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스카이폴&아르고 관람 문화

두 영화 모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다면 살포시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007스카이폴

1. 제가 극장에서 007영화를 본 건 전작은 퀀텀오브솔러스가 처음이군요. 카지노로얄은 카지노로 봤고, 간간히 케이블이나 공중파로 방송하는 이전 007 영화를 본 적은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주로 로저무어 나온 게 많이 나오더군요.

덕분에 이 영화 마지막의 M과 Q에 머니페니까지 진영이 갖추어지는 부분은 이해할 순 있있지만 007의 올드팬이라고까지 할 순 없으니 그냥 시리즈가 비로소 에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는 걸 알겠다 정도? 예전 007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보셨으면 더 좋아하실 영화 같습니다. 크레이그 본드는 예전 본드 같지가 않다고 별로라고 하셨거든요.

그래도 제가 올드팬은 아니라도 역시 그 부분이 흥미롭긴 했습니다.

2. 그런데 여기서 M에 대해 궁금한 게...살바가 바로 안 죽인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M의 모든 걸 무너뜨리고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각인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이렇게 나올만 하죠.

만일 바로 M을 죽였으면, 테러로 순직한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영웅으로 죽었을 겁니다. 정보요원 리스트 잃고 궁지에 몰렸는데도 훈장 하나 받고 체면은 차리고 은퇴하라는 권유를 받던 사람이넫, 테러로 한 방에 죽으면 당연히 훈장 추서에 관 위에 유니온 잭을 덮고 찬란한 추모사를 들으면서 성대한 장례식을 해줬겠죠. 하지만 정보요원 리스트가 탈취되고 조금씩 내용을 공개하여 정보기관 수장으로 궁지로 몰고...

일부러 잡혔다가 탈출한 것도 그런 맥락이면 번거롭지만 할 만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이 테러당하고 임시 본부로 옮겼는데, 거기 구금중이던 테러범이 탈출하여 9호선에서 테러 일으키고, 국회의사당 경비를 쏴죽이면서 국정원장 청문회가 열리는 현장을 기습하고 달아난 겁니다. 이런 일이 실제 벌어지면 야당과 언론이 국정원장 퇴진과 책임자 문책을 주장하는 건 기본이고, 여당조차도 국정원장을 버릴 겁니다. M에 대한 테러도 이런 목적이면 이해되는데...

궁금한 건 정보기관 수장이 경호팀 하나 안 보인다는 겁니다. 초반 테러당할 때나 청문회에서나 보좌관 하나 데리고 다닌다니...아무리 궁지에 몰렷어도 현직인데 경호원은 기본 아닌가요? 게다가 무고한 피해를 막으러 환적한 곳으로 가는 건 좋은데, 왜 본드 하나, 거기에 관리인 할아마버 하나 더해서 나홀로 집에를 찍는 건지....(아, 홀로는 아닌가?)

비록 더 이상 자리 유지하긴 어렵겠지만, 일반인도 명백한 살해 위협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나마 경호할 경찰 붙여줄 판에 정보기관 수장이 그런 모습이라니...대테러부대라도 매복시켜놔야 할 거 같은데...뭐 본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겠지만, 의아하긴 합니다.

3. 전작까지 나온 퀀텀은 어디로 갔을지 모르겠군요. 살바가 탈출하고도 부하와 접선 금방하고, 헬기까지 끌고 오는 거 봐서 퀀텀이 배후이거나 손잡았나 했는데 끝까지 안 나오더군요. 차라리 퀀텀과 손 잡았다고 하면 2에서 M을 본드 혼자 지키는 것도 대강이나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작에서도 M의 측근에 있던 자가 퀀텀 일원이었으니, 여기서도 퀀텀 조직원이 내부에서 돕기 때문에 '현재 MI6에서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건 본드와 Q, 태너 정도인데, 경호할 만한 사람은 본드 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아니면 보너스 영상으로 M의 사망 소식이 실린 신문을 읽으면서 모니터 속 살바의 사진을 지우는 화이트씨를 살짝 등장시켜도 연결될텐데...

차기작에선 다시 나올지도 모르긴 합니다만, 아직은 알 수 없겠군요. 

아르고
1. 벤 애플렉의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뛰어나군요. 007처럼 첩보를 다루지만, 주인공은 총 한 번 안 쏩니다. 이게 당연한 게 혁명 직후의 이란에서 백인이 권총 가지고 있는 건 "CIA가 여기있습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치는 격이니까요.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이 점거당한 가운데 탈출한 6명이 캐나다 대사 관저에 숨고, 이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자전거 보내기, 교사로 위장 등 다양한 작전이 모색되다가 가짜 영화를 기획하여 제작 발표회까지 열고, 촬영지 확인하는 제작팀으로 위장해 구출한다는 영화같지만 실화라는 작전으로 주인공이 총 쏠 일도 없고, 총 쏜 순간 실패기에 그래서도 안되지만..

긴장감을 팽팽히 잘 유지합니다. 전반부는 블랙코미디에 가깝게 가짜 영화를 기획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후반부 구출작전이 실행되는 장면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연출하였습니다.

그것이 전반부를 본 때 '후반부에서 정체를 눈치 챈 이란 혁명군이 잡으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탈출하겠지.'라고 예상하였고, 그 예상이 정확히 맞았는데도 긴장감은 긴장감대로 느껴지더군요.

2. CIA가 이란에서 미국인 구출하는 영화라 "미국 만세!"가 아니고,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책임도 적지 않음을 초반 내레이션으로 풀어냅니다. 이란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영화의 배경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해줍니다.

가짜 영화 아르고 만들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캐나다 대사관저로 탈출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불안감도 생생하고, 미국 내 이란이 폭행당하는 장면도 미국 내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네요. 특히 가짜 영화의 제작 발표회 모습과 이란의 미국 비판 성명과 테러와 협상 안 한다는 미국측 성명을 교차하며 보여주는 장면의 연출도 훌륭하였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선 지루해질 수 있으니 액션을 원한다면 그냥 스카이폴이나...그건 길어서 지루하려나?

3. 작전은 성공하였지만, 남은 인질의 안전을 위하여 CIA의 개입은 극비로 하고 캐나다 정부가 다한 거처럼 공식발표하여 미국 국민에게 "캐나다도 저렇게 해주는데 CIA 쟤들은 뭐임?"이란 소리 듣는 건 정보기관의 비애(?)가 느껴지더군요.

주인공도 작전 성공으로 치하 받지만...

"너님 훈장 수여 준비하셈 ㅊㅎㅊㅎ"
"그럼 아들 불러 자랑하게 시간 좀..."
"ㄴㄴ 기밀이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됨"
"헐 그럼 훈장도 줬다 도로 뺐겠네염?"
"당연 ㅋㅋ"
"ㅋㅋㅋ"

....이 보다는 진지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그래도 기밀해제 후 훈장은 돌려 받았다고 자막으로 나오더군요.

다른 정부기관은 욕 먹어도 만회할 겸 잘한 거 자랑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정보기관은 아무리 욕 먹어도 "이건 잘했는데..."란 말을 꺼낼 순 없으니....

초반부에 주인공이 CIA 건물에 들어가면서도 순직한 요원을 기리면서 별만 새겨둔, 국정원에도 있다는 추모벽을 지나간 것도 이런 걸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겠죠. 다행히 이 작전에서 순직한 요원은 없습니다만...

4. 엔등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영화 배역과 실제 인물 사진, 그리고 당시 모습과 영화 장면을 보여주는데, 재현도가 훌륭하더군요. 일물들을 실제에 맞게 잘 분장시켜 얼핏 보면 그냥 같은 사람 사진 연이어 보여주는 거 같고, 당시 장면도 잘 재현하고, 여기에 지미 카터의 육성까지 나옵니다. 조금만 잇음 나오니 크레딧 올라가자 마자 나오지 말고, 여기까진 보고 나와야 다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명대사
"아르고, 엿이나 쳐먹어!"

...이거 욕 하는 거 아니고 진짜로 이 영화를 대표하는 명대사임. 보면 압니다. 

덧글

  • 잠본이 2012/11/04 11:46 #

    3.은 정말 의아한 부분이었는데 을파소님께서 제시하신 아이디어대로 갔으면 훨씬 설득력이 넘쳤을 것 같습니다.
    퀀텀의 모토가 '우린 어디에나 있다'였으니 진짜 누구도 못믿을 상황일테고... 아이고 감독 왜 이런걸 놓쳤소
  • 을파소 2012/11/04 16:17 #

    퀀텀의 설정이라면 총리나 여왕 주변에 암살자를 심어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으니 살짝 연결할만한데 말이죠. 복고회귀라도 과거엔 스펙터랑 적이었니 그걸 대체할 세력으로 퀀텀과의 대결을 암시해도 역시 복고 분위기 낼 수 있을 거고요.
  • 남선북마 2012/11/04 23:19 #

    스카이폴은 아무리 생각해도 봐도 기존의 카지노로얄, 퀀텀오브솔러스의 설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새로이 만든 별개의 작품같습니다.. 전통의 007시리즈로 복귀하려면 스펙터도 다뤄야지 싶었는데.. 무시하더군요..
  • 잠본이 2012/11/05 18:52 #

  • 獨步 2012/11/05 10:40 # 삭제

    우디 앨런(!)이 주연으로 나오기도 했다던 '카지노 로얄'을 빼면 코너리옹의 자기복제였다고 할 수 있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을 합쳐(이 두 편은 당연 정식시리즈는 아니지만 007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는 않으므로) 007 영화시리즈 전편을 보았고 레밍턴 스틸 피어스 브로스넌이 첫선을 보인 '골드아이'부터는 전편 상영관관람을 했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크레이그를 중심으로 한 다크007(?)로의 전환은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대중문화상품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007에 대해서 많은 대화가 오갔던 적이 과연 있었나 싶거든요. 국내한정으로 할 베리가 '창천2동대'라고 박힌 1970년대풍 예비군군복(...도대체 저런건 어디서 구했을지)같은 의상을 입고 나왔던 그 때 빼고는.

    다른 이야기를 더 꺼내기 시작하면 댓글로는 너무 길어질 듯 싶으니 그만 접고, 두 가지만.

    1. 아무리 그래도 故데스몬드 르웰린옹이 아닌 다른 Q만큼은 심정적으로 아직 받아들이기가 힘들구나. 물론 새로운 젊은 Q는 '향수 : 살인자의 일기'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기는 했었다만...
    2. 어차피 새로 시작하기로 했으니 닥터노부터 달려(퍽!)...
  • 잠본이 2012/11/05 18:51 #

    영화를 안본 나조차도 알고 있는 창천2동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위장효과 2012/11/09 16:28 #

    한 텀 빠지고 퀀텀을 써먹겠죠. 스펙터가 만악의 근원으로 등장하던 초기작에서도 1,2에서 연달아 스펙터와 상대했지만 3에서 한 숨 돌리고 나서 4에서까지 최종보스는 끝내 공개안하다가 5,6,7에서 연달아 최종보스 블로펠트와 맞닥뜨렸던 적도 있으니까요.
  • SAGA 2012/11/17 18:12 #

    007은 퀀텀의 존재를 띄워주기 위해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를 만든 거 같은데... 이번 작에 퀀텀이 안나온다고 해서 좀 의야함을 느꼈지요.

    그리고 아르고는 보려고 마음 먹은 순간 영화관에서 팽 당해서 눈물을 삼킨 작품임다. DVD나 비디오로 나오면 꼭 봐야겠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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