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여진족(1) 이순신/임진왜란

누르하치가 임진왜란 당시 참전을 제안했지만 조선은 이를 거절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 같은 민족의 제안을 사대주의에 찌들어 거절했다는 개드립으로 유명하다는 게 슬프지만....여기에 대해선 실록 기록을 간단하게 포스팅으로 소개한 바 있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조선으로서는 여진족의 참전은 결코 반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적 위기사항에서 위협을 더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지.

다만 상황이 위급하다 보니 여진족의 참전 관련 유언비어가 돌고 그게 선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나 보다. 선조가어디서 들었는지 "북병사(北兵使)가 야인들에게 왜적의 토벌을 청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은 일도 있다. 물론 답은 그런 적 없다는 것. 아니면 됐다는 생각이었는 지 그 다음에 바로 다른 주제로 애기가 넘어가버려 알순 없지만, 다른 기록을 보면 짐작은 할 수 있다.


1592년 9월 14일, 유몽인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일과 함께 받은 자문(咨文)에 있던 내용이 언급되는데, 윤두수가 말하길 거기엔 건주위의 老乙可赤, 그러니까 누르하치가 구원해 줄것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윤두수의 의견은.....



"사실이면 우리나라는 멸망할 것 입니다."


...라고 한다. 누르하치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여겨 쥐새끼 같은 왜구들을 몰아내겠다고 나섰다는 애기를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지만, 조선 정부가 누르하치의 참전 가능성을 들은 건 오히려 명나라를 통해서. 그리고 그 반응이 '국망의 위기' 수준이었다. 윤두수 말고도 다른 대신들도 요동에 사람을 보내 누르하치의 참전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 가장 우려스러운 건 누르하치와 건주 여진이 겨울이 되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명 황제의 칙서를 들이밀 경우, 거절할 명분도 마땅치 않으므로, 어떻게든 막야한다는 인식이었다. 

사실 조선으로서는 누르하치의 건주위가 참전하는 걸 꺼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냥 여진족이라서가 아니다. 먼치킨 국왕 세종대왕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절, 최윤덕이 4군을 설치하면서 파저강을 정벌해 여진족을 몰아냈다는 거야 어지간한 한국인이라면 대충은 들어 알 일이지만.....그 여진족이 건주위였다. 그 후 조선은 명의 요청을 맏아들여 또 건주위를 정벌하였는데, 이 때 조선은 건주위를 이끌던 이만주를 죽였다. 그 후 건주위는 가끔 조선에 토산물을 바칠 때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 자주 변방을 노략질하는 일이 많았으니....

게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전인 1589년, 조선은 건주위에서 망명온 여진족의 증언을 통해 누르하치의 야망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입수한 상태였다. 이들의 증언을 들은 평안병사의 보고에 의하면....

“만포진(滿浦鎭)의 보고에 의하면, 건주위(建州衛)의 피인(彼人) 동평자(童坪者) 등 18명과 동해고(童海考) 등 16명 및 동다지(童多之) 등 48명이 귀순해 와서 말하기를 ‘좌위 추장(左衛酋長) 노을가치(老乙可赤) 형제(兄弟)가 건주위(建州衛)의 추장 이이난(李以難) 등을 휘하(麾下)로 만든 뒤에 노을가치는 스스로 왕(王)이라 칭하고 그 아우는 선장(船將)이라 칭하면서 궁시(弓矢) 등의 물건을 많이 만들고 그 군사를 4운(運)으로 나누었는데, 제 1은 환도군(環刀軍), 제 2는 철퇴군(鐵鎚軍), 제 3은 곶치군(串赤軍), 제 4는 능사군(能射軍)이라 하여 가끔 연습을 하고, 군호(群胡)를 협제(脅制) 하여 그 명령에 복종하는 자는 술을 주고 명령을 어기는 자는 머리를 베면서 장차 중국을 상대로 보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였는데, 소위 군호(群胡)의 말이 다 똑같습니다. 모린(毛麟)은 이미 건주위를 거느리고 와서 복종하였고, 온화위(溫火衛)는 복종하지 아니하여 서로 공격을 가하고 있으니, 노을가치의 사나운 상태를 여기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호인(胡人)들이 총병관(摠兵官)에게서 많은 금은(金銀)을 받았으니 중국에 보복하리라는 설은 무리인 듯하지만, 우리로서는 사전의 준비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도(本道)가 오랜 태평 속에 모든 방비가 극히 허술하니 조정은 십분 상량해서 서쪽 변방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그닥 아름다운 관계였다고는 할 수 없는 건주위가,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국경 방비를 더 튼실히 해야한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건주위의 임진왜란 참전이 달가울리 없다. 게다가 역사를 다 알고 하는 얘기지만 결국엔 총병관(摠兵官)에게서 많은 금은(金銀)을 받았으니 중국에 보복하고 말았으니.....

이런 관계였는데 '누르하치는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여겼다'고 해봐야 뭐 안심할 수 있겠나? 부모의 나라면 콩가루 집안이란 소리인데.

건주위나 여진족 참전에 대한 조선의 생각을 이글루스에서 유행하는 방식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진족 참전 우려 >>>>>> 가대


여진족 참전 걱정된다 


그렇기에 조선도 이만주를 죽인 일까지 언급하며 명나라에 건주위 참전에 대한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생각하건대, 본국의 서북쪽 일대는 건주(建州) 삼위(三衛)와 국경이 연접해 있어 조상 때부터 누차 그들로 인한 환란을 받았습니다. 명조(明朝) 열성(列聖)께서 만리를 훤히 내다보는 명견(明見)에 힘입어 성화(成化) 15년 에 헌종 순황제(憲宗純皇帝)께서 크게 화를 내시어 군사를 출병시키면서 본국(本國)에 칙유(勅諭), 힘을 합쳐 정벌하여 그들의 두목인 이만주(李滿住)를 잡아 목베었습니다. 그로부터 저 적도의 여얼(餘孽)들은 늘 분한 생각을 품고서 매번 저희 나라 압록강 연안에 이르러 노략질을 자행하였습니다. 본국이 항상 국경의 수비에 애쓴 보람으로 겨우 막았습니다만, 이들 오랑캐가 본국에 원한을 품은 것은 한 시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사나운 마음으로 틈을 엿보아 온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들 무리인 마삼비(馬三非) 등이 왜적을 토벌한다는 이름을 빌어 병부에 아뢰면서 겉으로는 양순하게 돕는 체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물어뜯으려는 계책을 품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예측할 수 없는 화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누르하치도 참전에 그렇게 적극적인 건 아니었고, 조선도 거부하다 보니 이 문제는 그냥저냥 넘어가게 된다. 

건주위는 그럭저럭 참전을 무마했다지만, 한편 함경도 쪽에서는 두만강 쪽 여진족들이 일본군에게 보복하려 한다는 말도 나온다. 보통은 한양으로 불러 적당히 베풀어주디고 했지만, 이 대는 당연히 그럴 형편이 아니다보니 문제가 생길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조정에서는 일단 급한대로 관목(官木) 1백 50필을 이 쪽 여진족에게 나눠주어 무마하기로 한다.

그래도 아름다운 일도 있긴 했다. 여진족 부족에서 조선 장수에게 말과 갑옷을 보내줘 조선은 관직도 내려주기도 한 일도 있으니. 물론 그리 아름답진 못한 일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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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07/31 22: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을파소 2011/07/31 23:21 #

    정확히 그거까지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관련됐을 가능성은 있는 거 같습니다.
  • vftuyy 2011/07/31 23:03 # 삭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도 안가고 해서 그냥 스크롤 내렸지만 명군이 와서 개판치고 행패부린 것을 보면 차라리 여진족이 참전한 것이 전투력도 명짱개에게 비교할바 없이 엄청나게 강하고 하여간 여러모로 좋았을 것이다.
    선조인지 병신인지 그 쓰레기를 그렇게까지 쉴드쳐주고 싶냐?
    하여간 이씨쓰레기좃선은 두고두고 까야 제맛.
  • 궁상각치우 2011/07/31 23:07 #

    이해가 안가면 이런 댓글을 싸지를 마세요;
  • NOT_DiGITAL 2011/07/31 23:16 #

    자기 스스로 이해력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기 수준을 폭로하는 덧글을 쓰는건 마조 성향이라서인가요? 이해가 안되는 심리로군요. :-P

    NOT DiGITAL
  • ㅇㅈㅋㅅ 2011/07/31 23:19 # 삭제

    저도 도대체 뭐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 을파소 2011/07/31 23:23 #

    그게 그렇게 간단해 보이나요?
  • JOSH 2011/08/01 00:41 #

    대체 뭘 쳐먹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걸까?
  • vftuyy 2011/08/01 13:15 # 삭제

    JOSH//네가 쳐먹는거나 살펴봐라.
    반론을 못하겠으면 그냥 꺼지고
  • 대공 2011/08/01 17:47 #

    글을 읽고 댓글을 쓰세염
  • 海凡申九™ 2011/08/01 18:34 #

    명나라 군대도 회하 이남의 병사는 선량했으나 회하 이북의 병사는 잔혹하고 약탈을 즐겼지만
    여진족이 지나가면 인적이 끊겼을 건데


    이 비로긴은 뭔 개소리를 하는 겐가?
  • 누군가의친구 2011/08/01 19:12 #

    댓글은 글을 읽고 쓰라는 거지.풋
  • ㅇㅈㅋㅅ 2011/07/31 23:22 # 삭제

    막강 여진족이 참전했으면 임진왜란 10일만에 왜구들 다 쳐발리고 종전됐을 듯.
    멍청한 선조 새끼와 성리학 탈레반 새끼들 ㅉㅉㅉ...
  • 을파소 2011/07/31 23:24 #

    그걸 공짜로 해줄까요?
  • ㅇㅈㅋㅅ 2011/07/31 23:42 # 삭제

    어차피 선조새끼야 전쟁나자 임금이라는 새끼가 나라, 백성 다버리고 존나게 도망쳐서 혼자서 명나라 망명해서 목숨 구걸하려던 새끼인데 차라리 전쟁이라도 빨리 끝나서 백성 희생을 줄였어야지 그런게 뭔 상관?
  • Jes 2011/07/31 23:44 #

    올ㅋ 조선성 신설
  • Mr 스노우 2011/08/01 11:21 #

    ㅇㅈㅋㅅ/ 나 공부 안한다고 자랑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입니다 -_-;
  • Real 2011/08/01 00:15 #

    직접의사를 전달한게 아니라 명을 통해서 간접의사를 표명한것이었군요? 저는 직접했는데 조선이 거절한게 상당히 의아했었는데.. 사실 조선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약탈등으로 북방안보를 위협해왔던 여진족을 신뢰하는 동맹으로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은 했었습니다.(함경도-평안도지역에서 허구헛날 여진족하고 쌈빡질을 해대는 적대존재인데.. 당연했겠지만요.) 그래도 여진의 세력강화를 고려한다면.. 여진족의 군사력을 소모시키는 목적차원에서라도 받아들여볼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누루하치와 협상을 해보기라도 해봤으면 좋았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진족의 세력강성을 조선이 주시하고 있었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이이제이라는 말을 한번 선택해볼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어서요. 만약 잘만 성사되었다면 여진족의 군사력을 상당히 약화시킬수 있었다고 보긴합니다.

    같은민족이라.. 발해때까지는 같은 민족 공동체안에서 동화되어갔을지는 몰라도 남남으로 떨어진지가 상당히 되었던 시점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건 또 그 존재겠죠?
  • defeat 2011/08/01 18:32 # 삭제

    전혀요. 조선 국경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모를까 조선 국내에서 벌어지는 전란에 신뢰하기도 어려운 상대를 지원군이랍시고 끌어들인다? 여우 퇴치하자고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격이죠. 이이제이라는 표현은 적합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 Real 2011/08/01 21:25 #

    예 이미 저도 그 문제를 이야기했지요.

    다만 저는 여진족의 세력 약화를 위한 정치적 목적의 측면을 중점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통제불능 상황으로 치닫는 여진족의 세력약화를 위해서라도 군사력 약화는 핵심이라고 할수 있으니까요.
  • 을파소 2011/08/01 23:02 #

    병력손실이 클 정도로 파병하느냐도 문제겠죠. 그리고 그걸 조선 영토 안에서 한다는 게 아무래도 가장 큰 부담 같습니다.
  • FELIX 2011/08/01 02:03 #

    1950년 12월 북괴의 침공에 괴로워하는 남한을 보다못한 일본은 미국을 통해서 구원군을 보내겠다고 제의하는데......

    2313년 재야 역사가 박 모씨는 이때 한국 정부의 일본 참전 거부를 사대주의에 찌든 행동이라 비판하고 시작하고....
  • 을파소 2011/08/01 23:02 #

    그걸 반박하면 찌질이 이승만을 비호하는 수꼴이라고 재반박을....
  • 크핫군 2011/08/01 09:04 #

    이건 뭐 승냥이 쫓아 내려고 호랭이 부르는 건가효;;;
  • 을파소 2011/08/01 23:03 #

    그 호랑이가 옛날에 집나간 애완호랑이의 후손이라 난 안 물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 hyjoon 2011/08/01 12:08 #

    실제로 유성룡이 '당나라가 안사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회홀과 토번을 끌어들였다가 두고두고 화를 당했다'고 하면서 여진족 참전을 반대했죠. 개인적으로도 유성룡이 정확하다고 생각됩니다. 유목민족이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선행했던 것이 한반도를 안정시켜서 후방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인데, 여진족도 단순히 일본군 쫓아내는 선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중원진출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조선을 어떻게 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_-
  • 을파소 2011/08/01 23:04 #

    그럴테죠. 공짜로 전쟁해줄 리는 없는 법이죠
  • 누군가의친구 2011/08/01 19:17 #

    그나마 명나라가 개입한건 요동의 안전도 고려했던 결과지만 누르하치 입장이라면 한번 찔러나 보자는 거 말고는 없지 말입니다. 조선 사정도 볼겸에, 여차하면(...)
  • 을파소 2011/08/01 23:05 #

    찔러서 떡고물 나오면 좋고, 아니어도 손해볼 건 없는 장사였죠.
  • 아롱범 2011/08/02 03:12 #

    여진족이 조선이 아니라 명에 참전 의사를 밝힌 것만 봐도 여진족의 임진왜란 참전 문제는 단순히 조선-여진 간의 좁은 시야에서 바라 볼 문제가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명 중심의 질서 체제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라는걸 알 수 있죠. 조금만 넓게 바라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가 많이 줄어들텐데 말이죠...

    오랜만의 포스팅 재밌게 읽었습니다.
  • 을파소 2011/08/02 22:45 #

    학계의 시각도 그런 의견이며.

    그런데 오랜만이라니 제가 뜸하긴 뜸했군요.
  • 들꽃향기 2011/08/03 12:15 #

    동감합니다. 특히 당시의 누르하치는 아직 이성량으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으로 성장했다는 문제를 다 벗은 때가 아니었고, 부하들에게 대명교역 허가증을 상으로도 분배할 정도의 시기였으니, 그냥 명과의 우호 및 교역을 생각한 일종의 뻥카로, 언급하신대로 동아시아 명 중심체제의 '관성'이 아직 남아있었다는 반증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호떡쟁이 2011/08/02 20:25 #

    만약 참전했으면 몇 명 정도 보냈을까요?
  • 을파소 2011/08/02 22:48 #

    조선을 먹을 게 아니면 적당히 생색낼 정도로 보내고 위상강화를 노렸을 듯 합니다. 최악이면 아예 조선을 접수할 정도겠죠.
  • kmx 2011/08/03 00:29 # 삭제

    환빠들은 제발 자기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만주, 몽골의 허허벌판으로 가서, 신나게 말타고 사냥이나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인터넷도 안통하는 오지로 말이죠.
  • 슈렉 2011/11/09 13:57 # 삭제

    111
  • 슈렉 2011/11/14 13:52 # 삭제

    여진족의 참전은 양쪽 모두에게 큰이익이 되었을것으로 봅니다.
    역으로 누루하치에게는 큰해가 될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첫째로는,조선은 전쟁의 피해(일군과 명군)를 최소화 할수있었겠지요. 여진족의 입장에선 남의전쟁이 아닌것이죠. 바로 자기들의 전쟁입니다. 그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야망(대륙침략)과 이후 청일,노일전쟁 때의야망을 동일 선상에서 본다면 후자때 조선을 합방한 일본이 곧이어 만주사변을 일으켜 전자의 여진족 영토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여진족의 후예들은 많은 피해를 보았지요.만주사변을 일본의 대륙침략 수순으로 본다면 여진족의 파병은 자기국토의 수호를 자기땅이 아닌 조선땅에서 치뤄서 피해를 최소화 시키자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 슈렉 2011/11/14 14:15 # 삭제

    둘째로는, 병자호란을 막을수 있었겠지요. 여진족이 2만명을 파병한다 했지요. 일본군의 침략규모가 15만명 수준인데 그 인원으로 이길수 있었겠읍니까? 상당한 도움정도 됬겠지요.하지만 당시 여진족은 막강의 특수부대 수준이고 일본 역시 잘 훈련된 조직력에 당시 첨단무기였던 조총으로 중무장 하였으니 그야말로 호각지세라고 판단된다면 양쪽 모두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고 더우기 참전한 이상 여진족의 추가파병도 고려해 본다면 여진의 군사력은 이 전쟁에서 상당부분 손실할것이 자명합니다. 명나라를 집어삼킨 여진의 군사력이 임진왜란을 치루며 적나라하게 들어났다면 명나라도 대비를 철저히 했을것으로 본다면 나라가 망하는 지경 까지는 가지 않았을까 봅니다.당연히 병자호란도 막을수 있었겠지요. 명나라의 폐망중의 가장 큰 원인이 조선파병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 슈렉 2011/11/14 14:36 # 삭제

    세째로, 임진란이 조선과 여진족과 명나라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면?
    조선은 어쩔수 없이 여진을 야만인이요 오랑캐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동반자요 협력자로서의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을것입니다.당연히 상황에 합당한 관계개선이 이루어 졌을것이고 이는 이후 명의 흥망에 관계없이 병자호란을 막을수 있었을것이라는겁니다. 그 이유는 병자호란 발생의 근본이유가 명과청의 전쟁에서 조선이 청의 배후를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일어났다 본다면 만일 파병,승리,관계개선의 수순에 따른 청과 조선의 우호분위기에서 과연 조선이 청과의 전쟁을 선택했을것이냐 라는것이 1차의문이며 명나라 로의 사대가 임진란에서 명이 조선을 구해 주었다는 재조지은 에서 더욱 증폭되었는데 만약 3국이 연합하여 승리했다면 사대의 폭이 그리 크지않아 병자호란이 과연 일어 났겠느냐가 2차적 의문입니다.
  • 슈렉 2011/11/14 15:01 # 삭제

    네째로, 자꾸 그냥해줬겠냐구들 하시지요.
    여진족의 요구는 자명합니다. 당연히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의 피해보상이 일차요구 겠지요.
    그리고 자기들을 오랑케나 야만인으로 취급하지말고 대등한 입장으로의 신분상승을 요구하겠지요.
    명나라가 멀쩡히 존재하는한 조선은 명의 조공국(속국)으로 만약 여진이 조선을 탐낸다면 조선과 명은 연합하여 여진을 질 명분이 있는것 입니다. 다시말하면 조선은 명이 있기에 여진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을수 있는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여진의 파병을 거부 했습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었습니다.
    병자호란이 비단 여진의 파병을 거부함에서 온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중 아주 작은 원인이 되었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거부하는 마음가짐의 경직성이 그 바닥정서가 그 이후 인조반정으로 병자호란으로 이어진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것 입니다.
    그래서 위 어느분의 조선탈레반 하시는 비판적인 조선역사의 시각에 마냥 돌을 던질수만 없다는 느낌을 지울수는 없다고 봅니다.
  • 을파소 2011/11/14 22:38 #

    북송은 금나라와 손잡고 요나라 망하게 한 건 좋았는데, 주기로 한 세페 안 주려다가 나라 말아먹고 남송이 세워죠 겨우 이어나갔죠. 그리고 몽고가 금나라 멸망시키는데 협력하고 남송도 몽고에게 망했죠.

    조선도 여진족의 침략을 숱하게 겪은 나라고요. 이런 역사를 알고, 여진족과 투닥거린 게 있는데 쉽게 믿겠습니까? 게다가 슈렉님의 지론에 따르면 조선은 전시에도 군사 5천에 못 미치는 나라였고, 송나라처럼 북방민족에 퍼주고도 남아도는 경제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명나라의 안전보장만 생각하고 여진족을 끌어들일까요? 슈렉님의 글을 낙관적인 상황만 이어지는 걸 가정한 거고, 그것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말한 겁니다. 당대 조선인이라면 당연히 비관적인 상황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누르하치의 파병을 거절한 것도 그저 오랑캐라서 싫다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멸망시킬 거다.'라는 불안감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을 인용하였는데, 그저 편하게 인터넷으로 당시 상황 보고 대충 상상해서 내린 결론이 당대 조선인에게도 적용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 슈렉 2011/11/21 16:17 # 삭제

    문제는 어떠한 여진족으로의 위험이 병자호란의 참화보다 더 했겠습니까?
    수백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이 최선이 었냐를 돌출하자는것이 님의글의 뜻이 아니었습니까?
    당시 조선의 선택을 물론 존중해야 하지만 결론적으로 잘못된 선택에 의하여 전쟁을 겪은것도 피할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전쟁을 피할수 있었던 여러가지 상황과 방법을 놓코서 어떤 선택이 최선이었냐를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조금더 발전적이지 않을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님이 주장하는 맥락은 조금 경직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저의 지론이 조선은 전시에도 군사 5천에 못미치는 나라였고가 아니라 평시에도 입니다.
    조선은 수백년간의 평화와 명나라의 안전보장(조공의 댓가)에 의존하여 군비확장에 등안하여 군사가 5천에 못 미쳤을것 이라는것이지요.

    님의 지론은 과연 어떻습니까?
    경상우수영의 인원이 1만명이라 굳게 믿으시니 그러면 당시 조선팔도의 수군이 10만명에 가까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육군은 그 보다 10배가 많은 100만명이라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 을파소 2011/11/22 00:21 #

    네 님이랑 무슨 애기를 하겠습니까? 부디 상상 말고 책을 일고 역사를 논하시길 바랍니다. 어느 정도 추측은 몰라도 상상에 기반하는 분과는 더는 얘기해봐야 피곤하기만 하겠습니다.
  • 슈렉 2011/11/22 13:24 # 삭제

    답변이 궁 하십니까?
    아니면 제 뜻을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이런식의 글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당연히 상상이지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수백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선택이 달리 바뀌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기반으로 해서 여러가지 경우외의 수를 상정해서 현대적 시각으로 다양하게 재조명하는것이 발전적이라는 것이 저의 논리이지요.그 논리를 바탕으로해서 위의 글을 썼구요.특별히 문제가 있나요?
    아니면 님의 역사관이 다소 편향되어 있나요?

    이렇케 책을 읽고 역사를 논하라, 얘기해봐야 피곤해진다 라고하는 글은 듣는 입장에서 보면 다소 씁쓸합니다.

  • 유사식민빠 2011/11/22 13:48 # 삭제

    망한 소설은 창작동아리 가서 쓰시길.
  • 을파소 2011/11/22 22:12 #

    어디서 승리했다고 해도 좋으니 마음대로 하세요. 님과 별로 얘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경상우수영은 1만이면 육군은 100만명이어야 한다는 얘기만 봐도 말할 의욕이 사라집니다.
  • 프리저 2012/04/10 01:39 #

    여진족이 당장에 멸망시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조선 내부를 직접적으로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니까 그게 더 큰 문제인 거죠! 일본도 조선을 치기 전에 첩자로 상세하게 조선을 탐지했으니까 그렇게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온 거지, 아무렴 미쳤다고 조총이나 검술실력만 믿고 쳐들어올까요? 중요한 건 오랫동안 적대해왔던 적이 갑자기 자기를 돕겠다고 나서니까 찜찜해서 거절한 거죠! 애초에 멸망당할 우려를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하구요. 조선에 원한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건주위가 과연 순순히 조선을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죠!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주고 나서 재조지은을 앞세웠는데 여진은 어땠을까요? 북방민족들의 그 사나움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현대에도 같은 민족이라면서 허구헌 날 서해안ㆍ동해안, 휴전선을 넘나들며 총질에 대포질 하는 10할 생키들이 노녘에 살고 있는데 외적은 더할 테죠!
    그런데 궁금한 게 회하란 황하강(황하-river)을 말하는 건가요?
  • 좋은 글 2013/03/03 16:01 # 삭제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망하지 않았는데, 임진왜란 때 여진의 참전으로 조선이 여진에 망할 거라는 주장은 과한 듯합니다. 역사의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당시 사대주의가 여진의 참전을 반대한 근본원인으로 봅니다. 일본에 망하기 일보 직전인데,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죠. 빨리 일본을 몰아내는 데 전력해야지, 체면 따지다가 전쟁만 길어져 백성만 죽어나갔습니다.
  • 을파소 2013/03/06 00:58 #

    찬밥 더운밥은 안 가려도 쉰 밥인지 아닌지는 가려야 합니다. 본문에 적은 바와 같이 건주여진인 군사적으로 대립한 일이 있기에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양면전쟁을 해야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왕과 신하들이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 피난온 상황에 여진족이 말머리를 돌리면 정부가 날아가 버릴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였으리라고는 생각 안 하시나요?

    체면이 아니라 위험한 적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에 반대한 것입니다. 일본을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나라의 운명을 걸고 여진족의 선의를 믿는 도박을 할 수도 없르니까요.
  • 2013/11/17 09:13 # 삭제

    글세요... 조선 자체가 성리학자들의 국가다 보니 단군이 아닌 기자조선을 계승한다고 하고, 명을 부모의 국가라하고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선 뒤에도 복명반청을 외치죠. 반면 여진의 금이나 청 같은 경우 자신들의 조상을 고려 또는 신라에서 나왔다고 인식합니다. 북방 기마민족들이 부족한 자원 때문에 약탈경제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일면 보면 그들의 통일 전쟁까지 매도하는 것이 있고, 명이나 명의 명령을 따르는 조선이 여진을 침입 안 했습니까? 세력을 크질 것을 우려해 여진 마을을 명분도 없이 마구 테러도 합니다. 여진이 쉰밥이요? 명은 그럼 뭔 밥이요? 터무니 없군요. 고려가 요, 금이 한창 성장할 때에도 전화를 최소화한 것은 국제상황을 파악하고 외교를 잘 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 군사력도 있었지만 여진의 참전을 막은 것이 잘한 것이다? 명이나 청이나 그래서 인조반정 일으켜서 처참하게 도륙 당합니까?
    님은 말이죠. 자신의 추측들은 이성적이고 자신과 반대되는 남들이 님과 같이 하면 비이성적인냥 생각하는 오만이 있군요. 그냥 여진의 참전을 막은 것은 대단히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세상물정에 어두운 븅,신이라 평가되는데요. 후에 여실히 증명하죠. 인조반정 일으킨 서인세리들이 아니~ 광해군과 북인들이 무슨 성리학을 모르고 의리를 몰라서 여진과의 화친을 원한 것 같습니까? 광해군과 북인들은 실제 임진왜란의 전쟁에 뛰어든 이들이었고 여진이 어떤 존재고 힘이 얼만지 알았던 겁니다. 북인들은 조식의 계열이고 누구보다 의리와 실천을 중시했기에 의병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입니다.
    님아~ 선조는 국가가 망하면 명으로 귀화까지 생각하던 상황인데 거기서 무슨 쉰밥이네 하는 개소리가 나오요? 명이나 청이나~ 븅신 같네~ 이봐요. 나중에 어떻게 됐냐구요? 조선이 하던 꼬락서니를 보고도 무슨 여진의 참전을 막은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이 드나요? 똥된장 구분 못한 덕에 그냥 사대만 할거 아주~ 처참하게 도륙을 당합니다. 조선 초만해도 사대니 뭐니 실리적인 거지만 조선 중후기로 오면서 아주 진짜 꼴통 사대주의가 돼요. 여진 도움은 안 받고 명 도움 받아서 그래서 명나라 한족놈들 도움은 공짜랍니까?
    그냥 븅신 짓이죠.~ 님의 전제는 이거죠.
    1. 당시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세상 물정에 밝다.
    2. 여진은 오랑캐도 그냥 무조건 잔인무도한 놈들이다.
    제가 보기엔 이 두가지에서 아주 큰 애러입니다.
  • 을파소 2013/11/17 17:35 #

    님이야 말로 조선 대신들은 유학에 찌들어 무조건 친명에 입각한 결정을 내렷을 것이라 전제를 깔고 있군요. 그리고 누르하치 참전에 반대한 건 당시 조선 정부의 입장에선 달리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냉철한 이성을 발휘한 것도 아닙니다. 되려 강한 불안감 때문이라 해야죠. 수도 뺏기고 북쪽으로 도망쳐 왔는데, 여진족이 갑자기 말머리 돌리면 수뇌부가 몰살당하거나 포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들을 환영할 순 없었던 겁니다. 누르하치는 조선에 대해 온건한 입장이긴 햇으니 과거 건주여진과 군사적으로 충동했으며 국난을 맞이한 입장에서는 순순히 믿을 순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대북파는 오히려 태클을 거는 입장이엇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광해군조차도 '하루아침에 국경에서 맹약을 파기하는 환란이 반드시 없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도 하여 후금의 침입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중립외교도 절대 후금군을 조선 영토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아니었으니, 광해군의 외교정책과 비교하여 누르하치의 참전요청 거부랄 까는 것도 핀트에 맞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미 역사를 다 알고 있으면서 당시 사람들을 까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까더라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의 한도에서 까야죠.
  • 정신차리자 2014/01/24 11:06 # 삭제

    사대주의를 논할거면 명나라 참전과 누르하치의 참전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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