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30일
여걸 천추태후?
서점에서 한국사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고려사 500년 의문과 진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대제국을 꿈꾼 여걸 천추태후' 떡밥이 담긴 책이죠.
해서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후 인터넷에서 다른 비슷한 글도 찾아보았죠.
내용은 요약하자면 '성종은 유학자들에게 세뇌당한 왕이라서 황제국의 체제를 제후국으로 낮추고, 팔괸회도 없애고, 유교이념에만 충실했는데...천추태후 아니었음 우린 중국인 됐을지도.'입니다.
자, 그럼 천추태후는 고려의 기상을 회복하고자 무슨 일을 했는가?
성종이 없앤 팔관회와 연등회를 복구하였습니다. 목종을 데리고 서경에 자주 행차하였답니다.
.....응? 대고려 기상을 보인 여걸의 기개는 ? 불교행사 복구가 다야? 불교가 전래되면서 토속신앙이 많이 결합됐고 팔관회 연등회에 반영되었으니 불교행사 복구는 자주정신의 발로다, 라던데, 아무리 토속신앙이 더해져도 결국 '불교행사'입니다. 그정도는 불교를 좋아하면 할 수 있는 일이지, 그걸로 '유학이 아니니 자주정신이 투철하다.'라고 결론내리면 난감하죠. 황제국의 체제를 찾았다는 것도 이 책에서도 천추태후 때 이루었다, 도 아니고 '목종과 몇대의 후계자를 거치면서'입니다.
서경에 자주 행차하였다, 예 목종은 자주 행차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체는 '천추태후'가 아니라 '목종'으로 나옵니다. 천추태후가 실권자였는데 신라계 유학자들이 삭제해서 그럴거라고 하고 싶겠죠?
그럼 다른 점을 봅시다. 자주성을 강화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할려면 군사력을 정비해야죠. 그런데 책에서는 이런 언급은 없더군요. 그럼 목종 때 군사력 정비는어땠을까요?
목종 대 성을 정비한 기록은 잘 나옵니다. 그리고 목종 폐위 직후의 2차 여요전쟁 때 보면 강조도 초반에는 잘 싸우다가 적군의 야습으로 패배, 즉 경계소홀의 문제는 따질 수 있어도 군사력이 열세했다는 문제는 따질 수 없습니다. 강조 패전 후에도 양규가 개경이 함락당한 상황에서도 그야말로 대활약을 펼쳤고, 나중에 원조 무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죽는 김훈 최질도 이 때 공을 세웠던 걸 보면 군사력 정비는 목종 때도 제대로, 아주 충실히 이루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 이게 천추태후의 공이냐? 실제 역사기록을 봐도, 천추태후 여걸론에서 말하는 걸 봐도 그녀는 강조의 정변에 별다른 저항을 못하고 당합니다. 그리고 강조는 물론이고, 양규, 김훈, 최질이 천추태후 라인이었으면 제일 먼저 숙청당할텐데 그건 아니고, 천추태후가 주도적으로 서경에 자주 행차하였으면 서경에 자기 세력이 있어야하는데, 서북면 순검사(西北面巡檢使) 강조가 정변을 일을킬 때 보면 그런 흔적도 없고...
그리고 목종 2년에 송나라로 간 사신은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의 풍속을 사모하므로 거란에게 위협당하여 제재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 중국 빠돌이 성종이 죽고 자주주의자 천추태후가 집권하였는데, 사신이 저렇게 말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어딜 봐서 그녀가 자주적 개혁을 꿈군 여걸이라는 거죠? 그저 애인 끌어들이고 권력휘두르다가 아들까지 몰락시킨 사람일 뿐인걸요. 그나마 서태후처럼 국방예산 빼돌려 향락을 할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만...
바로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대제국을 꿈꾼 여걸 천추태후' 떡밥이 담긴 책이죠.
해서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후 인터넷에서 다른 비슷한 글도 찾아보았죠.
내용은 요약하자면 '성종은 유학자들에게 세뇌당한 왕이라서 황제국의 체제를 제후국으로 낮추고, 팔괸회도 없애고, 유교이념에만 충실했는데...천추태후 아니었음 우린 중국인 됐을지도.'입니다.
자, 그럼 천추태후는 고려의 기상을 회복하고자 무슨 일을 했는가?
성종이 없앤 팔관회와 연등회를 복구하였습니다. 목종을 데리고 서경에 자주 행차하였답니다.
.....응? 대고려 기상을 보인 여걸의 기개는 ? 불교행사 복구가 다야? 불교가 전래되면서 토속신앙이 많이 결합됐고 팔관회 연등회에 반영되었으니 불교행사 복구는 자주정신의 발로다, 라던데, 아무리 토속신앙이 더해져도 결국 '불교행사'입니다. 그정도는 불교를 좋아하면 할 수 있는 일이지, 그걸로 '유학이 아니니 자주정신이 투철하다.'라고 결론내리면 난감하죠. 황제국의 체제를 찾았다는 것도 이 책에서도 천추태후 때 이루었다, 도 아니고 '목종과 몇대의 후계자를 거치면서'입니다.
서경에 자주 행차하였다, 예 목종은 자주 행차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체는 '천추태후'가 아니라 '목종'으로 나옵니다. 천추태후가 실권자였는데 신라계 유학자들이 삭제해서 그럴거라고 하고 싶겠죠?
그럼 다른 점을 봅시다. 자주성을 강화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할려면 군사력을 정비해야죠. 그런데 책에서는 이런 언급은 없더군요. 그럼 목종 때 군사력 정비는어땠을까요?
목종 대 성을 정비한 기록은 잘 나옵니다. 그리고 목종 폐위 직후의 2차 여요전쟁 때 보면 강조도 초반에는 잘 싸우다가 적군의 야습으로 패배, 즉 경계소홀의 문제는 따질 수 있어도 군사력이 열세했다는 문제는 따질 수 없습니다. 강조 패전 후에도 양규가 개경이 함락당한 상황에서도 그야말로 대활약을 펼쳤고, 나중에 원조 무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죽는 김훈 최질도 이 때 공을 세웠던 걸 보면 군사력 정비는 목종 때도 제대로, 아주 충실히 이루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 이게 천추태후의 공이냐? 실제 역사기록을 봐도, 천추태후 여걸론에서 말하는 걸 봐도 그녀는 강조의 정변에 별다른 저항을 못하고 당합니다. 그리고 강조는 물론이고, 양규, 김훈, 최질이 천추태후 라인이었으면 제일 먼저 숙청당할텐데 그건 아니고, 천추태후가 주도적으로 서경에 자주 행차하였으면 서경에 자기 세력이 있어야하는데, 서북면 순검사(西北面巡檢使) 강조가 정변을 일을킬 때 보면 그런 흔적도 없고...
그리고 목종 2년에 송나라로 간 사신은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의 풍속을 사모하므로 거란에게 위협당하여 제재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 중국 빠돌이 성종이 죽고 자주주의자 천추태후가 집권하였는데, 사신이 저렇게 말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어딜 봐서 그녀가 자주적 개혁을 꿈군 여걸이라는 거죠? 그저 애인 끌어들이고 권력휘두르다가 아들까지 몰락시킨 사람일 뿐인걸요. 그나마 서태후처럼 국방예산 빼돌려 향락을 할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만...
# by | 2008/06/30 23:52 | 사극에 대한 잡상들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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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시대'가 황룡 어쩌구 하는 삽짓만 없으면 정말 저런 사극의 좋은 전형을 보여주는데...
특정인물을 타이틀로 잡으면, 결국 그 인물 미화를 위해서라도 왜곡이 필수입니다.
여담이지만 결국 이정현 하차했더군요. 건강 때문이라지만 결국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버로우. 윤선주가 캐릭터 말아먹은 게 한둘이라야. -.-;
이거 천추태후 사극 잘될지 의문이지요;;
그러고보니 아는 네이버 블로그 지인분과 네이트온 메신저로 이정현 하차했다는 애길 들었지요..
이거 누구를 캐스팅할지는 모르겠지만.. 잘됐으면 좋겠네요...
(매주 주말마다 잘보고있긴하는데 사실 이런쪽을 생각한다는건 진작에 포기하고 인물들 심리나 성격 이런거 생각하면서 보고있지요;;)
(그건 그렇고, 정난정이란 이름을 볼 때마다 집안 내 조상님이 생각나요. )
그리고 이건 사소한 건데 강조가 당한 건 야습 때문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강조의 정변은,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많이 다르네요. 일제시대 학자들은 김치양이 난을 일으킨 것이라고 보고, 최근의 김창현, 김갑동 교수님은 신라계가 쿠데타를 성공 시킨 것으로 보는 군요..그 사이 강조의 역할은 사실 기술된 역사로는 너무 이해되지 않은 면이 많아서, 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대부분 역사가 아닌 소설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드라마에서는 어떤 관점을 가질지 궁금하군요..
천추태후= 여걸, 성종= 찌질이 유학자, 이런 도식의 드라마라면 정말 한심할 거 같구요.. 단지 성종이 현대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무작정 찬양해야 할 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중국의 문물을 받아 들여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업적도 있지만, 1차 전쟁 때, 성종은 서경을 비우고 곡식까지 버리라고 할 정도로 문제도 있었네요...서희가 아니엇다면 성종은 아마 할지론을 받아 들였을 거 같습니다..천추태후는 이때 뭐 햇는지 역사에 안 나오니 알 도리가 없구요..드라마니까 전쟁에 참여할라나?
고려의 군사력은 1차 전쟁 후 성종 때부터 꾸준히 향상되어, 목종, 현종 때까지 발전된 거 같습니다. 1차 때 약 6만명으로 추산되는 거란군에게 당황해 할지론까지 나온 판이었는데, 2차 전쟁 때는 30만 고려군이 등장하니까요..
주인소가 송나라에 찾아간 것은 사실 좀 생뚱맞네요..이미 1차 전쟁 후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는데, 이는 목종, 현종 때도 마찬가지지요..천추태후가 고려를 황제국으로 선포하다, 뭐 이건 좀 심한 뻥인 거 같구요..성종이 스스로 낮춘 제후국의 위치를 그 전 경종 때 정도의 대내적인 황제국 위치로 복원 시킨 게 아닌가 합니다..물론 대외적으로는 그 전이나 후이나, 중국 혹은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는 제후국이엇죠..아무튼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며 송나라와는 관계가 끊어진 때인데, 주인소가 송에 간 배경이 아리까리하네요..뭐, 드라마에서는 광해군의 실리외교처럼 치장할 수도 있겠군요..
아, 소개가 늦었네요..지난 번에 쩝이라는 이름으로 인사 드렷던 아낙입니다..
동성애도 그렇습니다. 사서를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저는 [고려사]에 동성애자라고 기록된 국왕들이 '누명'을 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종이나 공민왕 같이 안 좋은 최후를 맞이한 국왕들의 동성애가 특히 부각되더군요. 충선왕의 동성애는 전~혀 부각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성종에 대해서 변명을 하자면 (내가 왜? -_-) 1차 침입 때 고려측은 거란군이 얼마나 병력을 동원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6만명이란 숫자는 2003년에서야 안주섭씨가 거의 처음으로 추산한 숫자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면 어떡하지? -_-;;;;) 성종이 좀 당황할 만 하죠. -_-
목종의 나이 이미 18세나 되었으나, 태후가 섭정하고 천추전에 거처했으므로 세상에서는 그를 천추태후라 불렀다...< 하략>...
물론 그 이후 계속 천추태후가 섭정했는지, 아니면 목종이 친정을 했는지는 더 이상 사료가 없어서 알수 없으나, 18세면 이미 장성했는데 섭정을 하는 게 이상하긴 해요...
동성애 부분은, 현종을 옹립한 사람들이 누명을 씌울 수도 있겠으나, 그 역시 정치적인 추측일 뿐이니, 사실은 누구도 알 수가 없겠지요..
성종은 국가 제도를 정비한 부분에서 충분히 그 시호를 받을만한 왕이라 생각됩니다..하지만 조서를 교서로 고치는 것이나, 팔관회를 폐지한 것이나, 거란 1차 전쟁의 때의 첫 대응이나(성종이 80만이라는 거란의 뻥에 당황했을 테지만..)..등에서, 후대인들의 눈에 보기에는 너무 내치에만 역량을 발휘하지 않앗나 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천추태후가 상대적으로 대단히 자주적이고, 황제국의 위상을 찾았다고 하는 것도 너무 심한 시각인 것 같습니다..아마도 최근의 여성 영웅 만들기 같은 느낌이 드네요..우리 역사에도 수동적이지만은 않은 진취적인 여성이 있었다.. 뭐 이런 관점이겠지요..여성인 저로서는 사실여부를 떠나, 천추 태후가 정말로 한 시대를 호령했던 여걸이었다면..하는 바람도 조금은 있답니다..
정호찬/ 벩멸의 초희라는 선례도 있죠.
어릿광대/여인천하도 시청률은 높았습니다.
제갈교/고생이 많은 사람 많죠.
自重自愛/ 아, 야습은 아니었네요. 왜 제가 야습으로 기억하고 있었을까요?ㅡㅡ;
解明/ 그쪽도 우리 민족이라고 미화되는 웃기는 경우죠.
답설무흔/ 물론 서경행차가 당연히 천추태후의 작품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거 치고 서경에 자기세력권에 있었던 거 같지만은 않다라는 겁니다. 목종이 꼭두각시이기만 했는가는 자중자애님 블로그에 정리가 되어 있고요.
물론 성종의 경우는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활용하는 건 당시로서는 당연하지만, 너무 거기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은 가능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중국빠 수준으로 깎아내리는 건 너무 지나치죠.
당찬 여성을 주인공으로 사극을 만든다면, 꼭 정치에 한정짓지만 않으면 차라리 김만덕이 주인공으로 하면 더 나을 거 같습니다.
우연히 제목 보고 흘러 들어와서 이글루(?)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사극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특히 고려시대는 학교 다닐 때 졸업 논문 개발새발 쓰면서..)..오늘
자세히 보니, 여기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사극에 대해서 부정적인 분들이 많으시네요..
사실 역사적인 인물을 드라마로 다루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 같아요..
요즘 세종 대왕을 자주 보는 편인데, 좋은 배우들의 열연과 깊이 있는 대사에도 불구하고..너무도
역사적인 사실에서 벗어나 버린 설정 때문에, 드라마가 많이 비판을 받고 있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드라마를 사료 그대로 묘사하면, 다큐멘터리는 될 지언정 드라마적인 감동이나 재미는 없겟지
요..
허구와 사실을 어떻게 잘 버무려 요리하는가에 따라, 드라마의 품격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천추태후는..일단 사료에는 나라를 망친 요부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은데요..
드라마에서 다른 시각으로 조명해 보는 것 자체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선왕조실록에 기술된 광해군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조명하는 것 처럼요..게다가 왠지 쎄보이는 " 태
후"에다가, 여성이니 드라마 제작진이 많이 끌렸을 거 같네요..
을파소님이 말씀하신 김만덕은, 당찬 여성으로서의 소재는 적합하지만..아무래도 대하 드라마 타이틀에
는 조금 작아 보인다는 느낌이 있어요..그냥 대장금처럼 김만덕을 다룬다면 그건 괜찮을 거 같고요..
그리고 천추태후가 서경을 중시했을 개연성은 있는 거 같아요..그녀의 친정인 황주(광종비인 대목황후
고향이 기도)가 개경보다는 서경에 가까웠으니까요.. 천추태후가 강조의 정변 때 너무 쉽게 실각하는
걸 보면, 군사력을 키웠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지만..2차 전쟁 때 군사가 30만으로 늘어난 걸 보면,
분명히 국방에도 힘을 쏟은 것 같아요..이건 순전히 하나의 추측입니다만, 천추태후는 동성애자인
이상한(?) 아들, 목종을 보다 못해, 김치양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옹립하려다가, 강조와 손 잡은
신라계 신료들의 쿠데타에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국방에 관한 부분을 강조에게 맡겼는데
그에게 배신당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구요..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중 하나가, 강조가 현종을 옹립
하면서, 목종도 죽이고, 김치양도 죽이는데..천추태후는 죽이지를 않거든요..왕까지 죽이는데 정작 패륜
을 저지른 태후는 왜 죽이지 않았을까..그건 강조와 천추태후가 훨씬 더 강한 애증의 사슬에 묶여 있는
건 아닌가..에고, 그런 한심한 생각이 드네요..(그러고 보니, 드라마 천추태후 기사에는, 강조가 천추
태후의 호위무사 출신 비슷하게 나오네요..김치양과 삼각관계? 이건 좀 안습인데..말은 되나? 음..)
아무튼 그 강조의 정변이 굉장히 수수께끼일 것 같아요..
그리고 드라마를 한다면, 2차 3차 거란 전쟁때의 천추태후가 정말 설 곳이 없을 거 같아요..이미 실각했
는데 뭘 하나..? 그래서 후반부는 현종이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드네요..
아무튼 세종대왕처럼 너무 사료를 무시하며 막 달리지만 않는다면...천추태후,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싶네요..사실 사료가 부족하다는 게, 천추태후 제작진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겠네요.
세종대왕은 작가 마음대로 움직이기엔 너무 많은 사료가 옭아매고 있었으니..
* 자중자애님 블로그는 잘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실수는 저는 밥 먹듯이 해요..(저도 잘난 척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죄송해요..)
목종시대에도 국방력 강화는 충실히 이루어진 건 확실한데, 그 주체가 천추태후인지는 의문입니다. 강조가 천추태후를 살린 건 자중자애님 말씀처럼 목종을 죽인 이상 그녀는 재기 가능성이 없고, 그래도 왕건의 손녀니 부담스럽기도 했을 겁니다.
사극이 역사책에는 없는 강감찬의 목종시대 행적을 상상하는 정도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있는 사료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저나 여기 오시는 분들이 다들 비판적입니다.
고구려계 : 신라계의 대립이니 중국화를 피하려고 불교를 숭상했다느니 하는건...다 후세 사가들의 추측에 불과한건데...
머...대왕세종이 워낙 죽쓰고 있으니...후속작은 좀 신나게 칼쌈 많이하는거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들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오늘 채시라씨 촬영중 부상이 꽤나 심각한것 같다는 보도(전치8주)가 나왔는데...제작진이...하늘의 뜻 쯤으로 알고 자중하면 좋으련만 ^^;;...혹시...고려시대에 살던 조상들이...후손들의 역사왜곡이 너무 심한것을 보고 노하여 이런 벌을 내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요 ^^;;
대체 무슨 전투? 천추태후는 집권기에 전쟁을 했던가요?
걍 죽어라 그게 딱이다 ㅄ 조선유교빠색희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