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방명록 방명록

2014년 방명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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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을파소의 잡담

1. 올해는 참 자녀 때문에 울고 웃는 정치인이 많네요. 지난 보선의 새민련 유일한 수도권 당선자는 딸 덕 보니더 남경필은 지방선거 때 터졋으면 정몽준이랑 소주 마셨을 일이 터지니...

신문사로 칼럼 보내고 나니 장남이 사고친 소식 듣고, 경황이 없어 보낸 칼럼 취소하는 걸 잊을 수도 있고, 울적한 마음에 술 한 잔 할 수도 있는데 페북엔 왜 또 그렇게 올렸는지...

이혼 뉴스도 나오고 연락두절이라더만 이런 뉴스 나온 거 보면 일을 하고 있는 모양. 그래도 앞으로 대선주자로의 위상엔 타격이 클 듯..

2. 제주지검장은 보면 저건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이며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오는 CCTV 분석 결과는 거의 지검장 짓이 맞는 거로 가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짓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고....

신고한 여고생도 그게 제주지검장이었단 소리 듣고 더 놀랐을 듯

3. 명량의 흥행은 최대 기록을 세우긴 세울 듯

그런데 약간의 쉴드도 치긴 했지만 사실 이순신빨로 흥행하는 건 사실이고, 누구에게나 추천해줄 완성도의 영화는 아니죠. 재미로만 따지면 가오갤이 더 재미있었어요. 가오갤 인지도가 낮아 독주하지, 어벤져스2라면 이 정도는 안 됐을 듯.

그래도 고증이 따지자면 따지나, 그간 한국 사극의 고증 수준 감안에 철쇄 안 나온 거 쳐줘서 안 따지렵니다. 

다만 정치인들에겐 이순신은 안 바라니 임진왜란, 특히 정유년 초의 선조만 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시기를 제외한 선조라면 오히려 정치인들이 능력 배우는 게 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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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책에서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을 더 보여주었어야 했다 이순신/임진왜란

그러나 그 인간적인 면은 "이순신도 인간이라 이렇게 잘못이나 실수를 했다."라며 그런 게 아닌 것도 억지로 잘못이나 실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전장으로의 출동이나 전력 정비 등 일 말고 무엇을 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 술 마시는 이야기나 바둑, 승경도 같은 그 시대의 보드게임을 하는 것, 가족 걱정하는 모습 같은 것들.

그렇게 보통 사람도 하는 일상을 보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지, 실수도 아닌 걸 실수라고 하는 게 인간 이순신을 바라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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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에 제시된 이순신의 절영도 주둔론에 대한 잡상 이순신/임진왜란

김태훈의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에선 이순신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던 기회로, 부산포해전 당시 부산 앞바다의 절영도를 기지화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부산포의 일본군을 압박하는 동시에 일본으로부터 오는 보급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임진장초>에서 부산포해전에 대한 보고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을 들고 있다.

절영도 안팎 쪽을 모조리 수색하였으나, 적의 종적이 없었으므로

즉, 절영도에 일본군이 흔적도 없었으니 이 곳을 주둔지로 삼는 것도 간단했을 것이며, 보급의 문제는 있다 하나 조선 수군이 바다를 장악한 상황. 설령 부산포에 일본에서 온 적군까지 더해져도 양면으로 포격이 가능한 판옥선에 지휘관이 이순신이니 필사의 각오로 나서면 전쟁의 조기 종결이 가능하지 않았겠냐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절영도에 조선 수군이 주둔지를 만드는 게 가능했을까? 일단 부산포 해전은 이 포스팅 참고

부산포해전 당시 조선 수군은 절영도에 적이 없자, 적선이 초량목으로 나온다는 척후의 보고를 받고 이동, 적진으로 돌입하는데 '부산성 동쪽 한 산에서 5리쯤 되는 언덕 밑 3개소에 둔박한 왜선이 대, 중, 소선을 아울러서 대개 470여 척'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투에서 적선 100여척을 격파하고, '적의 소굴에 머물러 있다가는 앞뒤로 적을 맞게 될 환란이 염려되어' 가덕도로 이동하여 밤을 지낸다. 

분명히 절영도에 적이 없는 걸 확인한 후지만, 이순신은 절영도가 아닌 가덕도를 숙영지로 선택하였다. 이순신이 장계에 적은 내용으로 보아 절영도도 '적의 소굴'로 간주한 것인데, 왜 일본군 하나 없는데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절영도(지금의 영도)는 부산과 너무 가깝다. 구글 어스를 통해 대충 측정한 거리다 0.53km. 500미터 남짓이다. 그나마 대충 쭉 그은 거라 실제롤 더 짧을 것이고.


 
적선이 있던 부산성 근방을 기준으로 해도 3.69km로 긴 거리가 아니다. 물론 조선 수군이 절영도에서 바로 저 지점에 머무는 게 아니라 바깥 바다로 머물면 좀 멀어지지만, 그래도 왜선은 여전히 수백척이 남았고, 절영도에 가까운 곳에 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안전한 가덕도로 가는 것이 함대를 보존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는 절영도를 주둔지로 삼을 수 없었던 이유와도 통한다. 당시 조선 수군은 주둔지 이동까지 고려하여 출동한 게 아니니 이에 대한 준비도 없었을 것이니 여기에 주둔하려면 함대를 쪼개어 일부는 남고, 일부는 보급을 위해 왔다갔다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적선은 여전히 수백척이 남아 있다. 게다가 저 정도 가까운 거리면 조선 수군이 주둔지를 만드는 것도 금방 파악할테니 방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일본 수군이 꼭 결전을 할 필요는 없다. 자신들이 다수니, 야간에 몇 척씩 번갈아 보내 조총을 쏘고, 조선 수군이 나오면 항구로 재빨리 돌아와 지치게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절영도에 머무려다가 조선 수군이 전멸이라도 당하면 바닷길이 뚫리는 것이므로 리스크가 매우 큰 도박이다. 단지 당장 절영도에 적이 없다는 이유로 선택하기엔 위험하고, 당장 주둔지를 옮길 준비도 안 되어 있으니 이순신이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 무리였다. 또한 무작정 배만 박살내거나 불태우면 육지의 일본군을 갈 곳이 없어져 분탕질칠 수 있으니 결국 육군의 협조가 필요하여 이순신은 부산포에서 철수한 것이다.

이상으로 보았을 때 이순신이 절영도에 주둔하지 않은 건 그러고 싶어도 그만큼 위험했고 그걸 감수할 상황이 아니었으니, 그리 고려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건 좋으나, 작전에 대해 새로운 제기를 할 거라면 다른 평범한 장수도 아니고 이순신이 그만한 생각없이 움직였을까? 라는 점은 한 번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혹 이순신에 대해 다른 걸 알고 싶다면 이런 거 봐주시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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