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1일
이순신과 원균 바로보기(36)-통상의 귀환
해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해산하다시피 전멸하자, 조선은 놀랐다. 명나라도 놀랐다. 일본도 놀랐다. 전쟁 기간 동안 불패를 자랑하던 수군이 하룻밤 만에 허망하게 사라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이라크에 있는 미군이 하룻밤 만에 궤멸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칠천량 해전은 세계역사에 있어서도 보기 드문 최고의 황당한 패배로 길이 남을 것이다.
한산도로 돌아온 경상우수사 배설은 한산도를 불태우고 서쪽으로 물러난다. 더 이상 일본군을 막을 건 없었다.
수군의 궤멸은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비상사태였고, 이는 반드시 수습해야 했다. 칠천량 해전을 보고 받은 도원수 권율은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급하게 찾아가서 “일이 이미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라면서 뜻을 정할 수가 없다고 한탄한다. 이 말을 들은 이순신은 “내가 직접 해안 지방으로 가서 듣고 본 뒤에 방책을 정하겠다.”라고 대답한다. 이순신은 이 심각한 사태를 수습할 적임자였으니 권율은 당연히 기뻐하였다. 이순신은 송대립, 유황, 윤선각, 방응원, 현응진, 임영립, 이원룡, 이희남, 홍우공을 데리고 길을 떠나 사태 수습에 나선다. 아직 조정에서 논의를 하고 결정을 내릴 시점은 아니었기에, 아직은 백의종군 신분이었지만, 권율의 참모자격으로 일에 나섰다 할 수 있다.
7월 22일에 패전사실을 보고 받은 조정에서는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이순신을 다시 전라좌수사 겸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하고, 전사한 충청수사 최호의 후임에 임진년에 전라좌수영 휘하였던 순천부사로 있은 권준을 임명한다. 하지만 정작 충청수군은 한동안 이순신과는 합류할 수 없었다.
이순신을 다시 삼도통제사로 임명할 것을 결정한 건 7월 22일이지만, 이순신이 그 명령을 수령한 것은 8월 3일이었다. 그 전날인 8월 2일의 일기에서는 이순신이 임금의 명령을 박을 징조의 꿈을 꾸었다고 적고 있으니, 하루 뒤의 일을 예감한 것일까?
선조는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리면서 이순신을 통제사로 재임명하였다.
오호라, 국가가 의지하여 울타리를 삼는 것은 오직 수군이거늘 하늘이 아직도 재앙을 거두지 아니하여 흉포한 무리가 다시금 성하매, 마침내 삼도 수군도 한 번 싸움에 모두 없어지니 그 뒤로 바다 가까운 여러 고을들을 그 누가 막아주랴. 한산을 이미 잃었으매 적이 무엇을 꺼리리요.
눈썹을 태울만큼 급박함이 조석에 닥쳐온 이제 계책이라 할 것은 뿔뿔이 흩어진 군사들을 불러모으고 군함을 거두어 들여서 급거 요해처로 가서 웅거하여 엄연히 큰 군영을 이룸일 뿐일 것이다. 그래야만 도망하여 숨은 백성들도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알 것이고, 바야흐로 세력이 강성해진 왜적을 조금이라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임을 맡은 자는 위풍과 인애와 지략과 재능을 갖추고서 평소부터 안팎으로 백성의 따름을 받던 자가 아니더면 능히 이 임무를 수행해 갈 수가 없을 것이다. 오직 그대의 명성만이 일찍이 병사의 직을 맡을 때부터 두드러졌으며, 그 전공과 업적이 다시금 임진년의 큰 승전이후로 떨쳐져서 변방의 군사들이 의지하기를 만리장성처럼 굳게 하였다.
그럼에도 지난 번 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도록 했던 것은 역시 사람의 꾀가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오늘 이와 같이 패전의 욕됨을 당하게 되니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이제 특별히 그대를 상복 입은 채로 기용하여 또한 백의에서 뽑아 다시 옛날같이 전라좌수사겸 충청, 전라, 경상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노니 그대는 도임하는 날 먼저 부하들을 불러 어루만지고 흩어져 도망한 자들을 찾아내 단결시켜 수군 진영을 만들고 나가 요해지를 지켜 군대의 위풍을 새로 한번 떨치게 하면 이미 흩어졌던 인심도 다시 안정시킬 수 있고 적도 또한 아군의 방비가 있음을 듣고 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힘쓸지어다.
수사 이하는 모두 다 지휘 관할하되 일에 따라 규율을 범하는 자가 있다면 일체 군법대로 처단하려니와, 그대의 나라 위해 몸을 잊고 시기에 따라 나가고 물러옴 같은 것은 이미 다 그 능력을 겪어 보아 아는 바이니 내 구태여 무슨 말을 많이 하리오.
어허 저 오나라 때 장수 육항(陸抗)이 국경의 강 언덕을 두 번째 맡아 군략 상 할 바 일을 다 했으며, 또 저 왕손(王遜)이 죄수의 명목에서 일어나 능히 적을 소탕하는 공로를 세운 것 같이, 그대는 충의의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나라 건져주기를 원하는 소원을 풀어주기 바라면서 이에 조칙을 내리노니 그렇게 알 지어다.
그러게 잘 싸우는 사람 왜 파직시키고 지지리도 무능한 원균을 그 자리에 임명했던가? 통제사로 복직하기는 했지만, 대체 뭘 가지고 싸우라고? 하지만 어명을 받은 이상 고지식하게 그 어명을 수행하는 이순신이었다. 그리하여 돌아온 통제사 이순신은 수군 수습의 길에 나선다.
그러나 그게 쉬울 리가 없다. 흩어진 배들과 병사들도 모아야하는데 칠천량 해전 이후로 일본군은 전라도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휘하 군사도 얼마 없으니 이들을 또 잘 피해서 다녀야 한다. 때로는 하루 차이로 일본군과 어긋나 길을 지나기도 하니, 참으로 위험한 시기였다. 그렇다고 조정에서 지원이라도 해주는가? 모든 건 이순신 혼자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이순신은 부지런히 전라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병장기 등을 수습하면서, 이 과정에서 순천부사 우치적 등의 수군 장수들 및 병사들을 다시 모았다. 병사나 군관을 보내 사라진 관리들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회령포에 이르러서는 경상우수사 배설의 판옥선들도 수습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게 부족했다. 판옥선들은 배설이 이끌었던 배들 말고도 배설과는 따로 도망친 판옥선들에 포구에 방치된 판옥선들도 있었지만, 배가 있어도 움직일 사람이 부족하거나, 그 배들을 끌고 와야할 책임자가 격군 부족을 핑계로 회피하여 배가 있어도 전투에 투입하기가 힘들었다.
8월 19일에 회령포의 전선을 수습할 때 다른 모든 장수들이 임금의 교서에 숙배를 할 때, 배설만은 숙배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그 벌로 배설 대신 그 밑의 영리에게 곤장을 쳤다. 아마 배설은 임금에게 불만이 많았나 보다. 그런 임금이라면 필자라도 불만 많겠다. 배설의 영리 외에도 이 날 판옥선을 상인 위덕의를 위해 사사로이 이용한 회령포 만호 민정붕도 곤장을 맞았다. 몇년 전 어느 드라마에서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되지 판옥선으로 상당의 짐을 운송했다는 내용은 이런 사실을 감안하지 않은 처사임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이 수군을 수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동안, 일본군은 전라도를 침탈해갔다. 그러면서 일본군은 수군까지 동원해가면서 명나라 군사도 주둔한 남원성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한다. 8월 13일부터 시작된 전투에서 3일간에 걸쳐 저항이 이어지지만, 전라병사 이복남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수와 군사, 백성들이 죽었으며 명나라 총명 양원이 이 남원성에서 달아났다가 참수형에 처해진다. 남원서의 함락 이후 전주성을 비롯한 전라도는 철저히 일본군에게 짓밟힌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도 없이 수군을 수습하고 재건하는 이순신이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병이 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실제로 이순신은 곽란 증세로 며칠 앓아눕기까지 하였다.
8월 25일에는 훔친 소를 끌고 가던 백성들이 “왜적이 왔다.”라고 말을 하고 다니자 이순신은 이들의 목을 벤다. 다음날에는 척후군관 임준영이 적의 진격상황을 보고하니, 이순신이 전날 백성들의 목을 벤 것이 무리하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죽은 백설들이야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이순신이나 다른 군관에게 적군의 동태를 정식으로 제보한 것도 아니고, 다른 백성들 사이에서 크게 떠벌렸다. 이것이 사실을 말한 것이라 해도, 수군에게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적군이 왔다는 소문이 퍼지는 건 민심이 흉흉해지고 군사들 사기에도 도움이 안 되기에, 경계해야 하는 일이었으며, 그랬기에 이순신은 그 백성들을 처형시킨 것이다. 그래도 곤장도 있지만 사형은 심하다 할 수도 있지만, 이순신으로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26일에는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한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후임인 김억추가 왔다. 한산도도 불탄 시기, 남은 수군이 주둔하는 지역이 관할인 전라우수사라도 좀 믿음직한 인물을 보내주었더라면 좋을 텐데, 김억추는 이순신이 겨우 만호감이나 될 가라며 할 정도로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인물이었다.
28일에는 적선 8척이 나타나는 일이 있었다. 적의 출현에 조선 수군은 당황하고 겁을 먹었으나, 적선을 쫓아가니 도망갔다. 그 후 수군은 벽파진으로 주둔지를 옮겼지만, 사정이 나아진 건 없었다.
9월 2일 새벽에는 경상우수사 배설이 도망갔다. 이후 전쟁이 끝난 후까지 수차례에 걸쳐 배설을 잡아야한다는 논의가 조정에 있다가, 1599년에 이르러서야 도원수 권율의 군사들에게 붙잡혀서 처형된다. 배설의 처형 이유는 흔히 탈영으로 알려져 있지만, 1598년의 <선조실록>에는 ‘배설(裵楔)이 지난 가을에 나주에서 도망하여 지금은 충청도에 와 있는데, 현몽(玄夢)과 합세하여 무뢰배들을 많이 모으고 있다. 그의 행적이 이미 드러났지만 사람들이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감히 지적하여 말하지 못하고 있다.’ 라는 소문에 대한 보고가 있다는 점을 본다면, 오히려 역모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정작 그 누구보다도 역심을 품을만한 이순신은 묵묵히 자기 일에 몰두할 뿐이었다. 하지만 배도 없고, 그나마 있는 배도 움직일 사람이 없고, 조정은 아무런 지원도 안 해주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지원이 다 뭔가? 선조는 오히려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으로 편입하여 싸우라는 어명을 내린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자면 수군은 이미 전력이 있으나 마나 하다. 하지만 바다를 포기한다는 건 적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고, 그래서 이순신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그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말을 남기게 되는 장계를 올리면서 수군 철폐령을 거부한다. 이는 오로지 나라를 위한 결단이었다.
그러는 동안 전라도를 점령한 일본군은 충청도까지 북상하면서 세자와 내전 등이 먼저 피난을 가고, 조정도 피난여부를 논의를 한다. 한양의 백성들도 피난 행렬이 이어지는 등, 조선은 임진년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에 봉착하였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에게도 큰 고비가 다가오고 있었다. 남원성 전투에 참가한 일본 수군이 다시 바다로 돌아오면서 임진년에 이루지 못한 서해진출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다가오는 것이었다. 일본 수군의 목적은 서해로 북상하여 충청도에 있는 육군에게 보급을 하고 서해안으로 추가적으로 육군을 상륙시키는 것이다. 이 계획이 달성되면 일본군은 무리 없이 북상이 가능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는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조선의 운명을 좌우할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 by | 2009/11/01 00:08 | 이순신/임진왜란 | 트랙백(1) | 덧글(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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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臣尙有十二 隻
臣李 自壬辰至于五六年間 賊不敢直突於兩湖者 以舟師之扼基路也 신이 자임진지우오육년간 적불감직돌어양호자 이주사지액기로야 今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則 猶可爲也 금신전선상유십이 출사력거전칙 유가위야 今若全廢舟師則 是賊之所以爲幸而 由湖右達於漢水 此臣乏所恐也 금약전폐주사칙 시적지소이위행이 유호우달어한수 차신핍소공야 戰船雖寡 微臣不死則 賊不敢侮我矣 전선수과 미신불사칙 적불감모아의 李舜臣 덧. 어떻게 보면 "오빠 한번 ......more
원균 옹호론자들은 원균이 칠천량에서 패한게 적이 너무 많아서 라는데......그럼, 이순신은 명량에서 적이 많아서 이겼다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원균은 될 걸 있는대로 말아먹었고, 이순신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놓았는데..............이것만 봐도 두사람 얘기는 끝나는 거나 다름없는데도 원균을 옹호하는 건 뭔지.........
"그래도 아무리 이순신이라해도 고작 12척으로 무얼...."라고 자기 위안을 했겠지요.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칠천량 패해전후 살아남은 장수들 대부분이 소식적 장군님 밑에서 장군님의 충실한 손발이 돼어 전쟁을 이끌어 갔던 장수들이였습니다. 한마디로 능력치들이 A,B,C급은 돼는 인사 들이였죠. 하지만? 이들이 명량대첩 초반 어떻게 했죠? 다들 먼산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한마디로. 장군님은 애초에 아무도 믿을수가 없었던 거였죠.
애초 난중일기를 보면 장군님께서 안까는 부하 장수나 동료 장수들이 없었죠. 단지 특이한건 자기 자신에대해서도 냉정하고 비평할줄 알았으며 매우 겸손했다는 것일까요?ㄲㄲ
후우.......정말이지 원....
진짜 세계 전쟁사에 이런분이 과연 또 있을까요?...ㅠ.ㅠ
정말 무슨 할 말이 있었겠습니까...
어쨌든 다음엔 희대의 캐사기 전투가 나오는군요.
그만큼 몸도 마음도 고생이 심하셨을텐데.....흑ㅠ
p.s. 어렸을땐 왜놈이 싫었는데 지금은 선조와 원균이 왜놈보다 더 싫다는-_-
재미를 위한 약간의 덧붙임 정도라면 모를까
뭐 그리 각색을 요란하게 하는걸까요.
'사소한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명품과 패품을 만드는 차이라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닐겁니다.
그리고 그 "신상유십이척"은 거의 "오빠 믿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원문 올려놓은게 있어서 트랙백 할게요.
진짜 진실한 소리는 이순신이 전사하고 나서 쓴 제문에서 '나는 그대를 버렸지만 그대는 나를 버리지 않았도다'일거에요.....
선조 놈은 저런 교서를 써주고 막상 명량에서 이기니까 또 미워하고, 정말 염치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그리고 "신에게는 아직 12척이 있사옵니다."로 시작되는 장계... 번역본을 접할 때마다 등에서 전율이 쫙 흐릅니다.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장계죠....;;
[일리아드]에서는 영웅들을 빛내기 위해 호메로스의 상상이 필요했는데 이순신에게는 그게 필요 없었어요. 역사 자체만으로도 장엄한 서사시에요.^^
대략 이러한 기분으로 교지를 초했을 선조
"이순신이 무슨 명량해전에서 133척 모두 궤멸시켜??
60척인가 궤멸(??용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네요)시켰는데 뭐가 대단해??
역시 이순신은 거품이다"
분명한건 몇 척을 궤멸시켰던
10배가 넘는 적군을 무찔렀는데
그게 뭐가 대단하지 않다는건지.
게다가 60척이면 5배나 되는 배를 침몰시켰다는건데
무슨 스타크래프트처럼 핵 쏜 것도 아니고...개나 소나 5배 이상의 배를 침몰시키나 봅니다.ㅋㅋ
뉴타입에 제로시스템에 제로의 영역에 킹오브하트에 최강의 코디네이터에 건담마이스터 이 모든것을 다 보유하신 분이신 겝니다!!!!
이번 팀 과제에서 '이순신과 원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 글들이 정말 좋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고 원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네요.
한 가지 걱정인건 원균 동정론자들이 너무 많다는거? 정도네요.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원균 덕분에 하삼도(그나마 충청도는 약함)가 아작이나고 백성들이 어륙이 되었죠.
원균 때문에 정유재란이 발발했는데 동정할꺼리가 뭐가 있겠습니까
혼혈아라는 특징 외에도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천고의 보검 '철쇄아'가 있었는데, 그는 이를 통해 '바람의 상처'라는 공격 기술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 기술은 엄청난 바람을 일으켜 적진을 휩쓸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위력이 엄청난 기술이고 그 비밀을 파헤치려는 자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한터라 조선에 투항하고도 조용히 평범한 무관으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달하자, 몸이 않좋았던 통제사 이순신을 명량에서 보필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필살기인 '바람의 상처'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백척에 달하는 왜선들은 한순간에 몰살 당하게 되었고.....................
(후다닥!!!!!)
랄까나?ㄲㄲㄲ
아참 그전에 중요한 명량대첩 전의 전초전또한 같이 다루어 주실꺼죠?
아마 장군님께서 뼈빠지게 똥줄타며 남쪽으로 경상우수영이 있는 명량으로 가면서 열심히 군량,군비,무기,배,군사를 모으는 동안 일본은 절대로 조선 수군 통제사에 다시 장군님이 재 임명됐다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다만 장군님의 귀환을 두려워 하다가도 "그래도 아무리 날고 난다는 이순신이라 해도 제까짓게 배도,군사도 없는데 어쩌겠어?안그래?" 라는 자만에 빠져있겠고요. 하지만!!! 명량 대첩전 장군님의 다시 그 가공할 포스(?)로 인해 명량대첩전 약간의 전투로 인하여 일본군은 다시 긴장줄 타기 시작했겠지요.ㄲㄲㄲㄲ
자아!!! 드디어!!! 왕의 귀환. 아니 진정한 戰神의 귀환이 오는 겁니다아!!!!!!!!!!!!!!!!!!!!
hyjoon/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수준이니까요.
BeN_M/하지만 이순신 꺼였죠.
크악크악/충분한 건 이순신 뿐입니다.
역사짱/그리고 그걸 해내시다니...
反영웅/하지만 선조는 그런걸 방지하는 데는 머리를 잘 써서 말이죠.
Ezdragon/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전투죠.
나그네/적에게는 든든한 분들이라...
INtothe水/그리고 사실보다 퇴보하죠.
rosencross/그 차이가 사람 하나지만 워낙 큰 차이라 말이죠.
명랑이/믿을 게 이순신 뿐이긴 했죠.
네비아찌/그러게 말입니다.
화성거주민/정말 엄청난 분입니다.
셰이크/그래도 그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asianote/정말 유사 이래 따를 사람엇는 명장입니다.
ㅎㅎㅎ/실제 전과는 공식보고보다도 더 큰 거 같습니다. 오히려 축소보고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아롱범/인간의 일이라고 하기엔 엄청난 일이었죠.
도움받은이/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재팔/반요(퍽)
그렇죠? 그런거죠. 진짜 머리가 좋다니까요 하여튼 이놈의 균은 다른 균이랑은 다르게 말입니다.ㄲㄲㄲ
그야 말로 "하늘이 내린 사람" 무슨 묘사가 필요하고 수사가 필요하며 말이 필요하랴.
- 역시 원장군님은 다른 의미로 월드클래스급 장수군요(...)
참으로 이시기는 장군께는 외롭고 또 외로운 시기였겠네요...(나라의 임금도 배신때리는데...)
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오히려 더욱더 열심히 수군재건에 힘썼을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명랑이라.... "이곳에 들어온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문구가 문득 떠오릅니다...
을파소님 계속 건필해 주시길...
원균은 버러우나 해야지.
zert/그야말로 신인이십니다.
少雪緣/치트대전입니다.
Luthien/어쩌면 새로운 기술을 더 습득했을지도 모르죠.(야)
미고자라드/머리 좀 건설적으로 썼으면 좋았을 겁니다.
뭐지../곧 올라오겠죠.(...)
paro1923/대반전이지요.
소시민/그런 의미에서는 대단하죠.
백합과수국/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전토였죠.
삼천포/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blue ribbon/원균은 더이상...
어릿광대/신회입니다.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공연한 사실 적시)으로 고소할지도 모르지요.
아니 선조는 이순신만 믿고 왜란 초반에 팍팍 밀어줬어도 중간은 갔을텐데 이뭐병.
하늘나늬/원균을 버리면 중간, 이순신만 믿으면 대박이었을 겁니다.
이순신 없었으면 지금쯤은 대마도와 부산에 대교나 지하터널 만들어졌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