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방명록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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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2018.06.03 방송 이순신과 원균편 비판 이순신/임진왜란

2018년 6월 3일 일요일 KBS1의 <역사저널 그날>은 이순신과 원균을 주제로 방송했다.

일단 이순신을 폄하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순신의 영웅성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원균을 불운한 군인 정도로 설명하는 우를 범했다. 출연자 중 영화사 대표인 원동연이 있어 그런지 몰라도.

이순신 폄하 안 했다고 다가 아니다. 인간 이하의 인간을 나쁘지 않은 사람으로 설명하다니.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임진년 해전의 투톱 이순신과 원균

원균이 임진왜란 이전에는 신립, 이일과 함게 조선의 3대 명장으로 꼽혔다는 정체불명의 코멘트. 신립, 이일이야 임진왜란 이전이면 맞기야 하지만, 원균이? 

없다. 신립, 이일은 여진족을 대상으로 전공을 세워 그런 평가가 나왔는데, 원균은 전혀 그런 기록이 없다. 오히려 이순신이 여진족 추장을 잡은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순신과 함께 해전 투톱이라기엔....원균의 경상우수영은 병력이 불과 4척. 원래는 조선 수군 중 최대 전력을 가졌으나. 원균이 다 자침시키고 그거만 남았다.

장부상의 수치엿을 거라고? <임진장초>를 보면 경상감사 김수는 경상우수영의 병력이 건재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순신에게 "원균이 나가 싸우는데 진영이 비어 기습당할 수 있으니 와서 좀 도와 달라."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이순신은 일단 급히 출정하려 했지만 그 때 경상우수영의 전투도 없는 와해 소식이 들려와 전력을 더 갖추어야 해서 며칠 출정을 연기했다. <정만록>에는 김수가 전쟁 전 경상우수영도 점검한 내용이 나오므로 병력은 원래는 건재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전라좌수영이 주력이었으며, 원균은 그저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그건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다.

2. 옥포해전 후 장계 문제

공동으로 장계 올리기로 해놓고는 이순신이 몰래 올렸다는 내용이 나왔다. 보통 원균옹호론자들이 이순신을 폄하하는 소재인데, 방송에서는 "이순신은 배를 격파하고 공적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 원균은 수급으로 공적을 계산하는 기존 방식을 고수했을 뿐인데 여기서 나온 오해다." 정도로 정리했다.

그러나 다 틀렸다.

우선 문제의 단독장계. 흔히 이것이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의 시발점이라지만, 정작 한참 둘의 불화가 조정에서 논의될 땐 언급이 안 됐다. 그러다가 정유년 초, 이산해에 의해 처음으로 이 단독장계가 언급된다.

이건 일전에 한 포스팅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공적 집계를 원균은 수급이란 기존 방식을 고수했을 뿐? 하지만 원균은 그것 때문에 이순신이 다 죽이고 바다에 떠다니는 시신을 건져 목을 베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큰 문제가 있다.

<난중일기>에는 원균이 조선 백성의 목을 베어 왜군으로 위장하려다 저지된 기록이 나오고, <정만록>에는 아예 실행하고야 만 기록이 남아있다.

공적 조작을 위해 자기네 백성을 죽이고 위장하려한, 학살범이자 자격미달 군인이 원균이었는데 이게 기존 방식 정도의 문제인가?

3.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의 원인

원균이 이순신보다 5년 먼저 태어나고 9년 먼저 급제했지만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면서 자존심에 금이 가서 사이가 나빠지는 것처럼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 원균보다 더한 경우가 이순신 휘하에 있었다. 바로 조방장이었던 정걸.

정걸은 1544년에 무과에 급제했다. 이순신이 태어나기 전이다.
정걸은 1555년에 을묘왜변에 참전하고 판옥선을 만들었다. 이순신이 전쟁놀이를 하고 있을 때 진짜 전쟁을 하고 무기를 만들었다.

그 후 전라좌수사 경상우수사 같은 자리 다 거쳤던 사람도 이순신 휘하에 있었다. 그것도 실전경험도 있고 조선 수군의 주력함선도 만든 수군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원균 5년 먼저 태어나고 9년 먼저 급제한 게 뭔 대수라고?

원래는 경상우수사가 더 상위에 있엇어야 했다. 실제로도 이순신 사후의 삼도수군통제사는 경상우수사를 겸직했다. 그러나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삼도통제사를 겸직해야 했던 건 경상우수영을 다 말아 먹어 전라좌수영이 주력이 되어서다. 그리고 이순신이 더 혁혁한 전공을 세워서다.

하지만 원균은 그런 주제에 이순신을 시기했다. 그것이 불화의 원인이다.

4. 칠천량 해전 출전 문제

조정의 압력에 원균은 어쩔 수 없이 출전, 12척만 살아남고 패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거. 정유년 초에 자기가 통제사가 되면 출전할 수 있다고 한 게 원균이다. 하지만 그러고는 정작 출정은 미적거리다가 매맞고 칠천량해전이란 대패를 당하고, 이 과정이 다 원균이 자초한 것이다.

이거도 이전 포스팅들로 대체한다.


왜냐하면 이미 했던 거 재탕이기도 하지만, 몇줄로 줄이기도 힘들어서. 

원균은 자기가 출정한 것처럼 굴어서 통제사가 되고는 미온적이었고, 그래서 선조의 독촉을 받고, 중간에 낀 권율은 그대로 전할 수 밖에 없었고, 무모하게 출정하고는 경계도 소홀히 하다가 패배했다.

습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손실은 피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의 함대는 가지고 퇴각할 수 있었다. 방송에도 나오고 흔히 12척만 여기서살아남은 줄 알지만, 실제론 2~30척 가량은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이 명량대첩 때 움직일 수 있던 게 13척이었을 뿐. 

이를 보면 아직 한산도 방면의 퇴로는 열렸고, 이를 이용하여 본진으로 물러날 수 있었지만 원균은 가까운 육지인 춘원포로가서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

이걸 두고도 원균은 싸우다 죽었다 미화했지만, 싸우다 죽은 건 정발, 송상현, 조헌, 고경명과 아들들, 최경회, 김천일, 이복남 등 같은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고 원균은 도망쳤다. 도망치다 죽었는지 조차 의문이다.


그런데 어딜 봐서 원균을 재평가해야 하는가?

방송 말미에 사람을 선악으로만 판별할 수 없다며 원균을 나쁜 사람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말자체가 틀린 건 아니나, 이 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우린 이완용도 김일성도 전두환도 선악으로 판별하지 말고 그들의 이면을 봐줘야 한다. 그게 말이 되나?

원균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라를 말아먹을 뻔한 최악의 졸장이자 간신이다. 그런 자를 변호하는 방송은 실패작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공영방송의 대표 역사 교양프로그램이라면.

내가 PD라면 원균 3부작을 만들었을 것이다.

1부 원균은 어떻게 경상우수영을 말아 먹었는가?
2부 원균은 어떻게 이순신을 시기했는가?
3부 원균은 어떻게 조선 수군을 말아 먹었는가?

이 정도로 말이다. 원균은 그것 밖에 안 되는 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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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음모론 잡상

천안함 음모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데, 난 문과라 공학이나 과학적으로 반론하진 못하겠다. 그거야 잘하는 사람들이 이미 잔뜩 했고.

하지만 전문지식이 없어도 단순한 의문 하나로 천안함 자초설이니 조작 같은 음모론의 중대한 허점을 찾을 수 있다.

이명박이 구속되니 다시 천안함 음모론이 튀어 나온다. 그런데 이명박, 왜 구속됐냐? 측근들이 등돌려 증언하고 그렇게 쌓은 증거를 바탕으로 구속에 이른 거 아닌가? 그리고 천안함. 합동조사단만 73명이다. 이들이 다 조작에 가담했거나 조작도 눈치 못챈 바보들인인가? 기타 관계자를 합치면 음모의 가담자나 방관자는 최소 세 자리 수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아, 합조단 중엔 외국인도 다수, 특히 중립국도 포함되어 있다. 

이명박의 은닉 재산에 대해서도 증언이 나오는 판국에 수백 명의 사람 중에선 왜 양심선언 하나 안 나오는가?

덧붙여 난 이명박의 안보정책에 대해서,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만으로도 대국민사과 감이라고 생각한다. 하던 짓이 댓글 알바가 고작인, 무능한 국정원장이었으니. 그런데 그런 쪽에서 수백 명을 매수하거나 협박하거나 속일 정도의 거대한 공작을 할 능력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니 헛소리에 전파 낭비 바이트 낭비 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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