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방명록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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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이 환단고기를 게임 소재로 추천한 것에 대해 잡담 더 을파소의 역사이야기

최태성이 환단고기를 게임 소재로 말한 것에 대해 '환단고기가 사실이란 뜻이 아니라 판타지적 소재로 말한 것 뿐이다.' 같은 식의 말도 있다.

그러나 이게 그렇게 볼 문제인가? 게임회사 사람이라면 몰라도 최태성은 역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전공도 역사다. 그리고 유명역사강사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로는 너무나 가볍다.

판타지 소재? 그게 필요해도 왜 환단고기인가? 한국 문헌 중에서 그런 소재가 필요하다면 삼국유사나 동명왕편을 참고하면 된다. 그 외에 다른 신화나 전설에서 소재를 찾아도 된다.

환단고기는 기본적으로 여기저기의 다른 역사서나 신화를 짜집기하고 그걸로 역사를 왜곡한 위서이다. 화랑세기는 미실 같은 독자적인 캐릭터라도 있지 환단고기는 전혀 그런 게 없으므로 굳이 환단고기에서 소재를 가져올 이유가 전혀 없다.  황제와 치우의 대결을 게임화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단, 원전은 환단고기가 아닌 중국 신화라고 해야 한다. 환단고기는 그걸 짜집기했을 뿐이니까.

그리고 최태성 같은 이름값의 역사강사의 추천으로 환단고기를 원전으로 한 게임이 정말 나오면, 그걸 믿는 사람이 분명히 생긴다. 예상되는 예시로 첨부한 이미지의 댓글처럼. 

최태성의 의도가 환단고기를 인정한다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전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유명한 것도 큰 힘이다.


모 역사강사 잡담 을파소의 역사이야기

일본엔 많은 역사 게임, 왜 한국은 없을까?

>최태성 강사가 몇 가지를 제시했다. ‘한강’을 가운데 두고 겨뤘던 한국 ‘삼국지’, 조선시대 아이들이 즐겨 했다는 벼슬놀이 ‘승경도’, 영화 ‘암살’, ‘밀정’ 주역으로 떠오른 독립단체 ‘의열단’ 등이 있다. 여기에 역사학계에서는 비주류로 여기는 단군 이전 역사 ‘환단고기’도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시대는 ‘고증’이라고 할만한 기록이 거의 없기에 게임 개발자 입장에서도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최태성 강사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는 ‘고조선’이라고 하지만 더 올라가면 환인이 세운 환국과 환웅이 세운 배달국, 단군이 세운 조선이 있다. 그리고 환웅이 세운 배달국 제 14대 천왕이 치우천왕이다”라며 “이 치우천왕은 눈이 4개, 손이 6개이고, 손발에는 발굽이 있다. 머리는 구리, 입 안은 쇠다. 치우천왕은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황제와 맞서 싸우게 된다. 이 전투가 바로 ‘탐록전투’다”라고 말했다.

...저 사람 설모 강사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전 역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원균옹호론에 손들어주더니 이젠 환단고기다.

내 생각을 정정한다. 설모 강사보다 더하다.

역사저널 그날 2018.06.03 방송 이순신과 원균편 비판 이순신/임진왜란

2018년 6월 3일 일요일 KBS1의 <역사저널 그날>은 이순신과 원균을 주제로 방송했다.

일단 이순신을 폄하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순신의 영웅성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원균을 불운한 군인 정도로 설명하는 우를 범했다. 출연자 중 영화사 대표인 원동연이 있어 그런지 몰라도.

이순신 폄하 안 했다고 다가 아니다. 인간 이하의 인간을 나쁘지 않은 사람으로 설명하다니.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임진년 해전의 투톱 이순신과 원균

원균이 임진왜란 이전에는 신립, 이일과 함게 조선의 3대 명장으로 꼽혔다는 정체불명의 코멘트. 신립, 이일이야 임진왜란 이전이면 맞기야 하지만, 원균이? 

없다. 신립, 이일은 여진족을 대상으로 전공을 세워 그런 평가가 나왔는데, 원균은 전혀 그런 기록이 없다. 오히려 이순신이 여진족 추장을 잡은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순신과 함께 해전 투톱이라기엔....원균의 경상우수영은 병력이 불과 4척. 원래는 조선 수군 중 최대 전력을 가졌으나. 원균이 다 자침시키고 그거만 남았다.

장부상의 수치엿을 거라고? <임진장초>를 보면 경상감사 김수는 경상우수영의 병력이 건재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순신에게 "원균이 나가 싸우는데 진영이 비어 기습당할 수 있으니 와서 좀 도와 달라."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이순신은 일단 급히 출정하려 했지만 그 때 경상우수영의 전투도 없는 와해 소식이 들려와 전력을 더 갖추어야 해서 며칠 출정을 연기했다. <정만록>에는 김수가 전쟁 전 경상우수영도 점검한 내용이 나오므로 병력은 원래는 건재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전라좌수영이 주력이었으며, 원균은 그저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그건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다.

2. 옥포해전 후 장계 문제

공동으로 장계 올리기로 해놓고는 이순신이 몰래 올렸다는 내용이 나왔다. 보통 원균옹호론자들이 이순신을 폄하하는 소재인데, 방송에서는 "이순신은 배를 격파하고 공적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 원균은 수급으로 공적을 계산하는 기존 방식을 고수했을 뿐인데 여기서 나온 오해다." 정도로 정리했다.

그러나 다 틀렸다.

우선 문제의 단독장계. 흔히 이것이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의 시발점이라지만, 정작 한참 둘의 불화가 조정에서 논의될 땐 언급이 안 됐다. 그러다가 정유년 초, 이산해에 의해 처음으로 이 단독장계가 언급된다.

이건 일전에 한 포스팅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공적 집계를 원균은 수급이란 기존 방식을 고수했을 뿐? 하지만 원균은 그것 때문에 이순신이 다 죽이고 바다에 떠다니는 시신을 건져 목을 베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큰 문제가 있다.

<난중일기>에는 원균이 조선 백성의 목을 베어 왜군으로 위장하려다 저지된 기록이 나오고, <정만록>에는 아예 실행하고야 만 기록이 남아있다.

공적 조작을 위해 자기네 백성을 죽이고 위장하려한, 학살범이자 자격미달 군인이 원균이었는데 이게 기존 방식 정도의 문제인가?

3.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의 원인

원균이 이순신보다 5년 먼저 태어나고 9년 먼저 급제했지만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면서 자존심에 금이 가서 사이가 나빠지는 것처럼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 원균보다 더한 경우가 이순신 휘하에 있었다. 바로 조방장이었던 정걸.

정걸은 1544년에 무과에 급제했다. 이순신이 태어나기 전이다.
정걸은 1555년에 을묘왜변에 참전하고 판옥선을 만들었다. 이순신이 전쟁놀이를 하고 있을 때 진짜 전쟁을 하고 무기를 만들었다.

그 후 전라좌수사 경상우수사 같은 자리 다 거쳤던 사람도 이순신 휘하에 있었다. 그것도 실전경험도 있고 조선 수군의 주력함선도 만든 수군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원균 5년 먼저 태어나고 9년 먼저 급제한 게 뭔 대수라고?

원래는 경상우수사가 더 상위에 있엇어야 했다. 실제로도 이순신 사후의 삼도수군통제사는 경상우수사를 겸직했다. 그러나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삼도통제사를 겸직해야 했던 건 경상우수영을 다 말아 먹어 전라좌수영이 주력이 되어서다. 그리고 이순신이 더 혁혁한 전공을 세워서다.

하지만 원균은 그런 주제에 이순신을 시기했다. 그것이 불화의 원인이다.

4. 칠천량 해전 출전 문제

조정의 압력에 원균은 어쩔 수 없이 출전, 12척만 살아남고 패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거. 정유년 초에 자기가 통제사가 되면 출전할 수 있다고 한 게 원균이다. 하지만 그러고는 정작 출정은 미적거리다가 매맞고 칠천량해전이란 대패를 당하고, 이 과정이 다 원균이 자초한 것이다.

이거도 이전 포스팅들로 대체한다.


왜냐하면 이미 했던 거 재탕이기도 하지만, 몇줄로 줄이기도 힘들어서. 

원균은 자기가 출정한 것처럼 굴어서 통제사가 되고는 미온적이었고, 그래서 선조의 독촉을 받고, 중간에 낀 권율은 그대로 전할 수 밖에 없었고, 무모하게 출정하고는 경계도 소홀히 하다가 패배했다.

습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손실은 피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의 함대는 가지고 퇴각할 수 있었다. 방송에도 나오고 흔히 12척만 여기서살아남은 줄 알지만, 실제론 2~30척 가량은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이 명량대첩 때 움직일 수 있던 게 13척이었을 뿐. 

이를 보면 아직 한산도 방면의 퇴로는 열렸고, 이를 이용하여 본진으로 물러날 수 있었지만 원균은 가까운 육지인 춘원포로가서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

이걸 두고도 원균은 싸우다 죽었다 미화했지만, 싸우다 죽은 건 정발, 송상현, 조헌, 고경명과 아들들, 최경회, 김천일, 이복남 등 같은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고 원균은 도망쳤다. 도망치다 죽었는지 조차 의문이다.


그런데 어딜 봐서 원균을 재평가해야 하는가?

방송 말미에 사람을 선악으로만 판별할 수 없다며 원균을 나쁜 사람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말자체가 틀린 건 아니나, 이 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우린 이완용도 김일성도 전두환도 선악으로 판별하지 말고 그들의 이면을 봐줘야 한다. 그게 말이 되나?

원균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라를 말아먹을 뻔한 최악의 졸장이자 간신이다. 그런 자를 변호하는 방송은 실패작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공영방송의 대표 역사 교양프로그램이라면.

내가 PD라면 원균 3부작을 만들었을 것이다.

1부 원균은 어떻게 경상우수영을 말아 먹었는가?
2부 원균은 어떻게 이순신을 시기했는가?
3부 원균은 어떻게 조선 수군을 말아 먹었는가?

이 정도로 말이다. 원균은 그것 밖에 안 되는 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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