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방명록 방명록

2014년 방명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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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에 관해 몇가지

1. 참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사망자가 발생하고, 다수의 고등학생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아직도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태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몸의 부상은 심하지 않거나 나을지라도 마음의 상처는 아주 오래, 어쩌면 평생 가지고 살 것이라는 점에서 시간이 지나면 세상사람들의 기억에선 희미해지겠지만 당사자들에겐 결코 아닐 겁니다. 그래도 그 상처가 최소한 줄어들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2.  이번에도 분노를 자아내는 것들은 참 많습니다. 승객의 탈출을 지도해야할 선장과 항해사란 것들이 제일 먼저 탈출하는 것이며, 네이버가 공지까지 달 정도로 악플달기에 심취하는 색히들, 그것도 지역감정으로 달지를 않나, 되도 안 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놈들이 있질 않나. 거기에 악플러 수준인 것들이 기자랍시고 기레기 인증을 하는 것들까지. 구조된 학생에게 사망자에 대해 물은 JTBC는 그나마 보도부문 사장인 손석희가 사과라도 했다지만, 6세 여아에게 부모에 대해 물은 SBS나 기자가 죽은 학생 책상 뒤진 뉴시스는 기사만 슬쩍 삭제하면 되는 줄 아는지 입에 발린 사과조차 없군요. 그런 것들이 알 권리니 언론의 자유니 하겠지만, 그러라고 주어진 언론의 자유가 아니죠.

3. 그래도 선장인 제일 먼저 도망쳤지만, 이런 상황의 경험은 일천할텐데도 승객을 먼저 챙기다가 돌아가신 여승무원이나 학생들을 먼저 탈출시키고 빠져나온 승객, 노인들을 먼저 보내려한 학생들, 그리고 구조를 위해 출동하여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 던져가며 나선 해군과 해경이나 조업을 포기하고 기꺼이 달려간 어선 등을 보면 한 쪽엔 무개념이 판치지만 그래도 이래서 세상의 균형이 맞추어지나 봅니다. 

하지만 근방의 배란 배는 모두 달려간 만큼 초반에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으로 나왔더라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선실에 있으러 해놓고 달아난 선장 등 직책 높은 선원들의 해악엔 정말 화가 납니다.

4. 가족이 느끼는 분노와 정부에 대한 불신도 큰 거 같습니다. 초반 구조자 집계 오류로 우왕좌왕하고, 가족들에게 정보제공도 미진하고, 여타 행정적 조치가 부족한 등 땅 위에서 일처리하는 사람들은 욕 먹을 부분이 많긴 했습니다. 그게 일부러 그런 것이야 아니겠지만요.

다만 해군 해경의 구조대에게까지 그런 불신과 분노는 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귀찮아서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누구보다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주호 준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분들은 용감하고 사명감 있지만 절대 슈퍼맨은 아닙니다. 구조도 중요하지만 구조대를 무작정 위험에 처하게 할수만도 없으니 말이죠. 

그리고 가족 다음으로 절박한 심정일 게 그 분들일 겁니다. 물론 가족들은 현재 절박한 심정이라 누구라도 원망해야 할 심리긴 하지만, 제3자 입장이라면 가족 반응만 보고 덩잘아 욕하지 말고, 가족들의 심정은 이해하되 구조대가 쉽게 나서지 못하는 상황도 생각해야할 겁니다.

5. 해외에서도 실종자의 생환을 기도하고 사망자에게 애도를 표하는데, 국내에서 추잡한 짓을 하지 맙시다. 억지로 함께 기도하라고 할 순 없죠. 하지만 함께 기도할 생각이 없다면 적어도 입이라도 다물고 있는 게 좋습니다. 악플이나 음모론이나 들이미는 건 정말 최악입니다.

고인에겐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생환자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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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정도전을 본 후 사극에 대한 잡상들

지난 주말, 특히 토요일의 위화도 회군과 개경 전투는 정말이지 사극 역사상 솝꼽힐 훌륭한 전투 장면이었습니다. 병사들도 장군이 칼 휘두르면 우수수 쓰러지는 잡몹이 아니라 제 역할을 하며 잘 싸우는 것에서 핼리캠까지 동원해 시가전 장면을 잘 담아낸 것은 정말 훌륭한 연출이었습니다. 황산대첩 때도 그렇고 이번 개경전투도 그렇고, 이 드라마가 조사의의 난은 다루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런 장면을 보니 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 이 제작진으로 임진왜란 사극 한 번 만들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거 같습니다. 불멸의 이순신 같은 거 말고 전쟁 전체를 조망하는 것으로요. 그래도 이순신의 비중은 크겠지만....이렇게 쌓은 노하우를 본격 전쟁사극으로 풀면 정말 볼만할 거 같은데요.

물론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선 먼저 해결할 과제가 있습니다.

시간과 예산, 그것은 만고불변의 과제


<정도전>이 이런 훌륭한 전투를 연출할 수 있었던 건 제작진이 그만큼 성의를 들인 것이기도 하지만, 전쟁사극이 아닌 정치사극에서 전투 장면으 중간에 꼭 필요해 들어가다 보니 CG 등 전투 장면에 필요한 준비할 시간에도 여유가 있었고, 예산도 어느 정도 몰아주는 게 가능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소재로 전쟁사극을 만들면 초반부는 전쟁 전 상황으로 다뤄도 개전 후로는 많게는 1주에 한 번, 적게 잡아도 2~3주에 한 번은 전투 장면이 들어 갈테니(계사년 지나면 약간 여유가 생기겠지만) 지금만한 여유는 없을 겁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상당 부분 사전제작을 하던가, CG팀을 3~4팀 정도 돌려가며 갈아 넣어야 할테니, 시간이나 예산 중 하나라도 넉넉히 책정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전 제 꿈이 가까운 시일안에 실현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도전으로 KBS 대하드라마가 제대로 부활했으니, 이 기세 잘 이어가서 임진왜란이 아니라도 좋은 작품으로 이어가길 바랍니다. 지금은 수신료 정상화하자는 자막을 봐도 끄덕거리는데, 또 천추태후 같은 거 만들면 "수신료 돌려줘. 이놈들아!"라고 외치고 싶어질 겁니다.

덧: 임진왜란 소재든 광해군이나 그 시대 다른 문신이 주인공이든 사극을 만들면 주요인물일 선조도 이번에 이인임 캐릭터를 본받아 잘 표현해주면 더 굿. 선조를 연기할 배우는 명민함과 찌질함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므로 상당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를 캐스팅해야 합니다. 만들게 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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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전술에 대한 오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이순신/임진왜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당파전술을 했다는 오해, 그것도 원균의 주전술이었다는 오해에 대해선 몇 년 전 포스팅을 한 바가 있다.  (해당 포스팅)

자, 그럼 이젠 이 의문을 풀어보자. 왜 당파 = 충돌이라는 오해가 생기고, 그것이 원균의 주전술이 되어버린 것일까?

충동전술이라는 개념으로 당파전술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1978년 최영희 당시 국사편찬위원장이 경향신문과 거북선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소개한 것이 발견된다. (링크) 이 기사에서 '설상가상으로 (거북선이) 부딪히면 적선이 깨집니다. 당파된다고 했더군요.'라 하여 이른바 '당파전술'이란 용어의 기원이 될 해석을 담아 말하였다.

'당파전법'이란 말은 나종우 원광대 사학과 교수사 1981년에 발표한 논문  <李舜臣 將軍의 戰略戰術>에서 나오는데, 여기선 '거북선의 당파전법'이라 하여 거북선이 적진에 돌진하여서 포를 쏘고 적선에 충돌하면서 격침을 시켰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로 조선과 일본의 배의 다른 구조로 조선 배가 더 튼튼하다는 등 흔히 당파전술이란 말에서 이야기하는 설명이 근거로 나오고 있다.

이순신에 대한 모든 논문을 확인한 것은 아니나 7,80년대 무렵 충돌전술이란 개념의 당파전술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시기에 당파전술은 거북선의 운용전술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기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북선이 충돌전술을 구사했다는 것은 어떻게 나온 이야기인가? <임진장초>에서 거북선이 첫 출전한 이후 이순신이 올린 장계를 보면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층루선 밑으로 직충(直衝)하여 용의 입으로 현자 철환을 치쏘게 하고 또 천․지자 총통과 대장군전을 쏘아 그 배를 당파하자'라 나오는데, 이은상, 조성도는 이를 '돌진하다', '근접하다'란 의미로 해석하였으나 후대의 연구가 정광수 등 일부에선 이를 오역이라 주장한다. 선대 연구자들이 적선에 돌진해 충돌하는 ramming이란 해군 전술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여 충돌을 의미한 '직충'을 '돌진하다'로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임진장초>의 내용 중에선 '층루선 밑으로 직충(直衝)하여 용의 입으로 현자 철환을 치쏘게 하고 또 천․지자 총통과 대장군전을 쏘아'라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직충을 충돌로 해석할 경우, 충돌을 하고 다시 포를 쏘았다는 해석이 되어 버린다. 이런 점을 들어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도 직충을 충돌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 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조선시대 '당파'란 단어의 용례를 찾아 해전만이 아닌 물리적인 파괴란 의미로 전반적으로 쓰였음을 보여 당파전술이란 단어의 허구성을 입증했듯이, '직충'이란 단어 역시 다른 용례를 본다면 확실히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主軍變作長蛇陣, 直衝其中, 客軍中分。【(중략) 衛將以下, 各以次傳應, 鼓行而迎, 進, 直衝客軍中衛, 貫徹陣後, 客軍中分爲二。】

<문종실록>에서 1451년(문종 1년) 6월 19일에 《신진법》을 완성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한 기사로 '직충'이란 단어가 들어간다. 위 한문의 국역은 아래와 같다.

주군(主軍)이 변하여 장사진(長蛇陣)을 지어서 그 가운데를 찌르면 객군이 중분(中分)된다.【(중략)위장 이하가 각각 차례로 전하고 응하여 고를 치며 행진하여 맞아 나아가 곧 바로 객군의 중위를 찔러 진(陣) 뒤로 꿰뚫어서, 객군의 중간이 갈라져 둘이 된다.】

여기서 '직충'은 '찌르다', '꿰뚫다'의 의미로 해석되어 있으나, 진을 이룬 병사들이 적군을 물리적으로 몸으로 부딪힐 리는 없고, 진형을 갖추어 적진 가운데로 돌진해 진형을 가른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거까지라면 '진형과 진형의 충돌'이란 의미로 볼 여지가 있으니 아직 다른 용례를 더 찾아보는 것이 좋다.

萬一天子徵兵我國, 則當摠率精兵, 直衝汝之部落, 旣無徵兵之詔, 與汝素無讎怨, 何忍加兵於汝乎?

이는 <중종실록>에서 1571년(중종 12년) 12월 24일의 기록으로 건주여진이 요동을 쳐들어갔을 때 "우리랑 싸우던 애들 활 잘 쏘고 말 잘타던 게 중국 같지 않던데 조선이 도와준 거 아님?"이라고 한 것에 답한 것인데, 국역은....

만일 천자가 우리 나라에 징병(徵兵)하였다면, 마땅히 정병(精兵)을 거느리고 가서 곧장 너희 부락을 공격하였을 것이나, 징병하는 조서도 없었고 또 너희와 본래 원한을 맺은 일이 없는데, 어찌 차마 너희를 공격하겠는가?

여기서 직충은 '곧바로 공격하다'의 의미로 쓰여 물리적인 충돌만 의미하진 않았다. 그럼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는 어떨까?

贊畫使李時發專委兩嶺之事, 而接連上流, 故亦以此意知委矣, 但賊勢如前日直衝驪州, 而其勢浩大, 則邊應星當收聚各灘之軍, 合力防守, 而江原之軍, 亦當添助協力, 然後可無蹉跌。

이는 <선조실록>에서 1596년(선조 29년) 12월 8일에 강변의 수비에 논하는 기록인데, 이 부분의 국역은....

다만 적의 형세가 만약 전일과 같이 여주로 바로 진격해 오고 그 세력이 방대하면, 변응성은 의당 각탄(各灘)에 파견된 군사를 모아 합력하여 방어하는 한편, 강원도에 있는 군사도 마땅히 첨가하여 협력해야만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도 '진격하다'란 의미로 번역하였는데, 진격의 목표 아군 진형이 아닌  여주란 지명이므로, 이는 목표에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진격'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런 용례와 <임진장초>에서 나온 거북선이 직충을 했다는 건 바로 뒤에 총통을 쏘았다는 내용이 이어지는 것등을 감안하면 여기서도 '충돌'이 아닌 '돌진하다'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은상, 조성도가 뭘 몰라서 직충을 오역한 게 아니라, 이게 오역이라고 ramming에 맞추어 생각하던 쪽이 오역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있지도 않은 당파전술이 원균의 주특기(풉)가 된 이유는?

원균옹호론을 담은 <원균을 위한 변명>에서 인용한 원균행장에서 원균이 임진왜란 첫 승전을 거두었다며(풉) 인용하는 내용에서도 '(원균이) 적선 10여척을 불사르고 노획하니(풉)'라거나, 옥포해전에 대해서도 '직진해 쳐들어가 적의 중앙을 무찔러 버리니'라거나 '불살라버린 전선이 백여 척이고(풉)'라는 등 충돌전술이라는 당파는 했다는 명시는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선 당파전술이 충돌전술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생긴 걸 은근슬쩍 '원균이 용감하니 당파전술했음'이라는 식으로 적어버렸고, 이러면서 원균의 주특기(풉)라는 걸로 생겨버린다.

여기에 1985년 방영한 조선왕조 5백년의 <임진왜란>에서 원균이 당파전법으로 적선을 쳐부수겟다고 다짐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관련기사 링크) 이로 보아 사극이 당파전술에 대한 오해와 이것이 원균이 했다는 오해를 확산시키는데 영향을 주었으리란 점도 짐작할 수 있다. 

당파가 충돌전술이라는 오해는 해석 오류 정도지만, 원균의 주특기라는 건 원균 억지로 띄우려고 해석오류인 사실을 어거지로 가져다 붙인 것 뿐. 원균행장기에 조차 박치기 했다는 근거는 없어 뵈는데, 원균을 위해 가져다 불일 게 그렇게 없나? 아, 앖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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