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카는 대단히 사이가 나빴다. 이순신과 원균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순신과 원균은 탐욕스러운 바보가 대전력가를 시기한 것이 갈등의 원인인 반면, 가토와 고니시는 비슷한 능력을 가진 자들끼리의 갈등이니 엄연히 다르다. 이런 두 사람의 불화는 유명하여서 조선에서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
고니시 휘하에는 요시라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와 고니시 사이를 왕래하면서 이중첩자 노릇을 하였다.
1596년 1월 11일, 요시라는 김응서에게 한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은 일본에 있던 가토가 7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4일에 대마도에 도착하였는데 순풍(順風)이 불면 곧 바다를 건넌다고 조선으로 다시 건너온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이라면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정보였다. 이것은 즉각 도원수 권율에게도 통보되면서 권율이 이순신에게 직접 알리려 나서고, 조정에는 19일에 장계가 도착하여 보고 된다.
그래서 조정은 이순신에게 가토를 막으라고 하지만 이순신은 함정으로 여겨 나가지 않았고 그 죄로 파작딩했다, 라는 게 흔히 알려진 내용이다. 가끔 여기서 이순신의 책임을 더 크게 부각시키는 사람도 나오고.
가토가 바다를 건너니 그 전에 차단하라는, 사실이라면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칠 정보이다. 그런데 요시라는 과연 쓸모 있는 정보를 주었는가? 김응서의 장계에 올린대로면 도원수 권율이 김응서에게 가서 정보를 파악하는 건 12일, 이 정보를 김응서와 권율이 이순신에게 직접 전달했어도도 13일 이후에나 받아본다.
그런데 <난중잡록>에 의하면 이순신은 1월 6일에 공무로 한산도에서 육지로 들어와 전라좌수영에 잠시 와 있었다. 한산도는 수군의 전진기지이지 수군 본영이 이동한 것은 아니기에, 전라솨수영은 여전히 지금의 여수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무가 끝나고도 풍랑 때문에 한산도로 돌아가지는 못 하고 10일에는 남해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고받게 된다. 가토가 가덕도에 도착하였다는 경상좌수영의 보고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13일에는 육지로 건너오니, 요시라가 11일에 제공한 정보대로 4일에는 대마도에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11일에는 이미 낡은 정보였고, 그나마도 장계가 조정에 올라간 것은 19일이니 더이상 유용한 정보가 될 순 없었다. 실제로 김응서의 장계가 올라오고 이틀 후인 21일에는 비변사가 '청정이 이미 바다를 건넜으니 ...'라고 보고하여 가토의 도해는 막을 거 없이 이루어진 상태라는 걸 선조와 조정 대신들도 알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게다가 장계를 올린 김응서도 '다만 왜적의 말은 교활하여 믿기가 어렵고 청정이 이미 대마도에 나와 있으니, 비록 계책을 행하려 해도 미치지 못할까 싶습니다. 신들이 뒷탈이 있을까 염려되고 또 기회가 이미 늦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라고 언급하면서 '적의 정세와 시기(事機)가 어떠한가를 보아 편의에 따라 수응(酬應)하여 그 일을 성취시키게 하고 불가하거든 그만두게 하는 것이 무방할 듯합니다.'라는 말로 장계를 끝낼 정도였다. 그조차도 일단 필요한 조치는 실행하지만, 요시라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고, 그 말을 믿더라도 가토를 막기에는 촉박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일본의 재침공은 확실시 되던 시점이니 이순신이 가토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게임이라면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하겠지만 현실에서는 힘들다. 현대의 군함도 잠수함을 제외하면 기상상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물며 판옥선이 바다 한 가운데서 언제 올지 모르는 적을 기다리며 차단작전을 할 수 있는가? 그것도 기상상태가 더욱 안 좋은 겨울바다에서? 결국 이순신에게 가토의 도해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묻는 건 어불성설이다.
결국 가토의 도해에 관한 전후상황은 김응서에서 이순신, 권율, 선조와 조정에 이르기까지 막기에는 이미 때가 지났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고니시가 심유경과의 강화사기극이 들통난 후 이순신 제거라는 공을 세우기 위해 요시라를 통해 반간계를 펼쳤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조직이라면 도저히 먹혀들 수 없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다 정상이라도 조직의 보스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면 간혹 먹혀들 수 없을 거 같은 작전이 먹혀들기도 하지만.
그리고 이순신은 정말 부산엔 가지 않고 버티다 하옥된 걸까? 그것도 그렇지 않다. 이순신은 이 때 파직당하고 체포당하여 장계나 일기를 남길 여유가 없었지만, 이 시기 <선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이순신은 가토를 막는다는 건 이미 때늦은 일임에도 조정의 명령대로 부산으로 출전한 사실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