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5일
이순신과 원균 바로보기(38)-명량대첩에 얽힌 잘못된 속설
이글루스 역밸 유저라면 당연히 비웃고 넘어가겠지만, 명량대첩에는 몇 가지 속설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하나는 조선군이 철쇄를 사용해 승리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강강수월래의 기원이 이 때 멀리서 우리 군사가 많아 보이게 하려고 한데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런 속설은 몇년 전의 모 사극에서도 명량대첩 부분에 나온바 있으며, 심지어 철쇄 사용설은 같은 방송국의 역사 다큐에서도 신빙성있는 거처럼 다뤄진 적도 있다.
흔히 명량대첩에 대하여 미리 설치한 철쇄에 일본 배들이 걸리고, 그 틈을 타서 조선군이 맹공격을 하였다는 식으로 묘사가 된다. 그리고 판옥선은 평저선이지만, 일본 배들을 침저선이라 조선 배는 철쇄에 안 걸리지만 일본 배는 걸린다 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일까?
오늘날의 해군은 기뢰부설함이 있고, 잠수함 같은 배로도 기뢰 부설이 가능하기에, 철쇄 같은 건 필요 없이 기뢰를 통하여 적 해군을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변변한 기계 장치가 없는 조선시대라면 모든 걸 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좁은 수로라지만, 매우 강한 조류가 흐르는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길게 철쇄를 거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그걸 걸더라도 배 몇 척 걸리고 나면 사람이 설치해놓은 것이 끊어지거나 풀리지는 않겠는가? 기계의 도움 없이 그런 일을 해내려면 조선 수군에 화가 나면 녹색거인으로 변신하는 특이체질의 소유자나, 녹색 운석 앞에서는 힘이 약해지는 외계인이라도 있어야지 가능하다. 아니 그런 애들 있으면 철쇄 놓기 전에 그냥 적군을 다 쓸어버리면 되잖아?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실제로도 철쇄 가설을 뒷받침하는 기록도 없다. <난중일기>나 <선조실록>, <징비록> 등 신빙성 높은 사료에는 철쇄 얘기도 나오지 않으며, 당시 급하게 진지를 이동한 조선 수군에게 철쇄를 만들고 설치할 만한 여유도 없었다. 더군다나 모든 게 부족한 조선 수군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런 철쇄를 만들 철이 있으면 화포나 여타의 무기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다.
철쇄 가설의 근거가 되는 기록은 이중환의 <택리지>나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용력으로 철쇄를 가설했다는 <호남절의록>, 김억추의 후손들이 20세기 초에 기록한 <현무공실기> 등이 있다.
하지만 <택리지>는 기본적으로 역사서가 아닌 지리지로서 철쇄 얘기도 지방의 설화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못 하다.
뛰어난 용력으로 김억추가 철쇄를 가설했다는 <호남절의록>의 기록도 당연히 현실성 제로.
<현무공실기>는 여타의 행장류가 그러하듯이 조상을 터무니없이 칭송하는 기록에 불과하다. 그나마 당대도 아닌 후대의 기록이다. 게다가 <현무공실기>에는 김억추가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적선 수백척을 격침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니까 현무공의 정체가 실은 얘였다거나? 철쇄가 실은 철쇄아의 와전이라면 그럴 듯 하다.(어디가!)
그리고 그 정도 철쇄는 만들려면 많은 양의 철이 필요하다. 그러나 명량대첩 당시의 조선 수군은 모든 게 부족한 상황. 그럴 철이 있으면 무기라도 더 만드는 게 낫다.
좌수영에서 발견된 수중장애물의 흔적을 근거로 철쇄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울돌목은 물살도 거세고 당시 조선 수군은 자원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그 사이 그 지형에 철쇄를 설치할 여유는 아무리 이순신이라도 없다.
그럼 강강수월래는?
강강수월래의 유래는 무엇인지 정확하지가 않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순신과 관련된 속설이 전한다. 그러나 그야말로 속설에 불과한 것이 유력한 학설인양 둔갑을 하고 있는데 그 실체를 알아보자.
이순신과 관련된 걸로 몇년전 방영한 모방송사의 드라마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있다. 명량대첩 시 병력이 부족하자 이순신은 아낙네들을 동원하여 강강수월래를 추게 하여 아군 병력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였다는 속설이 전한다. 이것은 조금씩 내용을 달리하여 산봉우리에서 강강수월래를 했다는 것, 갯마을에서 했다는 것 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속설일 뿐이다. 우선 <난중일기>어디에도 강강수월래에 관한 기록이 없다.
게다가 명량대첩 처럼 아군은 부족하고 적군은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여자들을 병사로 위장시키는 작전은 매우 위험하다. 단병접전에 강한, 게다가 공성전이나 수성전에서는 패한 일도 많지만 야전에서는 대부분 이긴 일본군이 육지의 병사들을 본다면, 병력도 충분하니 후방 함대의 병력을 상륙시켜 도륙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변변한 훈련도 못 받은 여자들의 운명은 비참한 꼴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 눈이 다 시력 마이너스만 모여있었겠는가? 처음엔 단순히 빙빙 도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속는다고 치자.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단순히 손 잡고 도는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거기에 그렇게 병력이 많으면 포구에 방치된 판옥선을 더 끌고 나오던가, 육지에서라도 화살과 포를 쏘며 공격하던가, 아니면 매복이라도 할 일이지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면 일본 장수들이 아무런 의심을 안 할 리가 있을까? 내 머리 속에서도 나오는 생각인데, 이순신이 이런 걸 생각 못할 리가 없으니 여자들을 무리하게 끌어들이는 작전을 구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실제 작전이었다면 <난중일기>나 <징비록>, 이순신의 조카 이분의 <행록>에 기록되던가, 당시 수군 장수들의 가문에서 쓴 <행장>에라도 ‘우리 조상이 강강수월래 제안 했습니다.’라는 조작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기록은 전혀 없다.
그럼 강강수월래의 유래는 무엇인가?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추석의 유래는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고, 고구려나 부여, 백제 등 다른 고대국가들 역시 제천 행사들을 가졌는데, 이런 행사들은 여러 사람들이 어울리는 축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는데 모두 손잡고 빙빙 돌며 춤을 춘다는 발상은 고대인들의 시각에서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마한에 대하여 ‘5 월에 씨를 다 뿌리고 귀신을 제(祭)한다. 때를 지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신다. 밤낮 쉬지 않고 수십 명이 함께 춤을 추는데, 다 같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가락에 맞추며 손발을 맞추어 몸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땅을 밟는다. 이와 같이 탁무(鐸舞)와 비슷한 춤을 10월 농사를 끝낸 후에 또 다시 춘다.’라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강강수월래의 원형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한이면 지금의 전라도 일대와 일치한다.
결국 강강수월래는 전라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지다가 이 곳이 이순신의 주 활동무대와 겹치면서 이순신과 관련된 속설이 퍼진 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백성들 사이에야 이런 속설이 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강강수월래에 관한 속설 소개라면 몰라도 진짜 유래인양 설명한다면 그건 문제이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공영방송국의 정통사극에 이런 속설이 그대로 반영되는 건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확고히 해줄 수 있으니 역시 문제이다.
결국 명량대첩은 단 13척의 판옥선으로 5,6백 척의 적을, 후방에 있는 수송선들을 제외하고라도 300척 이상의 적을 상대해야하는 전투였다. 더불어 철쇄 같은 건 없고, 강강수월래를 출 일도 없다. 칠천량해전의 여파로 사기는 바닥이다. 조정은 아무것도 지원해주지 않았다. 부하장수들도 모두 겁을 먹은 지라 통제사 이순신이 믿을 건 자기 자신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에서 싸워야 했던 것이다.만일 이것이 역사가 아니라 어느 소설의 줄거리였다면, 그 소설을 리얼리티가 형편없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소설이 아닌 역사였다. 누가 봐도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싸움, 그 앞에 이순신은 고독하게 맞서고 있었다. 하긴 그런 싸움에 압도적으로 이겼으니, 이런 속설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납득이 간다.
이런 속설은 몇년 전의 모 사극에서도 명량대첩 부분에 나온바 있으며, 심지어 철쇄 사용설은 같은 방송국의 역사 다큐에서도 신빙성있는 거처럼 다뤄진 적도 있다.
흔히 명량대첩에 대하여 미리 설치한 철쇄에 일본 배들이 걸리고, 그 틈을 타서 조선군이 맹공격을 하였다는 식으로 묘사가 된다. 그리고 판옥선은 평저선이지만, 일본 배들을 침저선이라 조선 배는 철쇄에 안 걸리지만 일본 배는 걸린다 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일까?
오늘날의 해군은 기뢰부설함이 있고, 잠수함 같은 배로도 기뢰 부설이 가능하기에, 철쇄 같은 건 필요 없이 기뢰를 통하여 적 해군을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변변한 기계 장치가 없는 조선시대라면 모든 걸 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좁은 수로라지만, 매우 강한 조류가 흐르는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길게 철쇄를 거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그걸 걸더라도 배 몇 척 걸리고 나면 사람이 설치해놓은 것이 끊어지거나 풀리지는 않겠는가? 기계의 도움 없이 그런 일을 해내려면 조선 수군에 화가 나면 녹색거인으로 변신하는 특이체질의 소유자나, 녹색 운석 앞에서는 힘이 약해지는 외계인이라도 있어야지 가능하다. 아니 그런 애들 있으면 철쇄 놓기 전에 그냥 적군을 다 쓸어버리면 되잖아?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실제로도 철쇄 가설을 뒷받침하는 기록도 없다. <난중일기>나 <선조실록>, <징비록> 등 신빙성 높은 사료에는 철쇄 얘기도 나오지 않으며, 당시 급하게 진지를 이동한 조선 수군에게 철쇄를 만들고 설치할 만한 여유도 없었다. 더군다나 모든 게 부족한 조선 수군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런 철쇄를 만들 철이 있으면 화포나 여타의 무기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다.
철쇄 가설의 근거가 되는 기록은 이중환의 <택리지>나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용력으로 철쇄를 가설했다는 <호남절의록>, 김억추의 후손들이 20세기 초에 기록한 <현무공실기> 등이 있다.
하지만 <택리지>는 기본적으로 역사서가 아닌 지리지로서 철쇄 얘기도 지방의 설화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못 하다.
뛰어난 용력으로 김억추가 철쇄를 가설했다는 <호남절의록>의 기록도 당연히 현실성 제로.
<현무공실기>는 여타의 행장류가 그러하듯이 조상을 터무니없이 칭송하는 기록에 불과하다. 그나마 당대도 아닌 후대의 기록이다. 게다가 <현무공실기>에는 김억추가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적선 수백척을 격침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리고 그 정도 철쇄는 만들려면 많은 양의 철이 필요하다. 그러나 명량대첩 당시의 조선 수군은 모든 게 부족한 상황. 그럴 철이 있으면 무기라도 더 만드는 게 낫다.
좌수영에서 발견된 수중장애물의 흔적을 근거로 철쇄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울돌목은 물살도 거세고 당시 조선 수군은 자원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그 사이 그 지형에 철쇄를 설치할 여유는 아무리 이순신이라도 없다.
그럼 강강수월래는?
강강수월래의 유래는 무엇인지 정확하지가 않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순신과 관련된 속설이 전한다. 그러나 그야말로 속설에 불과한 것이 유력한 학설인양 둔갑을 하고 있는데 그 실체를 알아보자.
이순신과 관련된 걸로 몇년전 방영한 모방송사의 드라마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있다. 명량대첩 시 병력이 부족하자 이순신은 아낙네들을 동원하여 강강수월래를 추게 하여 아군 병력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였다는 속설이 전한다. 이것은 조금씩 내용을 달리하여 산봉우리에서 강강수월래를 했다는 것, 갯마을에서 했다는 것 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속설일 뿐이다. 우선 <난중일기>어디에도 강강수월래에 관한 기록이 없다.
게다가 명량대첩 처럼 아군은 부족하고 적군은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여자들을 병사로 위장시키는 작전은 매우 위험하다. 단병접전에 강한, 게다가 공성전이나 수성전에서는 패한 일도 많지만 야전에서는 대부분 이긴 일본군이 육지의 병사들을 본다면, 병력도 충분하니 후방 함대의 병력을 상륙시켜 도륙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변변한 훈련도 못 받은 여자들의 운명은 비참한 꼴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 눈이 다 시력 마이너스만 모여있었겠는가? 처음엔 단순히 빙빙 도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속는다고 치자.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단순히 손 잡고 도는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거기에 그렇게 병력이 많으면 포구에 방치된 판옥선을 더 끌고 나오던가, 육지에서라도 화살과 포를 쏘며 공격하던가, 아니면 매복이라도 할 일이지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면 일본 장수들이 아무런 의심을 안 할 리가 있을까? 내 머리 속에서도 나오는 생각인데, 이순신이 이런 걸 생각 못할 리가 없으니 여자들을 무리하게 끌어들이는 작전을 구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실제 작전이었다면 <난중일기>나 <징비록>, 이순신의 조카 이분의 <행록>에 기록되던가, 당시 수군 장수들의 가문에서 쓴 <행장>에라도 ‘우리 조상이 강강수월래 제안 했습니다.’라는 조작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기록은 전혀 없다.
그럼 강강수월래의 유래는 무엇인가?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추석의 유래는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고, 고구려나 부여, 백제 등 다른 고대국가들 역시 제천 행사들을 가졌는데, 이런 행사들은 여러 사람들이 어울리는 축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는데 모두 손잡고 빙빙 돌며 춤을 춘다는 발상은 고대인들의 시각에서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마한에 대하여 ‘5 월에 씨를 다 뿌리고 귀신을 제(祭)한다. 때를 지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신다. 밤낮 쉬지 않고 수십 명이 함께 춤을 추는데, 다 같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가락에 맞추며 손발을 맞추어 몸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땅을 밟는다. 이와 같이 탁무(鐸舞)와 비슷한 춤을 10월 농사를 끝낸 후에 또 다시 춘다.’라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강강수월래의 원형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한이면 지금의 전라도 일대와 일치한다.
결국 강강수월래는 전라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지다가 이 곳이 이순신의 주 활동무대와 겹치면서 이순신과 관련된 속설이 퍼진 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백성들 사이에야 이런 속설이 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강강수월래에 관한 속설 소개라면 몰라도 진짜 유래인양 설명한다면 그건 문제이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공영방송국의 정통사극에 이런 속설이 그대로 반영되는 건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확고히 해줄 수 있으니 역시 문제이다.
결국 명량대첩은 단 13척의 판옥선으로 5,6백 척의 적을, 후방에 있는 수송선들을 제외하고라도 300척 이상의 적을 상대해야하는 전투였다. 더불어 철쇄 같은 건 없고, 강강수월래를 출 일도 없다. 칠천량해전의 여파로 사기는 바닥이다. 조정은 아무것도 지원해주지 않았다. 부하장수들도 모두 겁을 먹은 지라 통제사 이순신이 믿을 건 자기 자신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에서 싸워야 했던 것이다.만일 이것이 역사가 아니라 어느 소설의 줄거리였다면, 그 소설을 리얼리티가 형편없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소설이 아닌 역사였다. 누가 봐도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싸움, 그 앞에 이순신은 고독하게 맞서고 있었다. 하긴 그런 싸움에 압도적으로 이겼으니, 이런 속설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납득이 간다.
# by | 2009/11/05 22:47 | 이순신/임진왜란 | 트랙백 | 덧글(4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백합과 수국]님이 메테오스트라이크를 시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철쇄의 설치 기간도 문제인데, 원-남송의 양양 공방전에서 원군은 한수를 통한 남송군의 보급과 연락을 차단하고자 말뚝과 철쇄를 설치하려 하지만, 그 기간이 오래 걸려 그 사이에 남송군은 몇차례 양양으로 군수물자를 보급하는데 성공했죠. 내륙의 강도 그럴지언데....하물며 물살이 빠른 해협에..-_-;;
아니 그냥 야사 원안대로라면 그나마 핑계라도 되지 이건 뭐 어쩌자고......
미리 설치된 철쇄가 끌어올려져서 설치되는게 발각되는 걸 막기 위한 일종의 기만 전술이었죠..;;
뭐 어차피 구라지만요..;;
거기서 소환된 몬스터가 바로......
아니면 개귀신?
ㅋㅋㅋㅋㅋ
<현무공실기>가 사실은 <충무공실기>였다는 것.. 철쇄아의 주인은 바로 추..충무공이었음요..
충무공이 철쇄아로 바람의 상처를 날리자 왜군들의 함선이 수백척 침몰했....
... 그런 의미에서 충무공 한명과 일본 함선 수백대가 맞붙은 전쟁이었답니다. 헤헤
모든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少雪緣/음, 그랬단 말이죠?
rumic71/여!자!애!
Ezdragon/그런 면이 있긴 하죠. 그건 이해합니다.(...)
들꽃향기/여러모로 불가능한 일이죠.
정호찬/달리 사(기)극이 아니죠. 아니 한국드라마 자체가 고증과는....
天時流/그건 잘못 기억하고 있었군요. 그래도 역시 구라...
rosencross/그것은 설마...!
아롱이/견야차가 현무공에게 비으이되어...(퍽)
갑그젊/하지만 이순신이 출동하면....(야)
Fedaykin/그거슨 진리!
윙후사르/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승리죠.
어느날문득/아니 그런 진실이....!
asianote/그렇군요.(응?)
네비아찌/그렇죠.
그러고 보니 저도 비슷한 내용을 쓴 적이... -ㅁ-
소설따위보다 훨씬 더 극적인 현실이다보니(;;;)
진짜 문제는 "나한텐 불가능하니 다른 사람들도 불가능하다"라는 전제를 먼저 붙들고 있다는 것이죠.
정글고 이사장의 말을 조금 변형시키고 싶습니다.
"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분명 평범해요. '하지만 그는 아니에요'." (......)
- 저기다!
몸을 날려 바람의 기운을 떠올리며 그는 뱃전을 벗어나 바다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 여산 충무김밥! "
검이 빛나고, 십장을 넘는 검강이 헐벗은 여자들을 돛에 그린 왜적의 군선들을 차례로 두쪽으로 격침시킨다.
" 이것이... 그랜드 소드 마스터! "
평범한나라였음... 그냥 명량대첩은 라그나로크.. 충무공님의 장검은 엑스칼리버나 발몽검이 되어 '이건 전설이 아니고 레전드'가 되었을듯...
근데... 이누야사 잼있나요??? 하도 현무공얘기하니깐 한번봐볼까 관심이 가서 ㅎㅎㅎㅎ
임진장초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황제/그리고 용머리에서 나온 부품들이 합체하여 태권브이가 됩니다.
Luthien/그러고보니 예전에 본 기억이 이제서야...ㅡㅡ;
카니발/그렇죠.
Niveus/그런 점은 이해합니다.
paro1923/보통은 그 말이 맞습니다. 보통은요.(...)
라케링/..............
백합과수국/그런데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 타령을 하고 기록을 잘 안 보죠.
아롱범/새 기술을 익혁다던데 그 후는 아직 못 봐서....(그게아냐)
비공개/그럴수 밖에 없죠.
아롱범/그렇습니다.
zert/그래도 이건 많이 논파된 편이니 다행이죠.
현무공 실기에서 떠드는 한번 휘둘러서 수백척을 부쉈다는 믿거나 말거나보다는 그냥 충무공의 검명 한구절만 인용하죠.
[一揮掃蕩 血染山河]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죠. 이건 검명이 아니라 시구입니다만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간절히 바라고, 믿고, 그리고 거기에 대한 용기와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 아니었을까요?(그런데 왜 시크릿이 생각나지??)
참고로 인간 이순신 어쩌구 하면서 떠드는 것들은 난중일기와 이순신의 시, 그리고 검명 다시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나약하기만 한데 뭐가 잘났다는 식으로 떠드는 꼴이니..........(퍽)
이순신 장군은 근심만 한게 아니라, 간절히 바라면서도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몸소 실천했기에 영웅을 뛰어넘어 성웅이 되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정격으로 칠 수 있는 사료들로 봤을 때, 철쇄를 걸었다는 증거가 없기에 일단 철쇄설은 이후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철쇄를 놓기에는 시간도 없고, 필요한 물자도 없었기에 신빙성이 없다는 론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왜냐구요?
상식적으로 봣을 때
그럼 판옥선 한척으로 해협을 틀어막고 왜선들을 격침시킨 이통제사의 능력은 신빙성이 있는 걸까요.
상식적으로 봣을 때
12척으로 300여척을 상대해서 31척을 파쇄하고, 나머지 왜선들을 타격했다는게 신빙성이 있는 걸까요.
사료의 기록으로 볼때 철쇄가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제사의 형편이 안되서, 그럴만한 여건이 안되서 쵤쇄설이 신빙성이 없다는건 아닌듯합니다.
결국 <현실적으로 봣을 때> '오히려'
12척으로 걍 300척 깻다는거 보다,
급한데로 철쇄나 등등 준비해서 이겼다는게 더 사실 같아보이지 않나요?@@
명량해전의 승전 자체가 ㅠ.ㅜ 지금도 그냥 보면 사기같은데요...ㅠ.ㅠ...
아마 이런 이유로 야사라도 철쇄설이 많이 퍼졌겠지만,
암튼 난제다, 난제. 미스터리다, 미스터리. 명량해전.....
사료가 말하는 것을 자기 멋대로 생깔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능을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거든요.
역사에서 사료를 통해 얻은 '사실'은 자기의 선입견과 생각'만'으로 멋대로 바꿀 수 있는게 아닙니다.
물론 가설이야 세울수는 있겠지만 사료의 교차 검토 등을 통해서 '입증'을 해야죠.
철쇄를 놓기 위해 시간도 없고 물자도 없었다는 사실은 정격인 사료를 통해서 분석된 내용입니다. 이걸 뒤집고 싶으면 사료를 분석해서 논거를 들이대면 돼죠.
본인이 생각하기에 '상식적' 이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제가 가장 관심가지는 울둘목 해전으로 건너 뛰어 읽고 제 생각을 덧글로 남깁니다.
1. 전날 밤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이리 이리 하면 이기리라"
--> 비록 휘하에 전선이 12척밖에 되지 않지만 울둘목을 틀어 막고 싸우면
일본의 수백척 적선을 맞아 싸워 이길 수 있으리라는 전략에 대한 자기 확신이
꿈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2. 철쇄설, 적선 330척 설, 5,600척 설 등
--> 울둘목 서쪽 끝에는 충무공의 판옥선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물살 거세고 좁은 울둘목을 일본 전선들이 어깨동무하듯 횡대로 통과하지는 않았을 것이고,(일렬 종대?)
주력 전선들 수십척 말고는 보급선 등의 배는 울둘목에 들어서지도 않았을 것이며,
북서향 조류 따라 기세좋게 들어왔다가 조선 수군에 박살나고 도망가려는데
울둘목은 좁지요, 뒤쪽의 배들로 완전히 교통체증이지요,
거기에다 6시간마다 바뀌는 조류는 동남향으로 바뀌지요,
아마도 지들끼리 배가 부딪혀서 침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을 겁니다.
"명대로 살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장수"를 동정하는 한민족 민초들 특유의 정서와
어떤 목적을 띈 의도들이 어우려져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속설들을 만들어 낸 걸로 생각합니다.
3. 강강술래 관련
--> 방송사에서 민요 관련 프로그램을 하다 현지 취재와 면담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강강술래와 월월이청청(경북), 쾌지나칭칭나네(경남)는 같은 노래이며(실제 불러보시면 알수 있음)
꼭히 팔월 추석에만 하는게 아니라 달이 밝은 보름밤이면 집 밖으로 나와 놀면서 하던 놀이였으며,
여자들만 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끼였으나, 역시 주동은 아낙네들이었다고 합니다.
(쾌지나칭칭나네는 조금 다름)
이런 사실들은 해당 지역을 한 번 가서 눈으로 보거나 아낙네들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데,
후세 사람들이나 특정 지역민들, 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신화를 만들어 퍼뜨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저도 한 두번 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난중일기를 보면 충무공이 무장답게 밝혀야 할 사실들은 아주 간결하게라도 꼭 밝히고 있습니다. 근데 그 속에 철쇄니 강강술래니 하는 말 없잖아요?
2. 저도 5,600척이 왔어도 다 해협에 진입하긴 힘들었을 거라 봅니다. 그렇게 보면 세가지 설이 일본 함대를 본 시각과 위치에 따라 모두 참일 수 있다는 거죠.
3. 명량대첩에 대해 정리하면서 자신이 한 일을 안 적엇을 리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