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원균 바로보기(37)-명량대첩

 조선 수군이 벽파진으로 이동한 후에도 일본 함대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1597년 9월 7일에는 탐망군관 임중형이 “적선 55척 가운데 13척이 이미 어란 앞바다에 이르렀는데, 그 뜻이 수군에 있는 것이라.”라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조선 수군은 적선 13척이 있는 곳으로 하였는데,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의 공격에 대응을 하지 않고 도망하였다. 먼 바다까지 추적하였지만, 역류를 거스를 수 없고, 복병도 우려되어 더는 좇지 않았다.

 하지만 이순신은 적이 야습을 해올 것이라 예상하고 장수들을 모아 이에 대비하도록 명령하고, 이를 어길 시 군법음 엄히 시행할 것이라 밝혔다.

 과연 그 예상대로 일본 수군은 밤 중에 기습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이미 야습에 대비하라는 지시가 있었음에도 조선 수군은 겁을 먹은 거 같았다. 이를 본 이순신은 마시 엄명을 내리면서 직접 배를 이끌고 지자포를 쏘면서 공격하니, 적선들은 네 번이나 나왔다 물러났다를 반복하면서 공격을 하다가 새벽에 물러났다.

 이틀 후인 9월 9일. 이 날은 중양절이라 병사들에게 고기를 먹였는데, 그 날 저녁 적선 두 척이 조선 수군의 형세를 탐색하다가 영등포만호 조계종의 추격을 받고 싣고 있던 물건까지 버려가며 달아난다. 이런 소규모 전투는 그야말로 대결전을 앞둔 전초전일 뿐. 아니 상식적으로는  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을 밀어버리는 전투가 됐어야 할 것이다. 조선 수군에는 전라우수사로 새로 임명된 김억추가 끌고온 판옥선 한 척을 합쳐도 고작 13척이 있을 뿐이었으니까.

 9월 13일 이순신은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이 자세히 전하지는 않지만, 임진년 승전할 때의 꿈과 대략 같은 꿈이었다고 <난중일기>에는 적고 있다.

 9월 14일. 척후군관 임준영이 보고하기를, “적선 2백여 척 가운데 55척이 먼저 어란으로 들어왔다.”라 하면서 “사로잡혀 갔다가 도망해 돌아온 김중걸이 전하는데, 중걸이 이 달 초6일 달야의산[達夜依山]에서 왜적에게 붙잡혀서 묶여 가지고 왜선에 실렸던바 다행히 임진년에 포로 된 김해 사람을 만나 왜장에게 빌어서 결박을 풀고 같은 배에서 지낼 수 있었다. 한밤중 왜놈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 그 김해 사람이 귀에다 대고 몰래 이야기하기를 ‘왜놈들이 모여 의논하는 말들이 <조선 수군 10여 척이 우리 배를 추격해서 혹은 쏘아 죽이고 또 배를 불태웠으니 극히 통분한 일이다. 각처의 배를 불러모아 합세해서 조선 수군을 섬멸해야한다. 그리고 나서 곧장 서울로 올라가자고 하더라.’ ”라는 보고를 덧붙였다. 이 보고를 들은 이순신은 이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아주 안 믿을 수도 없어서 전령선을 보내어 피난민들을 육지 위로 올라가도록 조치하였다.

 9월 15일. 진을 전라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그 이유는 벽파정 뒤에는 명량이 있었는데,  소수의 수군으로 명량을 등지고 싸우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진을 옮긴 이후 이순신은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서 “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 라는 유명한 훈시를 남겼다. 그날 밤 꿈에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라고 말하였다고 전한다. 이 역시 꿈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승전의 암시가 되는 꿈인 듯 하다.

 1597년 9월 16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에 정찰 부대가 보고하기를, “적선이 수효를 알 수 없도록 많이 명량으로 해서 곧장 우리가 진치고 있는 곳을 향해 들어온다.”라고 하였다. 그 대의 조류는 북서류로 일본 수군이 전진하기에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 보고를 접한 이순신은 즉시 수군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이전의 해전들은 대부분 조선 수군이 공세적인 입장에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일본 수군의 대규모 공세에 의한 해전이었다. 조선군의 전력은 고작 13척의 판옥선뿐이었다. 뒤에 백여 척의 피난선과 어선 등이 있었지만, 전투에 크게 보탬이 될 수는 없었다..

 일본 수군의 총대장은 옥포에서 이순신에게 패배한 도도 다카도라, 선봉장은 당항포에서 죽은 구루지마 미치유키의 동생 구루지마 미치후사, 그 뒤를 한산도에서 패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안골포에서 패한 가토 요시이키가 따랐으니, 이순신에게 한 번 이상 패배한 무장들이 복수를 위해 모인 격이 되었다. 이런 수군 전투함대 뒤를 시마즈 요시히로 같이 충청도 서해안에 상륙할 예정이던 육군과 이미 충청도까지 북상한 일본 육군에게 보급할 식량과 탄약을 실은 수송함대가 따르고 있었다.

 먼저 적선 133척이 해협을 지나 조선 수군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투는 시작되었다. 그러자 겁을 집어 먹은 조선 수군은 이순신이 이끄는 좌선만을 남겨둔 채,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차상급자인 전라우수사 김억추는 무려 2마장이나 물러나서 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사실상 이순신의 좌선 혼자서 수백 척의 배에 맞서는 것이었다.

 이순신의 좌선에서는  지자총통과 현자총통 등의 화포를 쏘니 그 탄환이 폭풍우같이 쏟아지고, 군관들은 갑판 위에 총총히 서서 화살을 빗발같이 쏘아 대니, 적선들은 감히 좌선에 접근하지 못하고 후진과 전진을 거듭하기만 하였다. 수많은 적을 단 한척의 배로 막아내는 말도 안 될 듯한 일을 이순신의 좌선이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적은 너무 많았다. 좌선에 탄 사람들도 겁이 나는 게 당연했다. 좌선이 여러 겹으로 포위되어서 형세가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자, 배의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얼굴빛이 질렸다. 그러자 이순신은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치 못할 것이나 조금도 마음을 동하지 말고 다시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라고 격려하였다.

 그리고 돌아보니 다른 배들은 여전히 뒤로 물러나 있었다. 군령을 집행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호각을 불어 중군에 군령을 내리는 기[中軍令下旗]를 세우라고 하고, 또 초요기[招搖旗]를 세우도록 했다. 그러자 중군장 미조항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좌선 근처로 다가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그 보다 먼저 다가왔다. 이순신은 안위에게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라고 호통 치니, 이 말을 들은 안위는 자기 일신만의 안위가 아닌 백성들과 나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하여 용감히 적진 속으로 돌진한다. 이런 장면을 일부만 모고 안위를 비겁하게 묘사하는 소설도 있지만, 엄연히 안위는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다음으로 적을 맞이하여 싸운 인물이고, 그래서 이후로도 이순신의 큰 신임을 받은 무장이다.

 안위에게 호통을 친 다음 이순신은 중군장 김응함에게도 “ 너는 중군[中軍]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라고 말하니 김응함 역시 안위와 함께 용감히 전진한다.

 적군의 입장에서는 상대할 적이 3배로 늘어난 셈이다. 한 척에서 세 척으로 늘어난 게 뭐 대단하냐 싶을 수 있지만 한 척도 격침시키지 못하고 쩔쩔 매던 상황에서 두 척이 더 전투에 가다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남은 배들도 더 가담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적장은 휘하 배 두 척을 보내 안위의 배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니, 안위의 배는 곧 포위당하고 만다. 적군들이 안위의 배에 개미 붙듯하여 서로 먼저 올라가려 하니 배에서는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서 혹은 모난 몽둥이로, 혹은 긴 창으로, 또 혹 수마석[水磨石] 덩어리로 무수히 치고 막다가 배 위의 사람이 기진맥진하였고, 격군 일여덟 명이 공포를 못 이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를 본 이순신은 뱃머리를 돌려 쫓아 들어가서 마구 화포와 화살을 쏘았다. 적선 3척을 거의 제압하였을 무렵, 녹도만호 송여종과 평산포대장 정응두의 배가 뒤쫓아와서 합력해 쏘아 죽여 적은 한 명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 때 안골포에서 투항한 항왜 준사가 바다를 보다가 그림 무늬 놓은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자가 바로 안골에 있던 적장 마다시라고 말하였는데, 이 마다시란 바로 적군의 선봉장 구루지마 미치후사였다. 이에 이순신이 김돌손에게 명하여 갈고리로 그 시체를 건져 올리니 준사는 마다시가 맞다고 좋아하였다. 그러자 이순신은 그 시체의 목을 베어다가 배 위에 효수하니, 형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형 보다 더 비참한 꼴을 당하고 만 것이다. 같은 사람에 의해 형과 아우 모두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였으니 아, 참으로 불행한 형제이다.

 이렇게 선봉장의 목을 베어 효수하는 판에 조류는 조선군에 유리한 남동류로 바뀐다. 전투가 벌어진 진도 울돌목은 하루에도 몇 번씩 조류의 방향이 바뀌는 곳이었으니, 이순신은 이점을 염두에 두며 불리함 속에서도 유리한 전장을 선택한 것이리라. 이쯤 되면 일본 수군의 기세가 꺾이는 것이야 당연했다. 뒤에서 구경만 하던 조선 전선들도 하나 둘 씩 전투에 참가하여 적선을 격파한다. 승기를 탄 조선 수군은 적의 진격을 막는 정도를 넘어 아예 추격전까지 펼치니, 일본 수군은 감히 조선 수군에 대항하지를 못 하고 결국 퇴각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 사상자는 좌선에서 순천 감목관 김탁과 영노 계생이 전사하고 박영남, 봉학 및 강진현감 이극신 등 3명이 부상당하였고, 안위의 배에서 발생한 사상자를 넉넉히 잡아 합쳐도 백명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본군은 얼마나 참전하였으며,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일본 수군에서는 몇 척이나 참전하였는가? 이는 책에 따라서 엇갈리는데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133척(난중일기 초서본, 선조실록)
 2. 333척(난중일기 전서본)
 3. 5,6백척(재조번방지, 연려실기술)

 차이가 꽤 나는데 어느 게 옳을까? 보기에 따라서 "1번도 맞고 2번도 맞고 3번도 맞느리라. 허허허"라는 것도 가능하다.(이 분위기에 적절한 짤방은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49쪽 마지막 컷을 볼 것)

 먼저 133척이라고 나온 <난중일기>의 해당 부분을 살펴보자.

 9월 16일[갑오] 맑다. 이른 아침 망군이 와 보고하기를, 「적선 무려 2백여 척이 명량[鳴梁]을 거쳐 곧바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온다」고 했다. 여러 장수를 불러 약속을 밝힌 다음 닻을 들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3척이 우리 배를 에워쌌다...(후략)

 이 내용을 토대로 보자면, 전투 초반에 133척이 조선 수군을 포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부분이나 이후 부분이나 적선이 총 133척이라 단정하는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즉, 전투 초반 133척이 들어온 이후 추가로 전투선이 온 것을 생략하고 133척만 참전한 것 인양 보이게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투에 참가한 일본 수군 무장들이 전사한 구루지마 외에도 도도 다카도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 상당한 동원능력을 가진 자들인 것을 볼 때, 전투선이 133척보다 더 많이 동원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럼 왜 실록에는 133척이라 기록되었는가? <신조실록>에서도 <난중일기>처럼 적선의 총 숫자를 확정한 게 아니라 ‘ 적의 전선 1백 30여 척이 이진포(梨津浦) 앞바다로 들어오기에’라고 하여, 역시 전투 초반의 진입한 선박만 130여척인지, 전투에 참가한 총 선박이 130여척인지가 애매하다. 이는 이순신이 축소보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임금에게 밉보여 죽을 고비를 넘긴 이순신이기에 자신의 공이 크다고 강조하면 또 다시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전공을 축소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결국 다른 상황도 함께 고려하여 볼 때, 133척은 전투 초반에 해협에 진입한 숫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순신은 선조의 경계심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 장계는 물론, 나중에 타인이 볼 수도 있는 일기에까지 전과를 축소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고, 전서본 <난중일기>는 이를 바로잡은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5,6백척이라는 기록은? 이렇게 적은 <재조번방지>나 <연려실기술>은 전투를 바라보던 백성의 입장에서 적고 있다. 인근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조선 수군의 시야에는 안 들어온 배까지 볼 수 있어 더 많은 배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명량대첩에 참전한 일본 배들의 숫자는 초반에 진입한 함대 133척에 총 전투선박 330여척, 해협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인근까지 온 비전투선박을 포함 시에는 5,6백 척에 달하는 숫자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일본의 피해는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일본 수군의 피해는 31척으로 알려져 있다. 실록에 기록된 공식전과 역시 적선 31척 격침에 수급을 8개를 취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게 격침을 확인한 적선의 수이고, 실제 전과는 더 크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에서는  “장수와 사병이 용맹을 떨쳐 달아나는 놈을 추격하고 패배하여 가는 놈을 따라가 목 베어 죽인 것이 수백여급이 되었으며, 도망하여 탈출한 것은 겨우 10여 척뿐이었고 아군의 병선은 모두 무사하였다.”라고 적고 있으며, <연려실기술>에서도 '적군은 겨우 십여 척으로 도망갔고 우리 배는 모두 탈이 없었다.'라고 기록하였다. 10여 척만이 도망갔다는 건 과장된 표현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일본군의 피해가 컸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일본군의 피해상황은 일본군에 사로잡혔던 조선인 포로의 증언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선조실록>에는 정유년에 일본군 포로가 되었다가 이듬해 탈출한 전풍상의 증언이 실려있다. 이 증언에 의하면 산도라는 일본 무장의 부장인 우다능기의 종으로 생활하였는데, 산도는 정유년 6월에 전선 120여척을 이끌고 부산에 상륙하여 칠천량해전과 남원성 전투에도 참가하였고, 9월에는 휘하 전선들을 이끌고 명량대첩에 참가하였다. 여기서 전풍상은 “거기서 통제사(統制使)와 접전을 하여 왜적의 반이 죽거나 부상당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반이 산도라는 무장의 부하 중 반인지, 전체 일본군의 반인지는 불확실하며. 산도의 배가 120척이라고 해도 이것이 전투선과 비전투선 모두 합친 수치일수도 있다.

 산도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실록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명량대첩에서 죽지 않았고, 일본의 한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였으며 120척의 선단을 이끌었다고 전풍상이 증언하는 걸 보면 산도는 구루지마 미치후사나 그 휘하 장수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즉, 구루지마 이외의 영주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일본의 실제 피해는 31척을 넘어가는 것이다.

 강항의 <간양록>에도 칠천량해전과 명량대첩을 모두 본 조선인 포로의 증언이 나온다. 여기서 그 포로는 “..(전략) 급기야 여러 왜장이 서해를 따라 서쪽으로 올라가 전라도우수영(全羅道右水營)에 당도하였는데, 이순신이 과선(戈船) 십여 척을 이끌고 힘껏 싸워 물리쳤다. 왜장 내도수(來島守)가 패전하여 죽고, 민부대부(民部大夫)는 바다에 떨어져 겨우 죽음을 면하고, 그 나머지 작은 장수도 죽은 사람이 여러 사람이었다."라고 말하였다. 강항은 정유년어 쳐들어 온 적장들의 명단에서도 진도까지 왔다가 배에서 죽은 자가 있다고 했으니, 그의 증언으로도 일본군의 피해는 구루지마 미치후사 휘하 병력 이외에도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일본군 피해 31척이라는 건 의도적인 축소보고이거나 격침을 확실하게 확인한 것만 31척이라는 의미이지, 전체 피해는 그 이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완침은 면했다 하더라도 일본 선박들은 승선인원이 대거 몰살당하여 전투력은 상실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명량대첩 이후 조선 수군이 전력을 재건하는 동안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에게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 했단 사실을 생각하여 보면, 명량대첩에서 일본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명량대첩은 이순신도 천운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불리한 여건 속에서 이루었기에 더 값진 승리였다. 이런 엄청난 승리를 거둔 이순신은 싸우던 곳에 정박하고 싶었지만, 풍랑이 심하고 탄약 소모량도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북쪽 당사도로 진을 이동한다. 다음날에는 어외도로 진을 옮기는데, 3백 척의 피난선들이 먼저 와서 수군을 환영하였으며, 나주진사 임선 등이 찾아와서 승리를 치하하고 군사들에게 먹일 양식을 주었다. 명량대첩의 모습이 백성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으로 각인된 것이다.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이 북쪽으로 이동한 틈을 타서 서해로 진입하는 데까지는 성공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본이 얻은 것이 있다면 일본 유학에 큰 영향을 끼친 강항을 포로로 잡았다는 거 정도. 그것도 결과적으로 봤을 때 얘기지, 전쟁에 있어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본 수군은 끝내 전라도 해안을 벗어날 수는 없었고, 따라서 충청도의 육군에게 보급도 해줄 수 없었다. 더 이상 바다로부터의 보급을 기대할 수 없는 일본 육군에게 서서히 겨울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어느 누구도 임진년의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충청도까지 올라간 일본군은 다시 남하하여 남해안 일대의 왜성에 머문다. 명량대첩은 단순히 소수로 다수의 적을 물리친 게 아니라 전쟁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은 전투였다.

by 을파소 | 2009/11/04 19:08 | 이순신/임진왜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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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초록불의 잡학다식 at 2009/11/04 20:55

제목 : 명량해전에 바치는 송사
이것은 카데슈 전투 후 람세스를 찬양한 시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장군께선 탄식하시었다. 내 곁에는 중군장도, 우수사도, 조방장도, 현령도, 그 어떤 전함도 없다. 나의 부하 장수들은 나를 적에게 내맡기고 어느 누구도 적에 대항해 끝까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장군은 말씀하셨다. 전하, 신의 말을 들으소서! 적들의 무리 가운데 홀로 있는 장수를 어찌 잊으려 하십니까? 도대체 무슨 까닭에 이리 하시는 겁니까? 제가 전하께......more

Linked at 을파소의 역사산책 : 을파소.. at 2009/12/30 23:17

... 문제는 슈타인호프님이 좋은 포스팅을 많이 하셔서 전 밥숟가락만 슬쩍 얹었죠. 10월 이순신과 원균 바로보기(35)-원균의 최후는? 별로 비장하지는 않아요. 11월 이순신과 원균 바로보기(37)-명량대첩 무기가 우월하므로 이순신이 이기는 건 당연했다? 명량대첩을 보면 그걸 놋리는 못 합니다. 12월 전쟁기념관 덕에 졸지에 흑역사가 된 임진왜란 전투들 명색이 ... more

Commented by 김억추 at 2009/11/04 19:13
내가 후퇴한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
Commented by ㅇㅅㅇ at 2009/11/05 19:5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mmented by asianote at 2009/11/04 19:27
兩雄不俱立이란는 말에 걸맞게 도요토미는 불행하게도 이순신을 넘지 못하였지요. 그러니 나니와의 꿈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지.
Commented by 에로거북이 at 2009/11/04 19:29

"이순신이 탄 판옥선 단 한척이 나라를 구했다. 이순신이 탄 배 한 척이 동양 삼국의 역사를 바꿨다."

ㅡ 김경진님이 쓰신 소설 임진왜란 명랑대첩 마지막 문구
Commented by 셰이크 at 2009/11/04 19:46
사기캐릭 통제사. 원균의 능력치까지 전부 흡수해 버린 것인가!!!
Commented by hislove at 2009/11/07 00:56
원균의 능력치까지 전부 흡수하면 오히려 능력치가 감소하지 않았을까요(...)
Commented by 역사짱 at 2009/11/04 19:47
우와아아아아앙! 정말 대단합니다!
Commented by 깐죽깐돌이 at 2009/11/04 19:52
이.. 이것은 그야말로 통제사님의 포.. 폭풍 러시!!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11/04 20:11
김억추/오, 그 추진력으로 바람의 상처를...!

asianote/도요토미도 대단하지만, 이순신이 대단한 정도도 넘어섰으니 말이죠.

에로거북이/맞는 말입니다.

셰이크/원균 능력은 푸드파이트 말고는 쓸데가 없습니다.

역사짱/궁극의 먼치킨 치트공이시죠.

깐죽깐돌이/가히 따를 수가 없습니다.
Commented by Ezdragon at 2009/11/04 20:23
이게 바로 역사에 빛나는 치트캐의 치트전투!

이맘때쯤 일본군의 목적은 대륙정벌(...)에서 조선 하3도 먹기로 변한걸로 아는데, 명량의 승리는 그것마저 불가능하게 했죠. 정말 역사를 바꾼 전투.
Commented by 정호찬 at 2009/11/04 21:03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

정말 궁금한 게 이 말의 주어는 뭐였을까요.
Commented by 화성거주민 at 2009/11/04 21:11
(싸우면) 크게 이기고 (튀면) 진다 아니었을까요?
Commented by Luthien at 2009/11/04 21:45
전 "거시기" 라고 생각합니다.
거시기해불믄 이기구, 거시기해불믄 지는겨. (...)
Commented by Niveus at 2009/11/04 21:25
이것이 바로 리얼 치트공(...)
133척이라 하더라도 1:133으로 싸우다니...
이럴때 어울리는 대사로는 역시 "This is Chosun!!!!!!" (....죄송합니다OTL)
Commented by 윙후사르 at 2009/11/04 21:30
후미에 있어야 될 총사령관 도도 다카도라마저 부상을 입었다는 점에서 일본군은 단 한척에 엄청나게 작살이 났다는 이야기밖에는 안되는군요. ㄷㄷㄷ (혹시 이순신 장군 목 따려고 다들 전열 무시하고 달려들었을 가능성은 없나요?)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11/04 21:31
통제사님은 진정한 먼치킨이십니다....
Commented by nighthammer at 2009/11/04 21:36
지휘관이 저어기 본진 뒤에 꼭꼭 숨어있는(어쩌면 당연한) 일본군의 지휘관 위치를 생각할 때 지휘관이 물에 빠졌다거나 전사했다면 그 함대는 격파 수준을 넘어 전멸 직전까지 몰렸다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무려 '총사령관' 씩이나 되는 도도 다카도라가 부상을 입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지요. 이것의 의미는...(...)
Commented by ㅎㅎㅎ at 2009/11/04 22:00
이거 게임으로 치면 충무공의 능력치는 어떻게 될까요???

전쟁 초반 배 한척으로 100척 이상 관광 보냈다니.ㅎㄷㄷ



Commented by zert at 2009/11/04 22:14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하면 집니까?"
어떻게 보면 가장 구체적인 질문이었다.
"자네가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거나, 포기하고 자진하거나, 왜놈들에게 항복하면 진다."
"제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그래서 자네는 무조건 이긴다."

김경진 공저, <임진왜란> 5권 중 발췌
Commented by ㅎㅎㅎ at 2009/11/04 22:19
갑자기 든 뻘 생각인데

임진왜란 초부터 전라좌수사가 충무공이 아닌 김억추였으면 어떻게 돼었을까요??ㅋㅋㅋ

전 위대하신 김억추 장군님이 바람의 상처로 수군을 승리로 이끌었을것 같네요.ㅋㅋㅋㅋ

p.s. 그런데 현실은....유명인사들 중 원균,김억추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것 OTL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9/11/04 22:38
잘봤어요

근데 저도 갑자기 드는 뻘생각하나
만약에 이순신이 수군장수가 아니라 임진년 용인전투때 전라도육군총사령관으로 5만병력을 이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Commented by 행인1 at 2009/11/04 22:55
그나저나 꿈 이야기는 왠지 사기진작 차원에서 하신것 같기도...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11/04 23:05
한민족 5천년 역사상 가장 길었던, 가장 중요했던 24시간.
Commented by 아롱범 at 2009/11/04 23:11
통제사께서는 이 전투에서 패배하신다면 정말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하셨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네요.
'必死卽生 必生卽死'의 정신이 여실히 드러난 전투인 것 같네요.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11/04 23:12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11/04 23:12
Ezdragon/이순신 한 명이 모든 걸 바꿨죠.

정호찬/이순신일테죠.(응?)

화성거주민/이순신처럼 하면 이기고 원균처럼 하면 진다...

Luthien/하긴 전라도에 오래 계셨죠.(응?)

Niveus/조선의 통제사는 괴물인가?(퍽)

윙후사르/그러고 싶었겠지만, 그 대가로 타향의 바닷속에 수장되었겠죠.

야스페르츠/그렇습니다.

nighthammer/통상이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는 의미죠.

zert/적절한 창작이죠.

ㅎㅎㅎ/칼질 한번으로 종전을....(퍽)

지나가다/문제는 육지는 도망가기 좋다는 겁니다. 명량대첩에서 좌선 변사들은 통상과 같은 배 탔다는 이유로 도마옫 못 가고 싸워야했죠.

행인1/그럴 수도 있겠죠.

네비아찌/그리고 역사가 바뀌었죠.
Commented by 우지코스 at 2009/11/04 23:40
그야 말로 전세계 역사상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이보다 더한 사실이란 역사에 씌여진 전쟁이 과연 있었을까요?ㄷㄷㄷㄷㄷㄷㄷ
우리 장군님이야 말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훨씬더 뛰어넘어선 인물이셧다로고 밖에는 생각할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리는게 저 말도 안돼는 대첩이였죠;;;;
아~통상!!! 이충무공이시여!!!!ㅠ.ㅠ

진짜 난중읽기중 저부분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는게 팍팍 느껴지더라고요;;;

더이상 무엇으로 말하리오? 저분의 신화나 전설로 치부해도 모자랄 저 업적을 말입니다.............ㅠㅠ
Commented by 飛流 at 2009/11/04 23:45
언제 읽어도 명량해전은 대첩이고 감동입니다., ㅠ_ㅠ)b
Commented by 루크 at 2009/11/05 00:30
최근에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읽다보면
김억추 이누야샤 설이 자꾸 나오던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도는 건가요?
설마 실록에 그런 이야기를 적어놨을 리는 없고...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11/05 00:36
김억추의 후손들이 만든 문집에 "우리 김억추 현무공 할아버님께서 돕지 않았으면 충무공이 명량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충무공이 위기에 몰릴 때 억추 할아버님이 장검을 뽑아 한번 휘두르자 왜선 수백척이 한칼에 부서져 나갔다는!"이렇게 쓰여 있어서, 그 엄청난 과장과 미화를 비꼬는 이야기랍니다.
Commented by 루크 at 2009/11/05 00:38
아...
이순신 장군 업적을 보면
차마 그렇게 미화할 기운도 안 생길 것 같은데 말이죠;;
Commented by 현암 at 2009/11/05 00:34
으음 그래서 저는 항상 必死卽生 必生卽死를 명심한다죠 쿨럭....
Commented by tloen at 2009/11/05 02:05
음 사실 이순신 장군이 경상 우수사로서 최초 부산진 상륙을 시도할 때 해전을 한판 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고, 임진왜란의 향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 이게 항상 궁금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Commented by 백합과수국 at 2009/11/05 09:24
그냥 조선사 역사에 많고 많았던 왜변하나 추가될듯...

충무공 : 전하.. 부산포에 발호하는 왜적의 수급을 배어...
선 조 : 응? 그래 알았어 수고 했어...근데 거기 특산물이 뭐냐??? 좀올려라...

히데요리와 이에야스가 좀더 일찍 붙게되는 계기가 될듯...ㅎㅎ
Commented by nighthammer at 2009/11/05 18:51
경상 우수사였다면 판옥선 70~100척 사이 전력을 기본으로 갖고 계신단 소린데...

통상께 저 전력을 쥐어주면 뭔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임란-재란의 역사가 말해주지요.(...)
Commented by 백합과수국 at 2009/11/05 09:30
아... 악... 통상..................!(근데 통상께오는 존칭을 무엇을 붙여야 할지... 각하는 너무 약한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오늘 저녁에는 김경진의 임진왜란이나 봐야겠군요..(한3번정도 봤지만...) 전투신은 이책이 짱~~~!
근데...김경진의 임진왜란에선 12척+1에서 마지막 1척이 귀선으로 나오는데... 만약 실제로 귀선이였다면 도움이 많이 되었을까요?(생각해보니 포위된 판옥선은 잘 구할것 같기도 하고...)

Commented by zert at 2009/11/05 19:29
그런데 일단 참전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백합과수국 at 2009/11/05 09:40
참 그러고 보니깐... 김경진의임진왜란 중에서 명랑대첩전인가... 안위였나? 하여간 충무공빠(?)가 등장하는데..
그분이 꾸는 꿈이 예술이죠...ㅎㅎㅎ

-충무공께오서 황제가 되심... 재상은 유성룡...
1. 훗까이도(?)까지 도망간 왜왕과 막부놈들 결국 항복...(열도정벌)
2. 중국남부까지 피난간 명나라왕이 귀부를 청함...(대륙정벌)
3. 기타 로서아까지 정벌함...(유라시아정벌)

-헐... 흐뭇해지면 환빠로의 지름길인데... 절로 흐뭇.....(퍽퍽퍽)

Commented by rosencross at 2009/11/05 09:43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안위는 자기 일신만의 안위가 아닌 백성들과 나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하여 ..'<==여기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써놓으니 무언가 이상하군요.
Commented at 2009/11/05 14: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배길수 at 2009/11/05 14:48
1. 소드마스터 OOO(...)
"좌수사... 할 말이 있다. 그대는 쪽수가 맞아야 돌격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러지 않아도 별로 상관 없어."
"뭐, 뭣이!?"

2. 항상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 -_-
3. 위장과 능력치를 교환(...)
Commented by 어릿광대 at 2009/11/05 15:55
엄청나네요
Commented by memi at 2009/11/05 15:57
이..이것은 충무무쌍이군요....
Commented by Cocoa at 2009/11/05 16:06
일본군 왈.

머..머야이거..무서워..

늘 재미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ZeX at 2009/11/05 17:20
역시 기록이 상세하지 않았으면 누가 봐도 초 과장에 완전 사기라고 했을 전투답군요. 문자 그대로 일당백이 넘어가는데 저 전과는 대체... --;;
Commented by 동사서독 at 2009/11/05 17:45
훌륭하군! 그러나 조선왕이여 자만하지마라. 너의 힘으로 이긴 게 아냐 이순신의 능력으로 이긴 거다.

이순신은 만능이 아니다. 전쟁이 낳은 슬픈 변종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이에야스를 기쁘게 할 뿐이야.

히데요리 간파쿠에게 영광 있으라.

우라간, 간파쿠님에게 그 도자기를 전해다오. 이것은 좋은 것이다.

거북선을 본 사람은 살아 돌아가지 못해.

아...아니! 왼쪽이다! 왼쪽!

천자총통은 겉치레가 아냐!

네 놈도 함께 데려가겠다... 이.순...ㅅ...ㅣㄴ

나의 목숨을 버려. 그리고 이기는 거야. 많은 사람이 너를 지켜보고 있어. 너는 혼자가 아니야. 슬퍼할 필요 없어.
Commented by zert at 2009/11/05 19:30
이...이것이 조선의 판옥선인가!

에잇! 조선의 이순신은 괴물인가!

거기냐!

내가 지휘를 제일 잘한다고!(.....)
Commented by 우지코스 at 2009/11/05 20:11
뉴 판옥선은 겉치레가 아니야!!!

가랏! 신기전!(혹은 대장군전,혹은 기타 모든 총통?)

조선 수군이 단지 포격전만을 하는 수군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마!!

도,돌이킬수 없는 전쟁을 저질러 버렸어.....(왜군 입장.)

전선의 숫자의 차이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마!!

이것이 이순신인가?.......

무수히 몰려오는 왜군들따위 수장시켜버리겠어!!

....................

어오 더이상 생각이 안나네요^^;;;;
Commented by 배길수 at 2009/11/05 22:33
개인적으로 꼽는 제타왜란 최고 명대사는 "나오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거 아냐!"
Commented by rumic71 at 2009/11/05 23:28
타임아웃이 없는 전투의 재미를 가르쳐 주마.(펑)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11/05 22:05
우지코스/우리나라가 더 강해지고 유명해지면 세게에서 빠지지 않는 명장으로 평가받을 겁니다.

飛流/동감입니다.

루크, 네비아찌/그리고 그 장난질을 시작한 게 실은 저....이 블로그가 생기기 전 다른 사이트에서 한 겁니다. 이정도로 유명해질 줄은 정말 몰랐다능.

현암/전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대단한 분이지요. 저도 조금이라도 본받아야겠어요.

tloen/초전에 끝나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원균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백합과수국/충무공이란 시호조차 안 내려질 정도로 변방의 사건으로만 치부됐을지도 모르죠. 대신 선조가 이순신을 견제할 이유도 줄겠네요.

nighthammer/병력만 있으면 세계정복도 하실 분...

백합과수국, zert/정설은 참전하지 않았다, 김경진님의 임진왜란은 이분의 행록에 판옥선 한 척을 거북선으로 꾸몄다는 말에 근거하여 한 척 참전으로 그리셨죠. 적절한 해설만 덧붙인다면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는 창작의 ㅇ여역으로 한 척 정도 참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사극은 그 '적절한 해설'없이 너무 비야글 해서...

rosencross/잘하면 유상무상무놀이 안위버전으로...(퍽)

비밀글/수정하겠습니다.

배길수/1. 그의 비기 하나면...
2. 동감입니다.
3. 역시 동감

어릿광대/정말 엄청난 해전이죠.

memi/그분만이 가능하죠.

Cocoa/일본 수군에게는 말그대로 충격과 공포였겠죠.

ZeX/소설이라면 리얼리티가 없다고 욕먹었을 겁니다.

동사서독, zert, 우지코스/.........................
Commented at 2009/11/05 23: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고독한별 at 2009/11/06 06:06
가만 보니까 이순신 장군께서 부하들에게 계속 "겁먹지 말고 싸우라."고 강조하시는 부분이
눈길을 끄네요. 아무래도 장군께서는, 아군 병사들이 적선의 숫자에 겁을 먹고 제풀에 도망
만 치지 않는다면 분명 승산이 있다고 확신하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1:133으로도 거뜬한 싸움이었으니 '겁먹지 않으면 이긴다'는 확신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네요.
저 개인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가장 뛰어난 점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을
하시는 능력 뿐아니라, 그 '승리의 길'로 부하들을 정확히 인도하신다는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떤 책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지나가는 왜선 몇척을 격파하는 것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하던데, 사실 주어진 승리를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휘관에게 있어 그 무엇
보다도 중요한 능력이 아닐까요? 그대로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삽질로 날려
버린 장수가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11/06 10:35
더하고 뺄 것도 없지요.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꾼 분이지요.
Commented by 이건 뭐 at 2009/11/06 14:10
이해하기 힘든 전투네요. 압도적인 수의 열세를 뒤집을 만한 기발한 작전이나 병력 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좋은 함선 믿고 열심히 싸웠더니 결국은 이겨버렸다... 이니까요. 차라리 장판파 같은 경우라면 장수가 사람같지도 않게 잘 싸웠던 모양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함선을 이용한 해전 같은 경우에는 장수의 무력이 영향을 미칠리도 없고 게다가 상황 전개과정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사기진작'외에 특별한 역할을 하셨던 것 같지도 않구요.

그렇다면 한마디로 조선 수군이 뻘짓하지 않고 쫄지만 않으면 판옥선 13척으로도 왜의 수군 따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명량해전이라는 전투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애초부터 일본 수군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오합지졸이며, 더 많은 함선 가지고도 졸전을 거듭한 원균이 등신 중에서도 상등신이라는 점에 보다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mknet at 2009/11/06 18:18
미리 야습에 대비한 점이나, 유리한 지점을 전투지역으로 선택한 것이나,
모두 물러난 시점에서도 부하들을 격려해서 둘러싼 적들을 공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병력보다 수십배 많은 적에게 둘러싸여서 당당히 서서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Commented by Esperos at 2009/11/06 20:38
그러고 보니 디씨에서 책사풍큐는 이순신이 꿈에서 신인을 봤다는 기록을 근거로, 그 신인이 바로 기독교의 하나님이며, 고로 이순신 장군은 기독교인이다..... 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죠. 문뜩 떠오르네요. ^^;;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11/07 01:26
비공개/블로그관리에서 카데고리 추가를 하면 될텐데요?

고독한별/불리한 가운데도 적절한 전장을 선택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을 고를 수 있는 것도 능력이 잇어야 가능한 거죠.

paro1923/맞습니다.

이건뭐/숫적 열세를 만회할 전장의 선택, 한 척으로 수많은 적선을 상대하는 함선운용 능력, 평소에는 수급을 베는데 신경 안쓰다가 저 때는 적장의 목을 베어 높이 다는 것 등도 다 전술의 일부입니다. 일일이 설명하며 상세하 적지 않아 그런 거 뿐이죠.

그리고 아군 사기가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로 들어간 상황에서 그걸 진작 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고요. 아무나 할 수 잇는 일이 아니기에 위대할 수 밖에요.

mknet/동감입니다.

Esperos/풍큐의 정신세계는 참....
Commented by 과객 at 2009/11/13 01:29
다른 건 둘째치고 해전 시작과 함께 줄창 혼자 싸워왔던 좌선의 전사자 수가 달랑 2명...;;
더구나 함포전도 아니고, 준백병전에서 말이죠. 정말 이 치트공이란 말이 무색치 않다고 보입니다.
(아무리 판옥선 vs 세키부네 라 할지라도 이 정도쯤 되면 그저 군신이란 말 밖엔 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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