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이순신과 원균 바로보기(39)-아들 이면의 죽음
명량대첩 후 어외도로 진을 이동한 이순신은 19일에는 법성포를 거쳐서 홍농 앞바다, 20일에는 위도, 21일에는 고군산도로 이동한다. 그 후 다시 10월 3일 법성포를 거쳐서 9일에 우수영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이동은 비록 명량대첩으로 일본에 대하여 압승을 거두기는 하였지만 그만큼 화약 등의 소모도 많았기에 물자와 전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일본 수군이 한 번 더 대규모로 몰아치면 이순신이라도 난처한 지경에 빠지겠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건 겨울이 다가온다는 이유도 있지만, 일본 수군이 명량대첩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군 재건을 위해 박차를 가하던 중인 10 14일 새벽, 이순신은 꿈을꾼다. 꿈에서 이순신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서 냇가로 떨어졌는데, 막내아들 이면이 엎드려서 자신을 안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이 꿈이 무슨 조짐인지 알 수는 없고, 내수사의 종이 기르던 소 중 12마리를 일본군이 끌고 갔다는 보고를 받는 등 공무를 보았다.
그 날 저녁에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안 편지를 전달한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이순신은 봉한 것 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편지를 쓴 이는 둘째 아들 이열이었는데, 편지 겉봉에는 통곡(痛哭)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져 있는 것을 보고 그 내용을 짐작하였다. 바로 막내아들 이면의 전사소식을 전하는 편지였다. 이순신은 편지롤 보고 목 놓아 통곡하였다.
이면은 충청도 아산의 본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아산을 급습하자 다른 가족들은 피신시키고 맞서 싸우다가 숨을 거둔 것이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이순신에 대한 보복 작전으로 많이 묘사되지만 실제로 그랬다는 입증자료는 없다.
이면은 다른 아들들이나 조카들과 함께 이순신이 머문 진영과 아산집 사이를 여러번 왕래한 바 있다. 그렇게 이면이 아산집으로 갔을 때, 이순신은 아들이 무사히 도착했는지 걱정되어 전전긍긍하였다. 한번은 이면이 피까지 토하는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매우 걱정하여 점까지 쳐보았다. 그 결과 '임금을 만나 보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그 때 임금은 선조긴 하지만 어쨌든 매우 좋은 괘였다. 다시 해보니 이번엔 '밤에 등불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역시 좋은 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이면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런 아들이 비명횡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그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 하시는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앙화[殃禍]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살아 있은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마는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연명이야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17일에는 새벽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하는데, 하얀 띠를 두르고 있으니, 비통함을 정말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19일에는 고향집 종이 내려오니 그걸 보고 아들 생각이 나서 다시 통곡하였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는 코피를 한 되 남짓 흘리고, 밤에 앚아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났다. 아직 어머니의 상중인데다가 아들까지 잃어 그 슬픔이 더할 수 박에 없었다.
11월 7일에는 자정 무렵 자는데 꿈에서 이면이 죽는 것을 보고 구슬프게 울었다. 23일에는 아산집으로 편지를 쓴느데 죽은 아들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한 척의 배로 수백척의 적선에 당당히 맞서는 용장도 아버지로서는 여느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이분의 <행록>에는 이면의 죽음에 관한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온다. 이면의 전사 4개월 후, 이순신의 꿈에 이면이 나타나서 “날 죽인 적을 아버지께서 죽여 주십시오!”라고 울면서 말하였다. 그러자 이순신이 “네가 살아 있을 때는 장사였는데, 죽어서는 그 적을 죽이지 못 하겠다는 말이냐?”라고 하니, 이면은 “제가 그 놈의 손에 죽었기 때문에 겁이 나서 그놈을 못 죽이겠습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자식의 원수를 갚는 일에 저승과 이승이 무슨 간격이 있을 것입니까?”라고 말하고는 슬피 울면서 사라졌다. 잠에서 깬 이순신이 잡혀온 일본 포로들을 조사하니, 그 중에 이면을 죽인 장본인이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그 일본군을 죽임으로 이면의 복수를 하였다.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행록>에만 전하기에 이순신의 조카이자 이면의 사촌인 이분이 사촌의 죽음과 그 일로 가슴 아파 한 숙부를 안타깝게 여겨 넣은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은 가슴아프지만, 백의종군 길에 오르면서 어머니의 상도 모시지 못한 이순신은 수군을 재건해야 하는 통제사이기에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 슬픔은 표출하지는 못 해도 더했을 것이다. 그도 위대한 장군이기 전에 아들이요, 아버지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모습을 찾는 것이 이순신의 진짜 인간적인 모습을 찾는 것이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순신이 먼저 원균을 모함한 거라고 모르면서 아는 척 인간 이순신을 복원한다고 개소리하는 게 아니라.
그리고 수군 재건을 위해 박차를 가하던 중인 10 14일 새벽, 이순신은 꿈을꾼다. 꿈에서 이순신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서 냇가로 떨어졌는데, 막내아들 이면이 엎드려서 자신을 안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이 꿈이 무슨 조짐인지 알 수는 없고, 내수사의 종이 기르던 소 중 12마리를 일본군이 끌고 갔다는 보고를 받는 등 공무를 보았다.
그 날 저녁에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안 편지를 전달한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이순신은 봉한 것 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편지를 쓴 이는 둘째 아들 이열이었는데, 편지 겉봉에는 통곡(痛哭)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져 있는 것을 보고 그 내용을 짐작하였다. 바로 막내아들 이면의 전사소식을 전하는 편지였다. 이순신은 편지롤 보고 목 놓아 통곡하였다.
이면은 충청도 아산의 본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아산을 급습하자 다른 가족들은 피신시키고 맞서 싸우다가 숨을 거둔 것이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이순신에 대한 보복 작전으로 많이 묘사되지만 실제로 그랬다는 입증자료는 없다.
이면은 다른 아들들이나 조카들과 함께 이순신이 머문 진영과 아산집 사이를 여러번 왕래한 바 있다. 그렇게 이면이 아산집으로 갔을 때, 이순신은 아들이 무사히 도착했는지 걱정되어 전전긍긍하였다. 한번은 이면이 피까지 토하는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매우 걱정하여 점까지 쳐보았다. 그 결과 '임금을 만나 보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그런 아들이 비명횡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그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 하시는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앙화[殃禍]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살아 있은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마는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연명이야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17일에는 새벽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하는데, 하얀 띠를 두르고 있으니, 비통함을 정말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19일에는 고향집 종이 내려오니 그걸 보고 아들 생각이 나서 다시 통곡하였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는 코피를 한 되 남짓 흘리고, 밤에 앚아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났다. 아직 어머니의 상중인데다가 아들까지 잃어 그 슬픔이 더할 수 박에 없었다.
11월 7일에는 자정 무렵 자는데 꿈에서 이면이 죽는 것을 보고 구슬프게 울었다. 23일에는 아산집으로 편지를 쓴느데 죽은 아들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한 척의 배로 수백척의 적선에 당당히 맞서는 용장도 아버지로서는 여느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이분의 <행록>에는 이면의 죽음에 관한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온다. 이면의 전사 4개월 후, 이순신의 꿈에 이면이 나타나서 “날 죽인 적을 아버지께서 죽여 주십시오!”라고 울면서 말하였다. 그러자 이순신이 “네가 살아 있을 때는 장사였는데, 죽어서는 그 적을 죽이지 못 하겠다는 말이냐?”라고 하니, 이면은 “제가 그 놈의 손에 죽었기 때문에 겁이 나서 그놈을 못 죽이겠습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자식의 원수를 갚는 일에 저승과 이승이 무슨 간격이 있을 것입니까?”라고 말하고는 슬피 울면서 사라졌다. 잠에서 깬 이순신이 잡혀온 일본 포로들을 조사하니, 그 중에 이면을 죽인 장본인이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그 일본군을 죽임으로 이면의 복수를 하였다.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행록>에만 전하기에 이순신의 조카이자 이면의 사촌인 이분이 사촌의 죽음과 그 일로 가슴 아파 한 숙부를 안타깝게 여겨 넣은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은 가슴아프지만, 백의종군 길에 오르면서 어머니의 상도 모시지 못한 이순신은 수군을 재건해야 하는 통제사이기에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 슬픔은 표출하지는 못 해도 더했을 것이다. 그도 위대한 장군이기 전에 아들이요, 아버지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모습을 찾는 것이 이순신의 진짜 인간적인 모습을 찾는 것이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순신이 먼저 원균을 모함한 거라고 모르면서 아는 척 인간 이순신을 복원한다고 개소리하는 게 아니라.
# by | 2009/11/07 15:44 | 이순신/임진왜란 | 트랙백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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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먼저 가는 것만큼 불효가 없다고 하는데, 위로는 어머니를 잃고 아래로는 아들을 잃은 충무공 심정이 상상이 안갑니다.
선조가 상을 주려고 만나줄 리는 없고
결국 참수나 이런 것 시키는 것 외에는 부를 리가 없지요.
-
지가 그렇게 만들어 놓고, '옛다, 엿먹어라.' 이런 의미로 보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한양 입성했을때, 상복입은 백성들이 없다고 개드립 치면서 상중의 통제사에게는 예법은 '방편을 쫒으라'는 것 보면 정말 약올라서 -..-
좀 다른 예지만, 명 태조 주원장이 오리고기 먹으면 안되는 신하한테 오리고기 '하사'해서 죽게 만든 일화도 있고...
오죽하면 사마천도 '천도'(天道)에 의문을 품었겠습니까...
문장을 마치지 않아서 모르고 "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지 않고 이순신이 원균을 모함했다" 이렇게 썼나보죠.ㅋㅋㅋ
자살설이 말이 안된다 의 근거가 이걸로 보고 있습니다.
...살아계셨다면 아마 부산포까지 쓸어버리려고 하셨을것임;;;
역사짱/저 환경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셨죠.
들꽃향기, 루크/선조라면 흉조...
윙후사르/어우야담에도 나오는군요. 그래도 역시 신빙성있다고 보긴 힘들죠.
rosencross/전례가 없는 일은 아닌데, 그래도 그 전례와는 달리 씁슬하죠.
크핫군/세종과 김종서의 전례도 있으니 나라를 위해 사우는 장수에 대한 왕의 예우 정도를 보여주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건 진작에 제대로 했어야죠.
잡설/예, 그냥 주변 마을을 약탈하다가 우연히 그랬을 거 같습니다.
paro1923/사마천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하죠.
행인1/아마 그럴 겁니다. 소설에서 쓰기엔 좋은 소재죠.
ㅎㅎㅎ/모르니까 그래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어릿광대/그러셨을 겁니다.
네비아찌/정말 절절하죠.
Niveus/예, 살아만 계셨으면 그랫을 겁니다.
저때 장군님 정말 한 "인간"으로써 얼마나 심신이 지치셧을까요. 그러나 내가 아니면 안된다. 내가 쓰러지면 이나라도 끝장난다. 오직 나만이 이나라와 백성들을 살릴수있다는 중압감을 견디다 못해 그냥 놓으셔도 아무도 비난안할텐데도 불구하고 1년안에 또다시 수군을 재건시키는 경의로운 힘을 발휘 하셧으니......ㅠㅠ
진짜 원균빠랑 선조빠들이 인간이순신 운운하며 장군님을 욕보이는데요. 정사에 기록돼있는 진정한 "인간이순신" 바로 저모습이야말로 우리의 장군님이십니다!!흑흑....ㅠ.ㅠ
그나저나 한심한 왕, 답 없는 동료(가 아니라 사실은 첩자...)의 태클 속에서도 난관을 해쳐나간 충무공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 같았으면 반란 일으켰을텐데..
하늘은 어찌하여 통상님을 보내고 균들을 보냈을까 ㅠ.ㅠ
ㅎㅎㅎ/선조도 그게 두려웠겠지만, 통상은 그럴 분이 아니셨죠.
백합과수국/균형을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