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방명록 방명록

2014년 방명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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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징조 을파소의 잡담

삼국전투기가 제 시간에 올라왔습니다.

모두 11월 26일 하루는 각별히 조심하며 지내시길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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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에 대한 좋은 얘기면서 변호성 기록 + 잡설 이순신/임진왜란

이게 다 권율 때문이다?

저렇게 포스팅했지만, 저기서도 말했듯이 배설 후손은 조상을 위해 나서는 게 원균과는 달리 어느 정도 인정받을 만 합니다. <명량>의 묘사가 너무 막나간 것도 사실인데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칠천량해전과 명량대첩 전 상황만 강조되어 도망자 이미지만 강한 것도 사실이죠. 다만 조상 변호의 방편으로 권율을 너무 공격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권율이 그렇게 무시당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사실 그러지 않아도 <선조실록<에서 배설에 대해 괜찮은 이야기와 경상우수사로서의 행적에 변명이 될 기사가 있습니다. 뭐 저 기사에 언급 안했지, 저 집안에서 낸 책에는 이 기사가 인용되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응서(金應瑞)의 병이 위중하니 그 군사를 대신 거느리도록 마땅히 전지를 하셔야 합니다. 선거이(宣居怡)가 차차로 부임한 뒤에 내려간다면 그 기간이 너무 멀고, 또 들으니 배설(裴楔)은 수질(水疾)이 있어서 주사(舟師)의 임무에 합당치 못하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배설이 용맹이 있는 장수라고 하나 수질이 있으면 주사에 쓸 수 없을 것이다.”
하자, 김응남이 아뢰기를,
“신들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윤선각이 아뢰기를,
“선전관(宣傳官) 조광익(趙光翼)이 도원수의 처소에서 와서 말하기를 ‘배설이 부임하려고 하는데 진주 백성들이 길을 막고 더 머물러 주기를 원하여 성을 나가지 못하게 하니, 도원수도 난처하게 생각하여 선거이로 하여금 막하에 와서 있게 하려고 한다.’ 하였습니다. 김응서는 병이 위중하여 군사의 일을 보살필 수 없으니, 우선 곽재우(郭再祐)로 대신 그 군사를 거느리도록 이에 대한 전지를 속히 내려 보내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속히 하라.”
하였다. 김응남이 아뢰기를,
“배설은 이미 수사(水使)가 되었으니 즉시 부임해야 할 것인데, 백성들에게 차단당하여 성을 나가지 못한다는 말은 극히 놀라운 일입니다. 이 같은 말이 조정에 들리게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선조실록> 1595년(선조 28년) 2월 6일

일단 배설이 수질, 요즘식으로 배멀미가 있었다는 건 <해소실기> 같은 칠천량해전의 기록에서도 나오므로 분명한 사실로 봐도 됩니다. 원균옹호론자들이 "육군 적성인 사람을 수군에 배치한 게 잘못이지!"라 하지만, 원균은 통제사 되기 전에 지가 먼저 자신있다고 나선 놈이고, 오히려 조정에선 수군 적성으로 봤는데 비해 배설은 그야말로 수군 적성은 아니라고 왕과 대신도 인정한 게 공식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상우수사 임명했으니 "육군 적성을 수군에 보내다니!"란 말은 원균이 아닌 배설에게 더 적합합니다. 

그리고 다른데로 가려니 백성들이 못 가게 막았다는 건 그만큼 민심을 얻었다는 것.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진주. 자 진주성 전투로 함락되었다가 일본군이 철수한 후 되찾은 곳인만큼 피해도 크고 민심도 흉흉해졌을 곳에서 백성들이 "더 머무럴 주세요."라 했다는 건 꽤나 능력발휘를 했다는 얘기죠. 

이런 정도면 경상우수사 말고 육군이나 지방관으로 활용했으면 정말 제대로 했을 사람인데, 왜 수군으로 보냈냐? 라고 말할 근거 정도는 되겠습니다. 그러니 괜한 권율 욕하지 말고 이런 거로 조상 변호하라고요.

명량대첩 전 배설이 탈영한 건 그 즈음 <난중일기>의 묘사나 배설이 겪은 일로 보아 극심한 배멀미로 인한 바다에 부적응+칠천량해전에서 살아 온 후유증+적군과 아군의 압도적 전력차+이 열악한 상황의 원인 제공을 한 왕과 조정에 대한 불만이 작용해서 인 듯합니다. 이걸 제대로 표현하자면 단순한 겁쟁이가 아닌 제대로된 대본과 연기력이 결합해 내면을 묘사해야겠지만....제작자들이 배설에게 그 정도로 관심을 가질 거 같진 않군요.

어쨋든 배설은 칠천량해전에서 배를 살려 명량대첩의 기반을 남기고 괜찮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미화만 할 것도 아니고 적절히 공과를 고루 살펴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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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권율 때문이다? 이순신/임진왜란

영화 <명량> 개봉 후 배설 후손들이 항의할 때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영화에 나온 배설 묘사는 분명히 실제 역사보다 더 악당이 된 허구였고, 실제 역사에서도 칠천량해전과 명량대첩 전 도망쳤다는 점만 부각되는 면도 컸으니까.

그런데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이 기사를 보면...

배재영 박사는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경상좌수사 이억기, 충청병사 최호가 전사하고 조선 수군 삼만여 명이 수장된 칠천량 전투를 집중 분석했다. 사실 배설 장군은 칠천량 전투 직전에 열린 군사회의 때 "물이 얕고 협착한 칠천량은 전선을 운용하기 어려우니 함대를 전투에 유리한 한산도 본영으로 옮겨 왜군의 공격을 잠시 피한 다음 전투력을 복원하여 부산포로 재출병하는 것이 조선 수군을 살리고 조선을 살리는 길"이라는 의견을 펼쳤다. 

하지만 도원수 권율의 급전 독촉에 내몰린 원균은 배설 장군의 의견을 무시했고, 마침내 조선 수군은 궤멸 당했다. 그런데도 당파 싸움에 골몰하느라 중요 직책의 장군 자리를 자기 사람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조정 대신들은 12척의 전선을 천신만고 끝에 살려 이순신에게 인계하고 청야작전으로 한산도 주민들을 살려낸 배설 장군을 오히려 처형했다.
(중략)
또 배윤호 비대위 대변인은 "배설 탄핵은 자신들의 실정을 지적해온 배설을 두려워한 조정 대신들이 당시 병조판서 이항복의 장인이자 도원수인 권율을 살리기 위해 모함을 한 때문"이라면서 1599년 49세의 나이로 권율에 의해 억울하게 참수된 배설 장군이 불과 6년 뒤인 1605년 1등공신에 책록된 것이 결과적으로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선조는 1597년 7월 22일 어전회의에서 "패전 책임은 도원수(권율)에게 있다"고 지적하고 배설을 수군통제사에 임명하려 하지만 이항복 등은 패전 책임을 져야할 권율의 장계를 근거로 오히려 배설 등을 탄핵했다.  

이건 또 “이게 다 권율이 독촉해서  때문이다.”인데, 원균옹호론자도 권율이 독촉해서 그렇다고 우기고, 정기룡을 과장하는 사람도 권율은 사위 덕에 1등공신 된 것처럼 말하더니 이젠 배설 후손까지 권율 탓이다.

물론 당대에도 행주대첩 후로는 이렇다 할 승첩이 없다고 권율을 비판하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지. 왜 다른 사람 띄우려는 용도로 권율을 폄하하는 거냐? 무남독녀였으니 후손 없다 이거냐?  

우선 권율의 수군 출전 독촉, 원균옹호론자도 이걸로 패전의 책임을 원균에게 돌리려고 하는데, 수군 수장을 곤장까지 친 건 너무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군의 진격은 원균이 통제사가 되기 전 상소를 올려 주장한 사실이며, 이로써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임명한 선조도 강력하게 원하는 일이었다. 안 그럼 자신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으니까. 그래서 선조는 “전일과 같이 후퇴하여 적을 놓아준다면 나라에는 법이 있고 나 역시 사사로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까지 하였다. 이게 7월 10일에 한 말이라 원균에겐 전달되기 전에 칠천량해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날 갑자기 말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방침을 강력히 확인 한 것이므로 그 전부토 권율로서도 그 압박을 안 받을 수가 없다. 그리고 왕과 조정, 삼도통제사 사이에 있는 도원수로 왕이 원하는 바를 독촉 안 할 수가 없다.  

결국 칠천량해전은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임명한 잘못된 인사와 이를 무마하려는 독촉, 그리고 원균의 무능으로 인한 것인데 권율이 다 뒤집어 쓸 순 없지 않은가?

 자 그럼 배설 탄핵은 과연 ‘조정 대신들이 당시 병조판서 이항복의 장인이자 도원수인 권율을 살리기 위해 모함을 한 때문’인가? 저 기사에선 ‘선조는 1597년 7월 22일 어전회의에서 "패전 책임은 도원수(권율)에게 있다"고 지적하고 배설을 수군통제사에 임명하려 하지만 이항복 등은 패전 책임을 져야할 권율의 장계를 근거로 오히려 배설 등을 탄핵했다.’라고 한다.

<선조실록> 에 따르면 1597년 7월 22일 어전회의에서 선조는 “원균은 처음부터 가려고 하지 않았으나 남이공의 말을 들으면 배설도 ‘비록 군법에 의하여 나 홀로 죽음을 당할지언정 군졸들을 어떻게 사지에 들여 보내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대체로 모든 일은 사세를 살펴보고 시행하되 요해처는 고수해야 옳은 것이다. 이번 일은 도원수가 원균을 독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패배가 있게 된 것이다.”라 하긴 했는데, 권율이 독촉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자신에게 있는 건 무시하는 발언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배설에 대한 언급은 이게 끝. 저 기사와는 달리 배설을 통제사로 임명하려 했단 말은 없다. 물론 저기에 너무 생략하여 다른 사료에 나온 걸 말 안 했을 순 있다. 그것이 공신력 있는 사료라면 믿을 수 있지만, 적어도 어전회의를 기록한 그 날의 실록 기사엔 안 나온다. 선조는 “이미 지난 일을 논의하면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일변으로 통제사를 차출하여 남은 배를 수습하면서 일변으로는 도독부에 알리고, 또 일변으로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해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을 뿐이며, 김명원이 장수를 보내면 누가 적임자일까 하는 말에 이항복이 “오늘날의 할 일은 단지 적절한 인재 선발에 있습니다.”라고 하자 선조는 여기에 대해선 말 안하고 위에 나온 “원균은 처음부터 가려고 하지 않았으나...” 라고 말을 해서 슬쩍 화제를 돌렸다. 

이 때 이항복이 말한 ‘적절한 인재’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선조는 ‘적절한 인재’를 말하는데 “이게 다 도원수 때문이다.”라 한 것일까? 연성재거사님의 이 포스팅(http://xuecheng.egloos.com/4151131)에서 볼 수 있는 <징비록> 초본의 이 날 광경에서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과 병조판서兵曹判書 이항복李恒福이 조용히 대답하였다. "이는 원균元均의 죄입니다. 마땅히 이순신을 기용하여 통제사에 임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임금께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다가 나가셨다.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이순신을) 통제사에 (임명한다는) 명령(旨)을 얻었다.’라 한 것을 본다면, <선조실록>에서 김명원이 누굴 보내는 게 좋을지 말하자 이항복이 말한 ‘적절한 인재’가 누구인지는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사실 그게 아니라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지만 그리고 <징비록> 초본에서 선조가 이를 노골적으로 피했다는 걸 보면, <선조실록>에서 이항복이 ‘적절한 인재’를 말하자 선조는 ‘이항복의 장인의 책임’을 거론한 저의가 의심된다.

이런 사정을 보면 권율 책임론은 선조의 책임방기의 수단이다. 도원수로서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장 큰 책임자는 아니다. 그리고 저 날 회의에서 이항복도 장인을 적극 변호하지도 않았고 배설을 딱히 탄핵하지도 않았다.

분명 배설은 지나치게 까이는 면이 있고, 영화 <명량>은 그 정도를 넘어 억울한말한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권율 걸고 넘어질 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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