의 근원 선조(...)
  • rezen 2014/11/16 21:59 #

    문중이 개입한 그 순간부턴 이해관계만 남고 진실은 무의미해지죠.
  • 을파소 2014/11/17 23:27 #

    우리 조상은 훌륭하니가요. 남의 조상을 알바 없습니다.
  • bergi10 2014/11/16 22:31 #

    저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걸고 넘어질법 하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의 상황은 너무 ... 심하네요.

  • 을파소 2014/11/17 23:27 #

    저도 어느 정도는 걸고 넘어질법 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권율을 끌어들여 비하하는 건 심하죠.
  • 아인베르츠 2014/11/16 22:33 #

    하고많은 원씨 선조 중에서 하필 개만도 못한 원균을 왜 치대하려는거지.....
  • 을파소 2014/11/17 23:27 #

    유명하다 그거 뿐이죠.
  • 피그말리온 2014/11/16 22:49 #

    조만간 안동 권씨 출동 일라나요;;...
  • 을파소 2014/11/17 23:28 #

    그런데 권율은 무남독녀라 직계자손이...
  • 아빠늑대 2014/11/18 14:39 #

    파가 다릅니다. 그래서 권씨임에도 안출동 크크크
  • 허헛 2014/11/17 01:11 # 삭제

    일제시대, 625 거치면서 반상의 구분이 없어졌다고들 하더니 그게 아니었네요. 아직도 살아있네!
  • 을파소 2014/11/17 23:28 #

    그냥 있어도 상관없는 거에 열을 올리는 거죠.
  • 1 2014/11/17 02:13 # 삭제

    권율 안습...
  • 을파소 2014/11/17 23:28 #

    뭔 잘못을 했다고...
  • 지녀 2014/11/17 22:25 #

    이게 다 선조가 통제사를 모함해서 생기는 일이니 다 선조 탓 ㅡㅡ
  • 을파소 2014/11/17 23:29 #

    이게 다 선조 때문...
  • 네비아찌 2014/11/17 17:58 #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3번함도 원래 권율함으로 하려다가 해군이 반대해서 서애류성룡함으로 명명되었죠.
  • 을파소 2014/11/17 23:30 #

    그 얘긴 듣긴 했습니다. 원균은 그저 해군의 흑역사일 뿐인데 말이죠,
  • 암호 2014/11/17 22:20 #

    참, 재미난 것이 배설이 붙잡힌 곳은 다름아닌 고향이기도 하는 선산인데, 다름아닌 구미이죠.
    근데, 백사 이항복 후손이 되는 이종찬 장군이 육군대학 총장시절에 따로 TO 떼와서 준장까지 승진시킨 김재규가...
    그래서, 해군 쪽에서 아무리 현 정권 이었지만, 반발한 것 같다고 봅니다.

    아, 순흥 안씨들은 안위가 그렇게나 찌질이 취급당하는데, 말도 안 한 것이 생각나네요. 손주가 이균이라 상향 조정된 창빈 안씨가 있어 그러한 것인지...
  • 을파소 2014/11/17 23:32 #

    정작 억울할만한데가 별로 안 나서는 거 같습니다.
  • 암호 2014/11/17 23:56 #

    참 의아하죠. 전에 기회가 있었으면 모 의원(?)한테 [종가가 이런 곳에는 관심 없는 모양이네요. 복무한 군에서 그렇게나 떠 받드는 통제사가 급승진한 시킨 분을 이렇게 모독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고, 질문할까 생각했었는데, 자기 전공 및 업적에 대해서는 영 입을 다물어, 그냥 넘어갔지만 말입니다.
  • 零丁洋 2014/11/17 22:45 #

    아직 조선은 우리의 과거가 아닌가 봅니다.^^ 집에 굴러다니는 오래된 주간조선에서 상소문 관련 연재물을 보니 특히 조선 후기 부분에는 후손들이 난리친다고 성씨만 나와 있더군요. 그만큼 조선역사는 아직 투명한 조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중만이 아니라 온갖 이데올로기가 자료들에 층층이 투영되고 굴절되어 뒤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을파소 2014/11/17 23:42 #

    어차피 사료엔 쓴 사람 시각이 반영되는 거고 그래서 교차검증이란 걸 해야 하는 거죠. 그런 것 없이 입맛 맞는 거만 인용해 우리 조상이 최고 하는 거고요.
  • 암호 2014/11/17 23:54 #

    뭐, 제가 사는 용인에 있던 어느 유림은 원균 밑에 있다고 원균처럼 도망갔다고 쓰지 말라는 탄원을 낸 글도 있죠.
  • 아빠늑대 2014/11/18 16:32 #

    권율~ 쯤 씹어야~ 우리 x님께서 돋보이지 않겠슴니까? 가능하다면 이순신도 좀 씹어 주시고~
  • 을파소 2014/11/22 10:52 #

    이순신은 너무 대단하고 어설프게 까면 반박이 터져 나오지만, 권율은 이순신만큼 유명하지만 만만해 보인다, 이게 아닐가 싶습니다.
  • 안녕하세요 2014/11/18 19:50 # 삭제

    검색을 하다 오게됐는데 제가 자주 가는 한 커뮤에서도 권율이 칠천량패전을 만든장본인 가운데 1명이다라고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답답합니다. 그런데 물어보고싶은 것이 있는데 임진왜란때 명군이 안왔으면 조선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끝내는게 어려웠을까요?
  • Mavs 2014/11/19 02:23 # 삭제

    명군이 없어도 의병에 의해 왜군의 진격이 좌절되었겠지만 조선 조정이 스스로 전쟁을 끝내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것도 선조 때문...)
  • ㅁㄴㅇ 2014/11/21 12:14 # 삭제

    어떻게든 끝낼 순 있었겠지만 피해가 더 커졌겠죠. 명군이 다른 건 몰라도 평양성 탈환 때의 포스는 후덜덜했습니다.
  • 을파소 2014/11/22 11:03 #

    정확히 어떻게 될진 알수 없죠. 일단 일본의 공세종말점은 그 정도였을 겁니다. 명군이 없으면 행패부릴 일 없고 거기 보급해줄 일 없고 일본군 추격에 말릴 것도 없지만, 대신 조선 단독인만큼 힘은 더 들겠죠. 확실히 평양성 탈환전의 명군은 제 역할 제대로 해냈고, 일단 참전 자체가 일본군에게 압작을 주는 효과도 있기에 그걸 무시할 순 없습니다.
  • 데프레 2015/04/03 14:50 # 삭제

    배설의 고향이며 활동무대였던 구미, 성주, 김천에서 배설은 금기어 입니다. 개령, 지례(둘다 지금의 경북 김천시)를 왜군으로 부터 해방하고 왜군을 구축하려는 김면장군을 방해 놓아 과로사 + 전염병으로 돌아가시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인동부사(인동은 지금의 구미 일대)로 재직하면서 천생산성과 금오산성을 보수한 공적이 있다하나 김면 장군의 일로 당시 군민들의 원성을 많이 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량해전 직전 탈영해서 선산까지 도망왔는데 배설의 체포에 선산 백성들의 결정적인 제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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